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기둥을 다시 한번 세운다

by 연승

맹장 수술이 끝난 지 하루가 지났을 때. 오른쪽 배의 통증이 너무 심해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 모습을 본 간호사 선생님이 옆으로 왔다.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내려가고 있어 기도에 호흡기를 삽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찍은 x-ray엔 폐에 물이 찼다는 소견까지 있었다. 그리고 의료진 선생님들이 나를 처치실로 데리고 갔다.


나는 분명 기도에 호흡기를 삽입하는 부분에 동의한 적이 없는데, 수면 마취약이 들어갔고, 강제로 삽입에 들어갔다. 수면마취가 잘 안 되었던 나는 통증을 견디며 발작을 일으켰고, 의사 선생님들은 나의 팔과 다리를 묶은 채 억지로 삽입 시술을 마쳤다. 정신을 차린 나는 입에 커다란 호스를 끼고 있어 말도 하지 못한 채 통증을 견뎌야 했고, 두 눈에선 눈물이 펑펑 흘러내렸다. 누워서 견디고 있던 어느 주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의료진은 보호자인 엄마에게 x-ray 결과를 보여주며 폐에 물이 찼고, 호흡하지 못하기 때문에 관을 삽입해야 한다고 설명했으며, 동의서에서 명해 달라 요청했다고 한다. 정황이 없던 엄마는 그냥 서명했던 것이었다.


통증으로 인해 호흡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수술 도중 감염이 되어 패혈증까지 오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치는 바닥을 쳐서 열은 41 도로 올라갔다. 나는 엄마의 손바닥에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중환자실로 내려가게 되었다.


내려가는 동안 중환자실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당시 나의 감정을 글로 표현해 보고 싶지만, 마땅히 어떤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중환자실 도착과 동시에 갑자기 살아왔던 삶이 영상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자제력을 상실한 채 바보처럼 낄낄대기 시작했다. 불행이 온몸을 덮어버렸고, 나 자신을 향한 웃음소리가 지속해서 들려왔다. 나는 심한 헛구역질과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도대체 나는 어디까지 망가져야 하나 내 불행은 죽어야만 끝나는 건가? 꼬리에 꼬리는 무는 생각과 동시에 심박수는 180을 뚫고 높게 올라 더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동생이 제일 먼저 도착해 들었던 말이 '옆에서 형의 화를 낮춰 주세요'였다고 한다.


내 상태를 지켜본 동생은 지금 당장이라도 내가 죽을 수 있단 생각에 우선 여의도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엄마는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정말 고마웠던 순간이다. 동생이 들어와 “밖에 네가 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와 있다. 중환자실은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고, 한 번에 두 명씩 들어와야 하니 조금만 더 견뎌보라고 이야기했다.”


여의도 친구들이 한 시간도 안 되어 10명이 넘게 와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고마움과 동시에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뒤에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는데, 큰아빠를 포함한 큰집 식구들이 보였다. 그들은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었고, 응원이 아닌 동정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환자실 면회 규칙을 어기고 여럿이서 경호원을 밀치고 들어온 것이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었던 나를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들의 감정은 생각 없는 행동으로 이어졌고, 주변 사람들을 욕되게 했다. 나는 면회 통제를 받았고, 병실 앞엔 두 명의 경호원이 문을 막고 있었다. 넘치다 못해 폭발해버린 분노는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게 하고 있었다. 서러움의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받으니 잠깐 진정되었으나, 무너져 버린 나의 정신과 폐허로 되어버린 마음속은 돌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내 머릿속은 낄낄대는 웃음으로 장악되고 있었다.


나는 마약성 진통제에 엄청나게 의지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약을 맞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걸 알고 있는 주치의 교수님이 모르핀을 조금씩 혈액으로 들어갈 수 있게 조정을 해주셨다. 그런데 문득 나는 모르핀 주사에 의지하기 싫단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올라오고 있었다.


레지던트 선생님에게 내일부터 모르핀을 맞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지금 당장 이걸 끊으면 굉장히 힘들 수 있다. 우선 너의 선택을 존중하기 때문에 약을 끊겠지만, 너무 힘들면 바로 이야기를 해라 그때부턴 천천히 끊어보자'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모르핀이 혈액으로 들어가는 게 멈추는 순간, 말도 안 되는 오한이 찾아왔다. 약에 중독이 되어버린 몸은 계속해서 모르핀만을 외치고 있었다. 시곗바늘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병실은 아주 차가운 공기로 바뀌었고, 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려웠다. 그 순간만큼은 죽음의 공포에 모든 통증이 잊힐 정도였다.


'여기까지 왔으면 정말 많이 왔다. 이 정도면 후회 없다' 이 악물고 버텨내기로 했다. 설령 내가 죽을지라도 약에 의존하기 싫었다. 점점 한계점에 도달했고, 죽음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조금 더 편하게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사님 이젠 스스로 놓아줄 때가 된 것 같아요. 편하게 갈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나는 분명 삶을 마감하려고 목사님에게 전화했는데, 오히려 두 다리 멀쩡하게 일어서서 예배드리러 오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해주셨다. 내가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가진 의지들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불행과 어둠을 걷어내고, 완전히 밝은 세계를 만들어 보는 열망에 다시 한번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어릴 때 엄마가 나에게 해주었던 '너는 세상의 빛이 될 거야'는 말을 무한정 반복했다.


차가운 병실 안 온몸이 떨리는 오한과 고통 속에 뜨거운 두 눈물이 볼에 흐르면서 나의 마음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속 무너진 기둥을 재건하려는 노력을 진지하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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