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키는 힘

by 연승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힘들거나 자존감이 무너지고,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다 못해 결국엔 지쳐서 넘어진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각자 일어서는 방식이 다르다. 돈이 위안이 되기도 하고, 어쩔 땐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하며, 무한한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수도 있다.


나는 무너질 때마다 항상 엄마와 동생이 떠오른다. 이 세상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는 말이 있다. 온종일 구토와 고열에 시달리는 아들이 얼마나 불쌍했을지 자식 입장으로 그 속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엄마는 내 앞에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그 당시 엄마의 눈물을 봤으면 나는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무너진 나를 일으켰다.


어려서부터 엄마는 부모라면 자기 자식은 다 이뻐 보인다며 우리 형제들에게 종종 잘 생겼다고 말하곤 했다. 문득 나는 항암치료받는 내 모습이 엄마한텐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졌다. “엄마, 머리카락 다 빠지고 피부도 완전히 망가진 내가 아직도 잘생겨 보여?”병원 침대와 한 몸이 되어버린 내가 고개를 돌려 엄마에게 물어봤다. “그래, 여전히 아기 같고 귀여워, 머리카락 없으면 어때, 예전이랑 똑같은데 뭐” 나는 엄마의 답변을 듣고 웃음이 터졌다. 건강할 때나 아파서 누워있을 때나 엄마가 보는 눈은 한결같았다.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이 이뻐 보인다는데 우리 엄마도 예외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사람들이 무너진 나를 보며 손가락질하고, 질투해도 절대 돌아서지 않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따듯한 애정이 밀려왔다. 그리고 절대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백혈병 덕분에 삼 형제 중 엄마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아들이 되었다. 형과 동생이 들어보지 못한 엄마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사람은 혼자 태어난다. ‘인생은 원래 혼자’, ‘혼밥’ 등 우리의 일상에서 혼자라는 단어는 흔히 보인다. 그런데 나는 혼자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었다. 태어나서부터 이십 대 중반이 넘도록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외로움이란 기분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알지 못했다.


중학생 때 동생과 학원이 끝나고 배가 고파서 닭꼬치를 먹기 위해 근처 포장마차에 갔다.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한 사람이 떠오른다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인 중 80세가 훌쩍 넘은 일란성쌍둥이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병으로 쌍둥이형을 먼저 하늘로 보낸 동생의 이야기였다.


동생은 88세에 죽는 그 날까지 쌍둥이 형을 그리워했고,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자식들에 게도 이젠 형을 보러 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유언을 남겼다. 포장마차 주인아저씨는 너희도 사이가 정말 좋아 보인다며, 앞으로 자주 오라는 말과 함께 서비스를 주셨다.


그때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정말 옆에 있는 동생이 죽는다면 어떨까?, 나 역시도 정말 그리워 일상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백혈병에 걸리면서 동화 같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다. 내가 이대로 죽는다면 동생은 나를 엄청나게 그리워할 것 같았다. 동생한테 장난 삼아 내가 먼저 죽으면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한 적 있는데, 그때마다 말을 회피했다. 이런 동생조차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두 번째 항암을 마치고 퇴원하는 전날 밤 인생이 너무 서러워 조용히 울다 새벽이 왔다. 아침이 되어 몸무게를 재고 왔는데, 옆자리 환우 보호자가 오늘 퇴원하는 나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그리고 밤에 조용히 울던 모습을 봤다며 뭐가 그렇게 서러웠냐고 물어보셨다. 시간 괜찮으면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다.


내가 정확히 밤에 서러움을 느낀 건 SNS를 접속하면서였다. 친구들이 대학 생활하면서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니는 게 너무 부러웠다. 그들은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었지만, 다른 계절을 만나고 있었다. 아프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돌아가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면 멀쩡하다가도 저녁만 되면 눈물이 쏟아지기를 반복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아주머니가 나에게 괜찮다는 말을 건넸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조바심 두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라는 이야기 해 주셨다. 일단 치료를 끝내고 살아야 뒤가 있단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뜻을 이해했다. 우선 살아야 한다. 그게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열등감과 자존감 문제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씩 가지고 있다. 나만 힘든 문제가 아니다. 침대에 누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나를 건강한 사람들과 비교하며 혼자 상처 받고 있었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이런 질문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일이라는 가정은 현실에서 도피할 뿐 해결책을 주지 못했다.


사람을 통해 많은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사람을 통해 큰 위로를 받기도 한다. 나는 치료받는 동안 진심으로 나를 기억하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삶이 너무 힘들다는 사람이 한 명씩 꼭 있다. 나는 그들에게 명확한 해결책을 주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 말을 전한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응원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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