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것을 내려놓다.

by 연승


주치의 교수님과 담당 간호사, 엄마와 나. 총 넷이서 병원 비디오방에 갔다. 이곳은 이식 과정에 대해서 빠짐없이 설명해주고 최종 서명을 하는 장소다. 쉽지 않은 과정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무서웠다. 억울함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왜 하필 나일까?’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질문은 다시 하지 않기로 했지만, 상황이 심리를 만들었다.


“교수님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녀석입니다. 극소수만 겪는 항암의 부작용, 히크만 시술 실패, 막창자꼬리 수술, 그 외에 작은 것까지 항상 실패하는 저는 너무 불공평한 삶을 사는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해 봤자 고통과 번민이 생길 뿐인데 참지 못하고 억울함을 쏟아내고 말았다.


“연승아, 우리가 지금 대화하고 있는 순간에도 교통사고로 인해 손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죽음을 놓고 보면, 너는 치료를 통해서 살아날 수 있다. 먼저 가신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그들과 너를 비교하자면 삶은 불공평하지 않다. 오히려 네가 더 축복받은 것이다. 교수님 믿고, 큰형 조혈모세포 이식받아보자, 분명 좋은 결과 있을 거야” 주치의 교수님께서 침착하게 나를 위로해주었다. 정말 감사했다. 덕분에 용기가 생겼고, 억울함을 걷어낼 수 있었다.


멀리서만 바라보던 서울아산병원 74 병동 무균실 문 앞에 섰다. 조혈모세포 기증자인 큰 형은 회사 일로 바빠서 오지 못했고, 가족 넷이서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마지막 사진이다. 무균실에 들어가는 순간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다. 그리고 큰형의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아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병원은 따뜻했는데, 오한을 느꼈다. 한 달 전 충수돌기 수술을 받았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다른 유형의 두려움이었다. 이곳에서 어떤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죽음이란 녀석이 두 팔 벌려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시간은 거꾸로 매달아도 간다는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여러 개의 문이 보였다. 가진 소지품을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전달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 하루는 편하게 주무세요 진짜 치료는 내일부터 시작됩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완벽하게 소독한 내 물건들을 가지고 왔다. 오늘은 마음을 편하게 가지기로 했지만, 몸과 마음은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있어야 할 방을 둘러보는데, 침대 옆에 구토 바구니가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무균실에서 치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항암제를 맞는다. 그리고 호중구가 0이 되기 전 토끼 혈청을 맞게 된다. 나는 무엇보다 토끼의 피를 맞는 게 가장 무서웠다. 그러나 무서워도 여길 들어온 순간 어쩔 수 없다. 나의 조혈모세포 살아온 시간에 비해 짧은 일주일 만에 항암제 생을 마감해야 했다.


‘불운했던, 어쩌면 굉장히 불쌍한 녀석아. 그동안 수고 많았다.’


살면서 가장 불편했던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했다.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나는 치료 초반 기세 등등하게 항암제와 맞서 싸웠다. 하루가 별 일없이 지나가는 듯했다. 얼른 일기장을 폈다. ‘나는 내가 죽는 순간과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할 것이다’ 저 문장을 마지막으로 펜 한 번을 잡지 못했다. 일기장을 덮는 순간부터 쉬지 않고 구토를 했다. 나는 물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어찌나 많은 것들이 쏟아지는지 정말 신기했다.


새벽부터 환각 증세가 나타났다. 옆에 동생이 있기도 했고, 엄마가 보이기도 했다. 친구들이 와서 말도 걸어주고 행복했다. 그런데 그들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보였다. 서운한 마음에 소리쳤지만 목소리 대신 구토만 쏟아질 뿐이었다.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와 핸드폰을 연결해서 음악을 들었다. 현실과 꿈을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며 헤매고 있었다. 기다리면 분명 더 나은 하루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정신을 붙잡았다.


아침인지 밤인지 헷갈렸다. 나는 그저 정신을 잃고, 구토하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구토 바구니를 꼭 껴안고 정신을 잃은 나를 주치의 교수님이 깨웠다. “진토제를 투여하고 있는데도 많이 힘드니? 바구니를 껴안고 있구나” “네, 그래도 견뎌보겠습니다” 힘들면 참지 말라는 말과 함께 오늘도 힘내라고 응원해 주셨다.


환각인지, 현실인지 모르겠지만 교수님의 응원이 현실이라고 믿었다. 3일 뒤면 나는 토끼 혈청을 맞고, 완벽하게 세상에서 지워진다. ‘고맙고, 미안해 다시 태어나면 꼭 잘살아 볼게’ 조금이라도 정신이 남아있을 때 나에게 인사하고 싶었다. 어떠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구토를 하다 보니 3일이 지나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드디어 토끼 혈청을 가지고 오셨다. 두려움이 혈관을 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다시 한번 고열, 구토, 환각을 경험했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화장실로 갔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세수했다. 어젯밤 너무 울어서인지, 약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두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자리로 돌아와 멍하게 천장을 바라봤다. 실내가 빙빙 돌아가는 것처럼 어지러웠고, 어둠이 편할 것 같아 두 눈을 감았다. 그러던 중 친한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내일 이식이라며? 잘하고 와 항상 응원하고 있어, 날짜 한번 기가 막히네! 그날은 내 생일이야”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한 채 고통 속에 허우적대던 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식 날이 다가온 것이다. 나의 조혈모세포가 완전히 파괴되어야 하는데,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큰형의 조혈모세포를 무려 6시간 동안 모았다. 그리고 그 소중한 희생이 내 심장으로 흘러 들어왔다. 미안했고,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나는 제대로 된 인사를 할 수 없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구토에 식도가 망가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심한 통증에 침을 삼킬 수 없었다.


모르핀이 없으면 물 한 모금 마시는 게 힘들었다. 나는 겉으로 멀쩡했지만, 혼자 생리 현상도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다운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만 맛있는 걸 마음껏 먹고, 편하게 늦잠 자고 일어나서 개운하게 씻고 싶었다. 통증 없는 하루가 간절했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간 잊힐 이 고통스러운 순간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앞으로 고통스러운 순간이 여러 번 오겠지만, 이것보다 힘든 일은 없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날 이후 나는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혹시라도 눈을 감으면 내일이 오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 나를 덮었기 때문이다. 아주 컴컴한 어둠 속에서 혼자 서 있었다. ‘하나님,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어둠 속에서 빛이 되게 해 주세요’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면서 나를 좀 더 아름답게, 앞으로 남은 삶을 살기 위해 나 자신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렇게 나는 소중한 목숨을 버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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