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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호랑이 Jan 27. 2021

6.40대 쓰고 싶은 이야기

2)소소한 행복, 그림과 커피

소소한 행복, 그림과 커피      


그림     

  체육을 못 한다. 뭐 아쉬울 건 없다. 음악? 음악도 못 한다. 그렇지만 이 것 또한 아쉬울 건 없다. 가끔 내가 노래를 부르면 다들 웃어주니 그것도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림도 당연히 못 그린다. 그런데 이건 좀 아쉽다. 내가 갖고 싶은 재주가 있다면 그건 그림 그리는 재주다. 내가 사랑하는 이, 그리운 이들을 그리고 싶고,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하늘과 별을 내가 받은 느낌을 담아 그려주고 싶다. 

  또 그림은 책과 비슷한 감동이 있다. 화가의 삶을 알게 되면, 그 그림은 화가의 일기장처럼 느껴진다. 누구를 사랑하는지,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화가의 감성이란 필터로 또 다른 세상을 보는 것이다.      

  고흐의 별도 좋지만, 르네 마그리트의 대낮에 그려진 선명한 달도 좋았다. 이탈리아 라벤나성당의 스테인 글라스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클림트의 장식성 짙은 그림도 좋았다. 러시아 소설의 표지에 자주 등장하는 레핀의 그림도,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장욱진 그림도 좋다.      

  그림엔 숨겨진 이야기가 담겨 있다. 푸른빛의 슬픔이 노란 빛의 그리움과 붉은 울음이 초록의 우수가, 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며, 그 색과 선에 담긴 감성들이 넘나든다. 그렇게 그림은 삶을 색으로, 내면을 빛과 질감으로 그려낸다. 그냥 나는 그림이라면 좋다.      

  유식할 필요도 많은 걸 알 필요도 없다. 내가 좋으면 그만인 그림들, 요즘은 책표지에 자주 쓰이는 안소현, 옥승철 등의 젊은 작가들 그림도 좋아진다. 거대한 여성들을 그리는 제니 사빌이나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도 좋다.      

  미하일 브루벨의 악마 연작도 좋다. 악마와 인간 공주가 서로 사랑에 빠진다. 악마와 사랑에 빠진 공주는 결국 죽고 만다. 영혼이라도 같이 있고 싶지만, 천사가 나타나 공주의 영혼을 거두어 가고,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악마를 그렸다.      

  우리나라 화가 중에 제일 작품 값이 비싸다는, 김환기 작가님의 수많은 점들이 그려진 작품 앞에 서면, 그 점들 하나하나마다 항아리와 달과 삶이 모두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난생 처음 뭔가를 훔쳐 내달리고 싶었다. 그 점 하나 우리 집 거실에 걸어 놓으면, 휘엉청 밝은 달 하나 떠오르지 않을까. 어느 날은 별 하나로, 어느 날은 항아리로 그렇게 거실을 밝혀주지 않을까. 그 항아리에 내 마음들을 담아 두고 푹푹 삭혀 깨끗이 빨아 밤하늘에 널어 두면 달도 되고 별도 되지 않을까.      

그림은 꿈을 꾸게 하는 책, 선과 색으로 그려진 책이다.           


커피     

  아침의 커피다. 아침엔 맥심이지. 우리 집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왠지 어제도 무탈 했구나 오늘도 별일 없을 것 같은 낙관론자가 된다.     

여름에도 마찬가지다. 악독한 무더위에도 무조건 따뜻한 커피, 여름 더위와 맞짱 뜬다는 마음으로 음미하다 보면 그 고소함과 달콤함이 마음에도 스며드는 것 같다. 이 문장을 쓰고 보니 내가 간장게장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점심엔 아메리카노, 당연히 따뜻해야 한다. 구수하고 연하게 탄 한 잔의 아메리카노는 노곤한 낮잠을 쫓는데 최고다. 옆 동 아파트에 격렬하게 짖는 개님이 계신다. 아메리카노는 오는 낮잠을 격렬하게 짖어 쫓는 그 옆 동 개님을 닮았다.

  그리고 저녁, 설거지까지 마치고 난 후, 오늘도 수고했다는 나에게 주는 보상 같은 커피 한 잔. 아메리카노도 맥심도 괜찮다. 이 땐 커피 맛보단 여유로움과 하루를 무사히 마쳤단 안도감에 건배하는 맘이다. 요즘은 위가 안 좋아서 세 잔의 커피는 무리다. 가끔 보리차를 들고 커피 마시듯, 여유를 부려 본다.

  어릴 적엔 돈 많은 부자나 어느 나라 왕이 “너는 내 딸이다”라며 나타나길 기다렸다. 부모님과 헤어지겠다는 생각이라곤 없으면서 그런 황당무계한 상상을 했다. 커서는 로또나 됐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렇게 회사가기 싫어하는 우리 남편, 호탕하게 웃으며 “까짓 거, 사표 써!”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현실, 숨 막히고 힘든 현실이다. 두렵기도 하고 미래를 생각하면 우울하기도 하지만, 커피 한 잔과 사랑하는 그림들이 내게 마약처럼 속삭인다.      


“Don't worry be happy"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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