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원 생활을 한다는 건 그저 편하게 누워서 회복되길 기다리는 줄만 알았다. 누군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가면 항상 누워 있는 사람들을 봤다. 언론과 인터넷에서 아프지도 않으면서 병원에 누워 보험비를 받아내는 가짜 환자를 자주 봤고, 군대에 있을 땐 작업 중에 다치거나 입대 전 지병으로 병원에서 군 생활을 하다 만기 전역하는 사람도 봤다.
남들은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들은 항상 편하게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심지어 삶이 너무 고달프고 힘들 때, 차라리 크게 아파서 며칠 쉬다 오고 싶다며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본 적 있다.
하지만, 내가 겪어본 병원 생활은 절대 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피를 뽑아야 했고, 오전 7시엔 키와 몸무게를 재야 했다. 당일 항암제의 투여량을 확인해야 하므로 이른 아침부터 전쟁을 치르듯이 움직였다.
우리 병동엔 키와 몸무게를 잴 수 있는 기계가 한 대뿐이어서 조금 늦장 부리면 남들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돌아와 혈압을 재고, 체온을 쟀다. 보통 아침 식사가 도착하기 전, 혈액 수치 결과가 나온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나의 혈액 노트’에 하나하나 빠짐없이 적어주신다.
결과를 보고 하루를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계획한다. 만약 궁금한 게 있다면 간호사 선생님들과 상의하고 일과를 짜야한다. 오늘을 제대로 설계해야 내일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루하루 죽음과 줄다리기하며 살아가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생활이다.
먹는 음식의 양과 물을 정확히 기록해야 하고, 대 소변량도 컵으로, 횟수로 기록해야 한다. 먹은 게 없으면 주사를 통해 영양제를 채워야 하고, 음식을 먹었는데 변으로 나오지 않으면 장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항암제가 들어가면 오한, 발열, 구토, 오심 등 각종 부작용과 싸워야 한다. 부작용과 싸우는 일은 사회에서 일하는 것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힘들다.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오심과 구토를 심하게 했는데 한 시간에 한 번 구토를 했다. 오죽하면 토 바구니를 끌어 앉고 잠이 든 내 모습을 본 주치의 교수님께서 안쓰럽다고 할 정도였다. 고통을 잊어보려 다른데 신경을 쓰기도 하고, 나름대로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렇게 환자들은 각자 부작용과 싸운다.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각종 검사에 들어간다. 나는 산부인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등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혹여나 외부인을 마주치면 ‘나도 밖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요일마다 정해진 교수님 회진 시간이 있지만, 나는 보통 점심 먹기 전에 교수님이 오셨다. 회진 한 시간 전부터 불편한 곳, 앞으로 치료과정에서 궁금한 것을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 짧으면 1분도 안 되어서 끝나지만, 괜히 까먹고 물어보지 못하면 절대 안 되었다. 내일 다시 물어봐야 하는데, 나는 불확실한 내일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교수님 회진 중 레지던트, 간호사 선생님이 많으면 6명까지 온다. 커튼을 걷어내고 이런저런 상태를 체크하고 불편한 곳은 없는지 물어보는데 마치 동물원에 있는 동물을 지켜보는 느낌과 비슷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실험실에서 약을 투여하고 결과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교수님이 웃으면서 ‘잘하고 있습니다’고 말씀하시면 매우 좋은 상태이므로 확실한 내일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경우를 여러 번 지켜봤는데, 대부분이 결과가 좋지 못했다.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 환자 번호가 생긴다. 서울아산병원은 8자리 숫자였는데, 내 군번이랑 똑같은 길이였다. 처음엔 굉장히 어색해 진료카드를 들고 다녔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외워진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군번이 잊힐 때쯤 환자 번호를 다시 발급받은 것이다.
항암제나 각종 약을 투여하기 전, 환자 번호와 이름, 생년월일을 반드시 확인한다. 혹시라도 동명이인이 있거나, 약을 잘 못 투여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8자리 번호가 자동으로 외워질 정도로 많이 듣는 것, 병에 걸린 나 때문에 힘들게 움직이는 엄마를 보면서 죄인 같았다. 퇴원할 날만 기다리며 하루하루 버텨내는 모습, 그리고 감염 때문에 내가 먹고 싶은 음식조차 통제당하는 생활은 마치 창살 없는 감옥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