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서 시작된다.

by 연승

건강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건강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함부로 여긴다. 심지어 자기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건강보다 더 신경 쓰거나, 들고 다니는 가방, 옷 등 사소한 것에 더 집중한다. 병에 걸리기 전까지 나도 그랬다. 그런데 건강이 무너 지고 나니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인터넷에서 어떤 강연의 내용이다. 강사가 칠판에 ‘100,000,000’이란 숫자를 적었다. 그리고 청중들에게 “여기 적혀있는 숫자가 여러분 통장에 찍혀 있다면 많아 보이나요?”라며 질문을 했다. 이어서 1억 원이 적게 느껴질 수 있는 도 있다며 0 두 개를 더 붙였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지금 자기 통장에 100억 원이라는 큰돈이 있는 것처럼 모두 기뻐했다.


강사가 다시 질문을 했다. “앞에 적혀있는 ‘1’이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열정이라 답했고, 노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답은 바로 ‘건강’이었다. 건강을 잃으면 뒤에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는 것이었다. 건강 앞에선 돈은 아무런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애플 창업자이자 아이폰, 아이패드를 출시하고, IT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이다. 그는 사업 분야에서 정말 큰 성공을 거두었고, 남들이 보기에 그의 인생은 성공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는 죽음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기록했다.


“일을 제외하면 제겐 기쁨이 없었습니다. 큰 부를 이뤘다 해도 그저 익숙해져 있는 제 삶의 사실일 뿐이죠, 지금, 이 순간 병상에 누워 제모든 생애를 되돌아볼 때 많은 생각을 하죠, 제가 그렇게도 자부심을 느꼈던 모든 사회적 인정과 부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희미해지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저는 생명을 연장해 주는 기계의 초록빛과 소음을 보고 들으며 죽음에 신의 숨결이 점점 더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저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우리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정도의 부를 축적했을 때우리는 부와 전혀 관련 없는 다른 일들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것을. 차를 대신 운전해 주고 돈을 대신 벌어줄 사람들 고용할 수는 있으나 대신 병을 짊어지고 대신 죽어 줄 사람을 고용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수술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었는데 읽지 않은 책이 한 권 있었다는 걸, 그 책의 제목은 건강한 삶입니다.”


건강에 대해 아무리 강조해도 직접 잃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건강할 때 건강을 챙기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골수이식이 끝나고 퇴원을 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 본 적 없는 재발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만약 병이 재발한다면, 여태 했던 치료보다 더 높은 강도로 치료해야 한다. 불안감이 밀려왔고, 덜컥 겁이 났다. 다시 생긴 소중한 생명에 엄청난 애착이 생겼다. 건강엔 끝이 없었고, 평생 동반해야 하는 영순위 파트너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힙합을 좋아했다. 어디든지 가서 랩을 하면 모두가 좋아해 줬다. 성인이 되고 군대에 다녀오니 음악보단 자연스럽게 공부에 몰두했다. 그리고 공부가 더 좋아졌다. 병에 걸리고 치료받으며 어렸을 때 미련이 남아있던 음악을 해 보고 싶었다. 나의 모든 것이 항암제로 인해 파괴되었지만, 단 한 가지, 목소리는 여전했다.


음악은 치유의 힘이 존재한다. 성경 속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울 왕이 정신적인 고통 속에 헤매고 있을 때 다윗이 음악으로 치유해준다. 나 역시 치료받을 때 음악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다.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가 남들에게 치유의 힘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 자리에서 노트를 펴고 환우를 대상으로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해본 적 없던 내가 막상 시작하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그래서 무작정 학창 시절 존경하는 뮤지션이자 프로듀서에게 연락했다.


‘백혈병을 이겨내는 청년입니다. 음악을 만들어 환우들에게 들려주고, 그 음악이 흐르는 곳에 치유의 힘이 있길 바랍니다. 제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혹시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신가요?’


감사하게도 강남 작업실로 오라는 답장을 받았다. 면역력이 약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긴장된 발걸음을 내디뎠다. 어려서부터 정말 좋아하던 뮤지션에게 노하우를 전수받고, 같이 작업을 하는 과정이 정말 꿈만 같았다. 어쩌면 백혈병에 걸리기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평소에 친구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 아픈 몸을 이끌고 이스라엘에 가서 느꼈던 감정, 치료받으며 했던 과정들을 기억하며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녹음을 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섰을 때 많은 치유를 받았다. 백혈병 치료는 병원에서 받고, 정신적인 치료는 음악을 만들며 받았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낼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아주 천천히 다섯 곡을 만들었고, ‘한국 백혈병환우회’ 환우들, 보호자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었다. 목표를 달성한 성취감에 너무 감사했다.


당시 나는 몸과 마음, 정신상태까지도 망가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고 그저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체념했다. 남들과 비교하며 안 좋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락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문득, 건강이 파괴되기 이전과 똑같은 게 무엇인지 ‘단 한 가지’에 집중했다. 그것은 바로 목소리였고, 좋아하는 일과 맞물려 큰 감사를 몰고 왔다.


‘그곳에서 시작되네’ 내가 평소에 즐겨 듣는 마커스 워십의 찬양 제목이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입술에 닿아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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