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비치는 넌 내가 아니야

by 연승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의 내가 잊히고 있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화를 내면서까지 그리운 내 모습을 찾으려 애썼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뛰어봤지만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병원 옷을 입는 순간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디인지 정확히 구별이 되었다. 그럴수록 예전 나의 존재는 점점 더 희미해졌다.


이식받고 나오면 면역력이 거의 0인 상태로 시작한다. 그래서 감마글로불린이란 면역증강제를 맞으려 병원에 가야 하는데, 갑자기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통증이 찾아왔다. 화장실 가기 두려웠다. 문득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몇 개월 전항 암 치료를 막 시작할 때 화장실 거울 보기가 두려웠던 내 모습과 일치했다.


누구나 한 번쯤 전날 라면을 먹고 자서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거나, 숙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해 초췌해진 자기 모습을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다른 존재가 거울 속에 있다. 나는 하루아침에 머리가 다 빠진 모습과 통증을 견디려 빨갛게 된 피부,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붙어 버린 얼굴을 가진 내가 알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누군가 서 있는 걸 봤다. 그리고 그게 ‘나’라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지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스스로가 불쌍해서? 너무 못생겨서? 그렇다. 모든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는 웃음이었다. ‘지금 바로 써먹는 심리학’에 등장하는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고 했다. 사람은 웃기만 해도 찡그린 사람보다 행복감을 더 느낄 수 있다. 거울을 보고 행복한 척을 하기로 했다.


치료받는 내 모습에 대해 부정적인 웃음이 있었다. 나는 거울 속 나에게 미소를 건네 봤다.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불행보다는 행복이 찾아왔다. 그리고 ‘넌 할 수 있다’는 말을 해 주었다. 소변의 통증에도 눈물이 고일 정도로 아파도, 항상 마무리는 웃음이었다. 지속해서 웃어주니 어느덧 출혈성 방광염이 잡히기 시작했다. 샤워하기 전, 후 나는 지속해서 긍정적인 말을 거울 속 나에게 건네었다. 단기적으로 효과는 있었지만, 인간의 감정은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해주어야 장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식받은 지 1년이 지났을 때였다. 주치의 교수님에게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굳이 지금 가야겠냐며 말리셨다. 형의 조혈모세포가 잘 생착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불안한 상태였다. 나는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고 교수님을 설득했다. 결국 교수님은 가서 조심하라는 당부와 함께 허락해 주셨다. 그리고 먹어야 할 약도 잔뜩 챙겨 주셨다. 언제든지 병원에 전화해서 상태를 보고하기로 했다.


도착해서 괜찮은 척하려 애썼지만 매일 밤 정말 힘든 고비들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았다. 나는 교수님이 챙겨주신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하루를 잘 버텨냈다. 그러던 중 엔게디라는 곳에 도착했다. 바위로 뒤덮여있는데 폭포가 떨어지고 있었다.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이 자기를 질투하는 이스라엘의 사울 왕을 피해 도망친 곳이다. 다윗은 사울이 무서워서 골리앗의 고향인 블레셋으로 가서 숨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적대관계를 가진 곳이었다. 적국까지 좇아오지 않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적진에서 다윗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윗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침을 흘리며 벽에 낙서한다. 다윗이 도망을 치던 때가 나와 비슷한 나이인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살기 위해 미친 척하는 다윗이 존경스러웠다.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견딜 수 없는 걸 견뎌내야 했고 눈물이 차오르는 밤이 여러 번 있었다. 무너지더라도 다시 희망을 좇으며 살아남았다. 다윗처럼 어떻게든 살아야 그 뒤가 있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거울을 볼 때마다 자존감이 무너지고 우울해지는 무한의 고리를 끊어내야 했다. 겉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가진 외부의 상처를 내면의 세계에 그대로 전달하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을 무시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더 무시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모습을 잃어버린 나에게 긍정적인 말을 수년간 반복해도 좋은 날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도 샤워하면서 거울 속 나에게 한마디 한다. “살아내느라 힘들었지, 넌 할 수 있다. 반드시 더 좋은 날이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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