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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호랑이 Feb 01. 2021

6.40대 쓰고 싶은 이야기

상처와 후회,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

상처와 후회란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           


  예수님도 열두 제자와 항상 좋지만은 않으셨다고 한다. 부처님 또한 제자들과 마냥 좋지만은 않으셨을 거다. 갈등도 상처도 당연한 것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의 나는 항상 피해자 역할만을 했다는 것.      

그러나 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된다. 상처는 결국 준 것만큼 돌아오는 것임을. 피해자였다면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것을, 그러니 징징거리지 말고 감내해야 함을, 상처 또한 내 몫임을 알아가는 중이다.     


상처     

  나는 무딘 편이다. 그래서 돌이켜 보면 알게 된다. 그 때 내가 왜 아팠는지, 왜 힘들었는지를 말이다. 회사생활에서 나는 소위 왕따라는 걸 당했다.      

“너 왜 어제 선배 결혼식에 안 온 거야?”

회사 선배의 불호령에 내가 더 놀랐다.      

“동기들이 이야기 안 해 줬어?”

그러자 동기 중 하나가 얼른 대답을 가로챘다.     

“늦잠 잔다고 못 갔다던데요.”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던 선배, 그렇지만 나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동기 둘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일러 볼 테면 보라는 식의 눈빛. 그 외에도 업무 보고를 해야 할 일에 대해 내게만 알려 주지 않는다던가, 2박 3일 교육을 가선 내내 나를 따돌리기도 했다.       

후에 그들과 친해졌지만, 나는 묻지 못했다. 내게 그 때 왜 그랬는지. 낯가림이 심해서 인지 처음 모이는 곳에선 말없이 있는 내 모습에, 가끔 잘난 척 한다던가 차갑다는 등 그렇게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간관계가 서툰 나는 그저 당하던가, 아니면 모른 척 하고 만다.      

   그 시절 동기들과는 서서히 멀어졌다. 친해졌지만 친해진 게 아니었다. 내 마음 속의 상처는 전혀 아물지 않았다. 그 때 왜 그랬냐고 물었다면, 더 진실 된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후회     

  나는 좀 많이 뒤숭숭했다. 1학년 때부터였다. 엄마가 100원을 용돈으로 주셨는데, 그러면 항상 50원으론 지우개나 연필 칼을 사야했다. 아침마다 선생님은 필통에 가지런히 연필 세 자루와 지우개와 연필 칼이 있는지 검사를 하셨고, 하교할 때쯤이면 매번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아침이면 지우개든 칼이든 뭐든 하나를 사야했다.      

  그런 내 뒤숭숭함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따라다녔다. 오늘까지 내야 하는 학급비를 또 까먹은 고등학교시절, 엄마는 그때 학원을 하는 큰언니의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유난히 코 많이 흘리던 우리 조카. 헐레벌떡 오신 엄마는 코 많이 흘리는 조카를 업고, 머리는 산발을 하신 채였다. 돈을 낚아채고는 말도 없이 교실로 들어갔다. 

  혹여 누가 봤을까봐 화가 났다. 집으로 가선 며칠째 부어 있었다. 남들의 시선이 친구의 시선이 뭐라고 나는 가장 소중한 이들에게 그렇게 화살을 날려댔던 걸까. 이제와 보니 그 화살들은 결국 내게 두 배로 날라 왔다. 온통 등에 화살을 맞아가며 상처를 주고 있었다. 

  지금의 나라면 코 흘리는 우리 조카의 코를 닦아주고, 산발한 엄마의 머리를 안쓰럽게 봤을 텐데, 그 때의 나는 까칠했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러고 나면 항상 내가 더 아팠지만, 그런 행동을 멈추지 못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우리 아인 천사다. 내가 머리를 박박 밀고 옷을 벗고 다니지 않는 한 ‘케세라 세라’다.     

  남편에게 아이에게 보내는 문자 말미에 마치 자동으로 나오는 것처럼 ‘사랑해요’라고 쓴다. 이렇게 쉬운 말과 글을 한 번도 못 했던 분, 우리 아버지. 나 또한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사랑할 때, 사랑하는 마음이 들 때 표현하지 못한 것, 아버지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 말 못한 것이 너무 후회된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매번 매 순간 나에게 사랑한다고 수없이 말해주셨다.      

늦은 밤에 사 오신 붕어빵, 내게 밀어주시던 김과 달걀부침, 아버지가 포기했던 꿈과 시간들, 아침이면 가지런히 깎여 있던 연필들, 연수 갔다가 돌아왔던 늦은 밤에 기차역에서 기다리시던 아버지 모습, 표현도 사랑도 서툴렀던 아버지.


  휴대폰에 꾹꾹 눌러썼던 “밥은? 날이 차다.” 무뚝뚝한 문자와 폰에 있던 우리 가족사진들. 그 모든 것들이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난 이제 아버지의 비석 앞에서 늦어버린 말들을 한다. 왜 다정한 문자 한 번 보내드리지 못했을까, 떠나시던 그 때 내가 미치도록 말하고 싶었던 진심을 가슴에 안고 가셨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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