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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향 Apr 19. 2024

은빛고운 모래, 아름다운[김녕해수욕장]

(제주올레 20코스를 걷고)

4월 20일 금요일 제주살이 20일 차. 어제는 제주도의 오른쪽(동쪽, 21코스)을 걸었고 오늘은 올레길 20코스(제주도 지도상 북쪽)를 걸었다. 이제 제주시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다. 숙소에서 가까운 덕에 가고 오는데 시간절약이 되었다. 김밥을 준비하여 김녕서포구에 9시쯤 도착하여 시작 스탬프를 찍었다. 둘이지만 파이팅을 하고 나서니 바로 옛 등대 도대불이 보였다. 이제 제주도에서 조금이라도 걸으며 지역마다의 여러 환경을 익혔다고 비슷한 형태의 무엇이 나타나면 이것이 무엇이겠지 하고 다가가서 안내도를 읽으면 거의 맞아떨어졌다. 공부를 하기는 좀 한 것 같다. 더구나 자세하게 파고들고 미리 공부해 가지고 가는 남편과 어제 걸었던 지역과 다른 점은 무엇이고 이 지역의 관광객으로서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우리들의 관점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탬이 되는 것 같다. 같은 제주도라도 4계절의 기온차가 다르고 재배하는 농작물이 다르고 심지어 골목길마다 길손을 맞이하는 글귀까지 다름을 발견하고 우리는 한달살이의 재미를 느끼고 있다. 빨간 등대와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서있고 물빛이 무 고운 세기알 해변을 거쳐


 김녕해수욕장에 이르니 하얀 모래밭이었다. 벌써 바닷물에 발 담근 사람들도 보였는데 모래를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위에 하얀 천 비슷한 것으로 그 넓은 모래사장을 다 덮어놓았다. 성세기태역길을 거쳐 모래로 이루어진 모래언덕인 사구를 보았다. 그 옆에는 벌써 캠핑을 즐기는 여러 텐트가 보였다. 해녀들을 위한 불턱이 이 지방에서도 보였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환해장성도 있었다. 진빌레밭담길을 걸어 밭담공원에 이르니 옛날 여러 가지 생활시설들이 있었으나 관리가 안되어 잡초가 우거져있었다. 월정 마을 안길로 들어서니 이 지역에는 당파(쪽파)농사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뽑지 않고 그냥 두어서 파꽃이 하얗게 핀 밭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지역의 밭은 검은 색깔의 토양이었는데 이 지역은 우리가 흔히 보던 누런 황토색깔이었다. 그러나 밭담은 역시 시커먼 화산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번 길은 가파른 오름길 없이 해안도로가 대부분이었으나 그야말로 카페와 식당 천지였다. 해안도로 왼쪽에 자리 잡은 우리 국산풍력발전기의 거대한 날개가 가득 찬 바다를 보면서 에너지기술연구원들의 노고에 감사했다. 월정포구 해수욕장 근처 정자에서 김밥을 먹고 다시 걸었다. 피곤한데 배는 부르고 날씨는 덥다 보니 눈꺼풀이 자꾸 감겼다. 다리가 무거워졌다. 옆에서 걷고 있는 남편을 슬그머니 바라보니 힘든 기색이 없었다. "아, 너무 힘들다. 갑자기 걷기 싫다." 하니 남편이 그랬다. 자기도 힘들지만 자신을 이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해서 갑자기 좀 멋있게 느껴졌다. 아무 말 못 하고 걷다 보니 광해군유배, 첫 기착지가 나오고 거기에서 중간인증 스탬프를 찍었다.


  한동해안도로를 지나다가 그늘 한 점 없는 더위에 너무 피곤해 카페에 들렀다. 시원한 음료를 한잔씩 하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일어섰다. 대부분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데 걷고 있는 행색이 초라한 우리 둘의 모습이 우습다고 하니 남편은 우리가 오히려 당당하다고 했다. 그렇지. 서로 위로하며 평대옛길로 들어섰다. 넓은 해안도로가 바로 옆으로 나란히 있고 그 위에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데 우리는 벵듸길이라는 그 좁고 돌 많은 길을 잡풀을 헤치며 걸었다 나오니 세화민속오일시장이 나왔다. 그런데 10월까지 공사 중이라고 하였다. 다시 세화해수욕장을 거쳐 해녀박물관에 도착하여 종점 인증을 하였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한 오늘 일정이 오후 4시 30분쯤에야 종점에 도착했다. 남편에게 운전대를 넘기고 앉자마자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정신없이 잤다. 지금 이 순간 제주도 내일 일기예보를 보니 강풍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하였다. 난 속으로 너무 반갑다. 앗싸, 무조건 내일은 안 걷고 싶다. 설렁설렁 보고 걷기를 원하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구석구석 다 살피고 찍고 그런다. 그래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이 나이에 언제 또 여기 다시 올 수 있겠나?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있다. 이해는 하지만 어차피  다 못 보고 올레길 스물 일곱 코스를  다 못 걷고 갈 건데 너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진작에 나캉 많이 다른 줄 알았지만 역시나 그렇네.

작가의 이전글 [해녀박물관]과 [지미봉]을 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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