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조금씩 추워지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눈부신 아침햇살을 보며 오늘도 두 눈이 떠질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39 도로 뜨거웠다. 밖에 사람들은 패딩을 입고 다닐 텐데, 나는 몸속에 원하지 않는 보온재가 멈추지 않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병실을 창가 쪽으로 배정을 받았는데, 실제로 밖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창밖 구름을 보니 유난히 구름을 좋아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같이 한강을 걷다가 문득 신기한 게 떠올랐다고 좋아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각자가 이 세상의 주인공일 텐데’ 우리도 우리의 시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기뻐하는 모습에 나도 같이 맞장구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짧은 대화였지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면 깊숙이 내려가 보면 사람은 누구든지 사랑은 원하고 있다. 인생에서 사랑과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다. 또, 누구나 자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저 구름 뒤에 주인공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친구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열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 정신이 몽롱해져 구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약에 취해 현실과 꿈을 구별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천장과 창가를 왔다 갔다 하는 초점은 중심을 못 잡고 있었다.
“이번에도 거절당했어.”
내 눈은 맞은편 환자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한숨 푹 내쉬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기도 했고, 걱정되기도 했다. 정말 고달픈 모습이었다.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기로 약속한 분이 끝내 거절한 것이다. 이것으로 세 번째 거절이다.
백혈병 환자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지 못하면 병이 악화하여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 완치 판정을 받기 위해선 최종단계인 조혈모세포 이식을 해야 한다. 이식 종류는 타인 동종이식, 자기 이식, 형제 동종이식, 반 일치 이식이 있다. 유전자가 일치할수록 이식편대 숙주반응(이식거부반응)이 약하게 오기 때문에 웬만하면 동종이식을 하는 것이 좋다. 동종이식이란 유전자가 백 퍼센트 일치하는 이식을 말한다. 병마다 치료 방법이 다르지만, 대부분은 형제 동종이식을 한다. 나도 큰형의 조혈모세포를 기증받았다.
가족 중에 유전자가 일치하는 사람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조혈모세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기증하겠다던 사람이 마지막까지 와서 거절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루만 희생한다면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선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말 미웠다.
그러나 정작 내가 거절한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니 거절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앞서 친구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자기가 주인공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기적인 행위는 인간의 본능이다. 수화기 너머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건 쉽지 않은 행동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 본인은 도덕적인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외래 진료를 갔다. 간단한 X-Ray 촬영을 하고 나오는데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한 달 전 처음 항암치료를 할 때 맞은 편 아저씨 보호자였다. 분명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야 하는데, 안부를 묻기 전에 나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기증자에게 여러 번 거절당하셨는데, 잘 해결하셨는지 물어봤다. 해외에서 일치하는 사람을 찾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들 조혈모세포를 받아 반 일치 이식을 했는데, 이식편대 숙주반응(이식거부반응)이 심하게 와서 결국 버티지 못하시고 먼저 하늘로 가셨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꼭 마지막까지 버텨서 반드시 먼저 간 아저씨 몫까지 살라며 부탁하셨다.
‘제가 꼭 해내겠습니다’ 이상하게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슬픔을 눌렀다. 휠체어를 타고 있었지만, 바퀴를 스스로 굴릴 수 있을 만큼 힘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다. 골수이식이란 단어가 무섭다는 이유로 조혈모세포 이식이란 이름으로 바뀐 만큼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는 항상 받는 입장이었지만, 단 한순간도 감사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수혈과 조혈모세포 기증은 건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부라고 생각한다.
각자 주인공의 삶을 사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저 구름 뒤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나는 상상
속에서 남이 되어 보기도 했다. 해가 지고 하늘에 있는 어둠이 내려오기 전 일기장을 펴고 적어 내려갔다. ‘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