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하기 전까지 덤덤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일까?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항암제는 일반 약들과 달라 손등에 있는 혈관으로 들어가게 되면 혈관이 망가지기 때문에 심장 중심 정맥에 관을 삽입해야 했다. 당장 시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공포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이름만 들어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시술하러 들어가는데 의사, 간호사 선생님이 나의 긴장한 모습을 보고 별거 아니라는 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행히 시술은 잘 끝났다
그런데 시술이 끝났음에도 상처에 붙여놓은 거즈는 계속해서 빨갛게 물들어졌고, 피가 멈추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지혈이 되지 않아 일시적이니 관이 삽입된 부분을 꾹 눌러 제대로 지혈해 준다면 금방 피가 멎을 것이라며 거즈 교체만 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13시간 동안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새벽에 응급으로 확인해보니 시술을 하던 중 의사 선생님이 찢어진 살을 꿰매지 않았던 것이다. 나와 이야기를 하느라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래서 새벽 늦은 시간 마취 없이 생살을 꿰맸는데 정말 아팠다. 당시 고통을 잊으려 손톱으로 팔뚝 살을 꼬집어 피멍이 생길 정도였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중심정맥관에서 채혈이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시술을 엉망진창으로 했다. 병원에 항의를 해봤지만 시술 전 몇 장의 동의서에 서명했기에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관을 다시 삽입하는 게 좋은데 비용을 우리가 다시 내야만 했다. ‘서울아산병원 최초’ 히크만 시술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한번 불운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는 나의 모습이었다.
히크만 재삽입은 체력 소모가 심할 것 같아 우선 1차 항암치료가 끝날 때까지 팔에서 채혈하기로 하고 대망의 첫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내가 느껴본 공포 중 가장 무섭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심정맥관을 타고 혈관으로 들어가는 항암제를 눈으로 보고 있자니 맨 정신으로 있을 수 없어서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은 채 누워 기도를 시작했다.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제외하곤 별다른 통증은 없었다.
그런데 후폭풍이 몰려왔다. 항암치료는 항암제가 들어가고 나서부터 진짜 시작인 걸 그때 알게 되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오심, 구토, 무기력증이 한 번에 덮쳐왔다. 오심이 너무 심해 치킨 광고를 보고 구토를 할 정도였다. 앞으로 여러 번의 항암제를 더 맞아야 하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힘들어하면 안 된다 생각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난 반드시 이겨낼 거야’
당시 나는 22살 군대를 전역하고 다이어트에 성공해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이것저것 좋은 옷도 입어보고, 예쁜 모자, 신발도 신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항암제로 인해 머리가 다 빠져버린 것이다. 어린 나는 외적으로 망가지는 것에 대해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 단단히 먹고, 씩씩하게 머리를 밀었다. 조금씩 자라나는 머리카락은 겨울철 힘없는 나뭇잎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다리부터 눈썹, 코털까지 몸에 있는 모든 털이 빠지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기가 힘들어 화장실 가는 게 제일 무서웠다. 위생상 문제로 하루에 한 번 반드시 샤워해야 했기에 샤워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거울을 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몸에 있는 털이 전부 떨어져 나갔을 때 나는 거울에 있는 내 모습에 익숙해지길 원했다.
‘내가 예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멋있는 모자들을 사서 쓰고 다닐 수 있겠구나’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고, 내 모습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백혈병 치료는 항암제를 통해 호중구 수치를 0까지 떨어뜨리고, 회복시키는 과정을 반복한다. 호중구는 백혈구 중에서 면역력을 담당하고 있는 중요한 세포이다. 환우들 사이에선 호중구 수치 0을 찍으면 바닥을 찍었다고 표현하는데, 바닥을 찍고 정상 수치를 회복하면 퇴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호중구 수치가 바닥을 쳤을 때 감염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만약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패혈증으로 이어지거나 죽는 경우도 있다. 현대 의학으로는 정상적인 백혈구와 비정상적인 백혈구를 구별해 죽이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모든 백혈구를 죽이는 치료법을 사용하고 있다.
나는 항암치료 2주 만에 호중구 수치 0을 찍었다. 그런데 수치가 바닥을 찍은 당일 40도가 넘는 고열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 심지어 오한까지 느껴 전신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혹여나 감염되어 이렇게 죽는구나 싶어 두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한과 고열의 고통은 군대를 전역한 지 8개월 만에 다시 혹한기 훈련을 한다는 느낌으로 견뎌냈고, 옆에 있는 엄마를 안심시켰다. ‘마치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하는 느낌이네 익숙하다’
혈액 수치가 바닥을 찍고 이틀이 지났다.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 마시기 힘들었고, 정신력 하나만으로 버텼다.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발열이 잡혔고, 오한도 사라졌다. 한 개의 고비를 넘겨낸 스스로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나중에 주치의 교수님에게 물어보니 바닥을 치면 고열이 나고, 회복하는 게 정상이라고 말해 주셨다. 앞으로 많은 과정이 남아있지만, 그 역시도 이겨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1차 항암치료의 핵심은 관해이다. 관해란 골수 내 비정상적인 암세포가 20%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즉, 항암치료의 성과가 얼마나 좋은지 골수 검사를 통해 확인해보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날을 돌이켜 봤을 때 불운이 나를 덮쳐 관해가 안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관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여태 내가 했던 치료를 처음부터 해야 하므로 나는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1차 항암치료에 관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검사 결과를 확인한 뒤 퇴원을 하면 되는데 중심 정맥관(히크만)이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관 삽입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제 집에 가서 조금 쉴 수 있으니 이 정도쯤은 가볍게 다시 할 수 있지’ 나는 군대 휴가를 나가기 전 일 처리하는 느낌으로 다시 한번 수술대에 올랐다. 나를 괴롭히던 중심정맥관이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
1차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사람들에게 아픈 사실을 말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갑자기 몇 개월을 잠적하여버린 것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교회 다니는 녀석이 백혈병이라고? 네가 믿는 신은 없어’와 같은 비난이 두려웠다. 고민 끝에 SNS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다행히도 내가 했던 걱정은 괜한 걱정이었다. 정말 많은 연락과 관심, 응원에 힘입어 병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나의 불행은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