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유명한 스트리머가 ‘발암이네, 암 걸리겠다’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었고, 정말 무서운 ‘발암’ 이란 단어는 새로운 유행어가 되었다. 나 역시 처음엔 재미있어서 자연스럽게 그 유행어를 사용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듯 내가 진짜 암에 걸리고 말았다. 그 후로 나는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이 생기면서,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무의식의 힘이란 굉장히 강력하기 때문에, 내가 무심코 뱉는 말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자기 계발 서적을 읽다 보면 공통으로 등장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할 수 있다’와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말하는 경우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경우이다. 나는 그런 무의식의 힘을 무시한 채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발암’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것을 굉장히 후회했다. 물론 내 무의식과 별개로 병이 발병했을 수도 있다.
우선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암 걸리겠다는 유행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누군가는 재미있게 사용하는 ‘암 걸리겠다’라는 표현이 다른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었다. 무의식의 힘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런 말을 사용하는 지인들이 나처럼 아프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좋지 않은 단어를 계속해서 입에 오르내리는 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1차 항암치료가 끝난 뒤 3주 정도 휴식 기간을 가졌다. 집으로 돌아와 책가방과 옷가지들을 보니 다시 한번 눈물이 쏟아졌다. 집의 분위기와 애정이 나에게 밀려들었고, 내 마음은 세상 모든 것에서 버림받은 불행에서 애틋함과 감사함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예전의 내 것이 아니었다. 몇 달 전과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으며 가슴엔 중심정맥관이 삽입되어있었다. 불행이 한번 찾아오면 나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라도 찾아온 감사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 군대 이등병 휴가 때 경험을 살려 메모장에 먹고 싶은 것을 기록했다. 면역력이 낮은 상태여서 아무거나 먹어선 안되기 때문에 의료진 선생님들에게 메모장을 보여주고 허락을 받았다. 평소에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먹고 싶었던 피자와 치킨도 먹었고, 친구들을 집에 불러 같이 놀기도 했다. 병실에서 부르지 못했던 노래도 실컷 부르고 나름대로 아픈 걸 잊어보려 노력했다. 휴가 기간 매주 외래진료를 받아야 했고, 중심정맥관 소독을 하러 병원에 갔다. 왔다 갔다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지루한 병원보다 집에 있는 게 좋았다.
병원에서 2차 항암치료 입원 날짜를 잡아주었다. 입원해서 보니 처음 보는 환자분들도 있었고, 익숙한 환자분들도 있었다. 두 번째 항암치료는 얼마나 힘들지 상상하기 싫었지만, 항암 스케줄 표를 받고 다시 한번 정신력을 잡기 위해 기도를 했다.
불과 몇 년 전 백혈병은 치료 중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사망했다. 희귀 암에 속하는 백혈병은 불치병에서 난치병으로 된 지 얼마 안 되었다. 병이 생기는 환자 수가 적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맞아야 하는 항암제의 정량이 얼마인지 정확히 계산하는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2차 항암치료는 주치의 교수님께서 약간 높은 양의 항암제를 처방해 주셨다. 나이도 어렸고 이 정도 항암제는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병을 없애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치료 과정에서 나는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다.
항암 스케줄을 받으면 투여받을 약에 대해 꼼꼼하게 설명해 주신다. 그때마다 나는 약에 대한 효과보다 부작용에 대해서 먼저 물었다. 보통 감기약을 먹으면 열이 내려가는 것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항암제는 반대로 열이 올라간다. 구토와 설사를 멈추기 위해 약을 먹는데 항암제는 구토와 설사를 유발한다, 스케줄표를 받은 나는 구토, 오심, 설사, 무기력증, 출혈성 방광염 등등 부작용에 대해 심적으로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항상 나에게는 남과 다른 불행이 작용하는 걸 잊고 있었다. 종이에 적혀있지 않은, 내가 심적으로 대비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항암제를 처리하는 과정에 신장이 망가져 버렸다. 얼굴을 포함해 온몸이 부어올랐다. 이번 주말까지 계속 부어오르면 신장투석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에 무서웠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갈 때까지 가보자’
생각보다 결과는 좋았다. 며칠 뒤 신장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수치도 쭉쭉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새벽이었다. 옆에 계신 분의 울음소리,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 수많은 의료진 선생님들의 발소리에 잠을 깼다.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 나는 속으로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내가 눈이 뒤집힌 채 약 30분가량 기절했다는 것이다. 옆에 계신 분은 내가 잘못된 줄 알고 무서워서 통곡을 하셨고, 엄마도 불안해서 나를 계속 부른 것이었다. 아직도 정확한 기절 원인을 모르지만, 나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외부 세계에 집중하기보단 온종일 나의 내부에 귀를 기울였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불현듯 떠오르는 이 질문은 누구든지 한 번씩 경험해봤을 것이다. 나는 실제 죽음과 이 질문을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내가 진짜 이렇게 죽는다면 내가 그토록 열심히 살아도 아무것도 아닐 텐데,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왜 태어난 것일까?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아직 정확한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 다시 한번 살아날 기회가 있다면, 말도 안 되는 기적이 다가온다면 헛된 인생을 살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내일이 너무나도 간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