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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향 Apr 22. 2024

[제주함덕해수욕장]과 [북촌리의 슬픈 역사]

(제주올레 19코스를 걷고)

4월 21일 일요일 제주한달살이 21일 차. 오늘도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우리는 나섰다. 일요일이니까 다른 올레객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함께하면서 조천읍의 올레안내센터에 도착하여 출발인증스탬프를 찍었다. 그리고 기념품도 몇 개 사고 커플 티셔츠도 샀다.


바로 앞의 조천만세동산에 들러 3.1 운동기념탑을 비롯하여 여기저기 둘러보고 걸어가니 신흥리 관곶이 나타났다. 제주에서 해남땅끝마을과 가장 가까운 거리라고 하며 제주울돌목이라고 할 만큼 배가 뒤집어질 정도로 파도가 세다고 한다. 다시 걷다 보니 2개의 방사탑이 나타나고 신흥리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밀물 때는 물빛이 곱고 썰물 때 물이 전부 빠지면 장관을 다는 신흥해수욕장이었다. 신흥포구를 지나 신흥리 동네길로 들어섰다.


옆길로 가라는 시그널을 따라가니 쇠물깍이 나타났다. 큰 물에서 단물이 아래쪽 바다로 흐르는 내인데 용천수에서 흘러나온 물은 음용수로 사용하고 가뭄에는 농업용수로도 사용하였으며 신흥리에는 용천수가 5개나 있다고 한다. 정주항을 지나니 제주 3대 해수욕장 하나인 함덕해수욕장으로 들어섰다. 사람들과 차가 많아 주차장은 북적이고  카페와 식당, 호텔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잠깐 사진을 찍었다. 목이 말라 카페에 러 차를 한잔 마시고 나와 살찐 물소가 뭍으로 기어오르는 듯한 형상을 하였다는 서우봉 입구로 들어섰다. 가파른 입구를 지나 진지동굴을 구경하고 내려오니 북천리 해동포구가 나왔다. 깨끗이 청소가 된 마을정자에 앉아 간단한 간식을 먹고 동네골목길을 돌아 나오니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나왔다. 북촌리는 4.3 당시 가장 많은 희생을 당한 동네라고 하였다. 이런 동네의 아픈 역사를 잘 기록하였다.  우리는 들어가서 4.3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듣고 자료도 찍었다.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니 북촌포구가 나왔다.


북천 앞바다에는 다려도라는 무인도가 있는데 일몰의 광경이 매우 아름답다고 하였다. 일부 북촌 주민들이 4.3 때 토벌대룰 피해 숨어있던 곳이기도 하다.  등명대라는  곳에서 오랜만에 점심을 사 먹었다. 갈 길이 멀어 급히 서둘러 나서니 동북새생명교회가 나타났다. 아주 오래된 건물의 모습이었다. 한참 오솔길을 걷다 보니 제주환경순환센터가 나오고 동북리마을 동장이 나왔다. 큰 축구장이었으나 관리가  안되고 방치되어 있었다. 팔각정자가 나오고 그 앞에서 중간인증 스탬프를 찍었다.  다시 벌어진동산이 나왔다. 두 마을로 갈라진 곳, 가운데가 벌어진 곳이라 벌어진동산이라고 한다. 나무가 우거져 있고 숲이 무성했다. 오늘따라 구름이 낮게 깔리고 빗줄기도 오락가락하니 숲길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음산했다. 리 말고 인적이라고는 없고 꼭 누군가 숲에서 노려보는 느낌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거기다가 삐꺽하며 풍차도는 소리까지 귀를 예민하게 하여 겁이 많은 나는 옆에 있는 남편이 갑자기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혼자서는 절대로 오고 싶지 않은 코스였다. 노동자 시인 박노해 작품에서 발췌된 문구들이 여러 개 세워져 있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이 문구만 기억에 남는다. 한참을 걸어서야 김녕마을이 보이는 농로가 나왔다. 시간은 오후 6시가 넘어섰다.  다시 해안길을 걷다가 김녕서포구에 도착하여 19코스를 마무리하였다

………………

"영감, 오늘 너무 고생했소. 그리고 고마워요." 그랬더니  남편이  "와 또 이라노. 뜬금없이. 어이. 평소에는 내가 안 고맙더냐?"라고 그랬다. 오늘은  제주올레 19코스를 걸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천올레공식안내소에서 출발하여 김녕서포구까지 19.4킬로이어서 멀기도 하였지만 오늘따라 이 지역의 날씨는 시커먼 구름이 낮게 깔려있고 비가 오락가락하여서인지 우리 부부 말고는 걷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오늘 코스의 솔숲 오솔길은 어두컴컴했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독사도 만났고 도마뱀도 만났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남편 앞에서 스틱을 일부러 툭툭 쳐가며 걸었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고 하였다. 나 혼자 여기 왔더라면 해낼 수 있었을까? 아니, 올 결심도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와  함께 해서 무섭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대와 함께라면 남은 더 먼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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