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쌓인 성경책

by 연승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 뱃속에서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한 모태신앙이다. 교회를 다니는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과 이야기해 본 결과 교회에서 주는 문화상품권을 받기 위해, 고기를 먹기 위해, 이성 친구를 만들기 위해 등등 각자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출석하고 있었다. 정작 성경이 궁금하고, 신앙을 가지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또래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나 역시도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친구들과 놀기 위해 교회에 다녔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신앙생활은커녕 성경에 대한 지식조차 없었고, 기도하는 방법도 잘 몰랐다.


힘든 일이 시작되거나 정말 간절하면 두 손이 모인다. 나는 군대에서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지기 시작했다. 운전병으로 평일엔 운전하고 주말엔 군종병으로 일하며 전역할 때까지 교회 예배에 헌신을 했다. 전역한 뒤로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해외선교도 다녀오고, 전국 학생 신앙 운동(S.F.C student for christ) 학원 부총무로 일할 정도로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교회 다니는 것에 대해 말하고 다녔다.


중심을 잃지 않고, 올바른 길만 간다면, 나를 통해 많은 사람이 교회를 다니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전도의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내가 갑자기 백혈병에 걸리고 말았다. 많은 사람이 속으로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나보고 그 와중에도 기도를 한다며 네가 믿는 하나님은 없다고까지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분명 어딘가에 크게 쓰실 것이라 믿었고, 불신자들은 나를 보고 교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보기 좋게 살아나서 큰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혈액으로 들어가는 항암제를 보자 살짝 억울해졌다. 왜 내가 이렇게 아파야 할까? 술을 마시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기 온갖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은 멀쩡하게 가슴 펴고 살아가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야 하는 게 당연했다.


많은 사람이 일이 잘못되거나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원인을 상대에게로 돌린다. 책임지는 것보다 남 탓하는 게 더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가락질을 하게 되면 검지는 상대를 향하지만, 나머지 손가락은 나를 향해 있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독일의 재무부 장관을 지낸 '마티 바덴'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사람은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고 매사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하여 국가를 위해서도 큰 공헌을 했다. 그는 젊은 시절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없어서 싸구려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구두가 없어진 걸 확인했다. 새벽에 도둑맞은 것이었다. 구두를 사러 갈 돈도 없었던 그는 화가 나서 '하나님 나 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훔쳐 가게 하시다니'라며 아무 관련 없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날은 주일날이었는데 여관 주인이 창고에서 헌 신발을 빌려주며 같이 교회에 나가자고 했다. 다른 선택권이 없던 그는 신발을 빌려 신는 조건으로 마지못해 교회에 끌려갔다. 남들은 다 찬송하고 기도하는데 그는 그러지 못했다. 구두를 도둑맞은 것 때문에 화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보니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찬송하는데 눈물을 흘리며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서 바텐은 큰 충격을 받고 자기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두 다리를 전부 잃어버렸으니 신발이 있어도 신을 수 없겠구나! 그에 비하면 나는 신발만 잃어버렸으니 신발이야 없으면 사서 또 신으면 될 것을 괜스레 남을 저주하고 하나님까지 원망하였구나!”


그 후로 바텐은 인생관이 달라져서 자기에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남을 원망하지 않고 매 사에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 없는 것보다는 가진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당연히 하는 일은 쉽게 풀리지 않고 만나는 사람마다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할 것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스스로 초라해지고 불행해진다.


나 역시 항상 남들과 비교하는 삶을 살았다. 특히 건강을 잃어버렸을 때, 상황 탓, 남 탓을 하며 건강하지 못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식을 받은 후 나의 모든 화살은 동생에게 날아갔다. 그는 나와 비슷하게 생겼고,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분명 비슷한 삶을 살았을 텐데 나는 그렇게 살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장실 한번 걸어갈 힘이 없어 누워만 있어야 했던, 내 불쌍한 처지를 탓하며 괜히 동생이 좋은걸 하면 부러워했다.


백혈병에 걸린 것은 온전히 내 탓이고, 남을 원망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나쁜 사람일 뿐이다. 내가 아픈 것과 그들이 잘 살아가는 것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몸이 너무 아팠던 나는 마음까지 아프게 되었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다. 자책했고, 나보다 잘 살아가는 남을 미워했다. 편한 선택을 하며 혼자 고통받은 것이다. 몸이 망가지면 정신도 망가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당연히 성경과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을 부정하기 시작했고, 안 좋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더 악화하고 말았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모든 걸 뒤로한 채 불운 제조기, 0.1% 사나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나야 등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고작 두 번의 항암치료에 나의 기도는 멈췄고, 성경책에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불운의 씨앗이 더 크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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