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커피가 맛있구나
누군가에게 여행의 목적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휴식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경험과 배움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행에는 늘 변수가 뒤따르고, 이는 행로를 바꾸고 심지어 삶의 방향까지 바꾸기도 한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11월 하순. 내가 살고있는 스코틀랜드 글라스고는 비바람과 짧은 낮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탄절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도, 나의 일상은 마감과 아이들의 감기에 쫓기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긴 겨울의 초입에 앞서 나는 아내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여보 우리 일광욕좀 해야 되지 않겠나?”
그러자 돌아오는 반응은 불보듯 뻔하다.
“그럴 돈 있어?”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니깐. 하지만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나는 무리해서 계획하였다. 600유로라도 우리 가족의 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유럽을 곧 떠날예정이라 아내의 버킷리스트 도시인 바르셀로나 방문을 위해서라면. 나는 고민하지 않고 떨린 손을 부여잡고 질-렀-다. 그것도 가장 저렴한 새벽6시 출발 저녁 21시 도착으로 말이다.
컨펌 이메일이 온다.
Your flight to Barcelona from Edinburgh has been confirmed on …..
일단 질렀다. 그리고 아내는 그동안 고이 모아둔 쌈짓돈을 그녀의 버킷리스트를 위해 사용하기로 결심한다. 우리 네 식구의 피지컬 & 멘탈 웰빙을 위해.
에딘버러 출국을 앞두고 파킹예약 까지 마치고 짐을 다 싼 상태로 쪽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야말로 2시간 자고 일어나서 공항으로 향했다. 새벽3시 에딘버러 찬공기는 너무나 으슬으슬했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10시에 도착한 Barcelona El-Prat 공항. 초겨울 아침이다보니 생각보다 아침공기가 따뜻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관광도시 답게 공항시설은 에딘버러와 비교도 안되게 깔끔했고 이정표도 쉬워서 출구찾기가 편했다.
이윽고 점심무렵 우리가 바라던 따스한 햇살은 뜨겁게 내리쬐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배고프다 아우성이었지만 그래도 5층높이에 슈퍼블록을 빠르게 돌파하며 걷는 이 기분이 그저 좋았다. 점심 먹고, 숙소 체크인하고 첫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내가 미리 찾아본 브런치 카페가 바로 길 건너편에 있었다. 이름은 Vitrina Cafe. 브런치가 브런치지 뭘 싶었는데 그건 완벽한 나의 착각이었다. 역시 남유럽은 그간에 영국살면서 굳어있던 나의 미각을 일깨워주는데 충분했다!
시금치 베이스 파니니와 코르타도를 맛봤는데 그야말로 신세계, 어메이징.
코르타도(cortado)는 위 그림에서 보듯 에스프레소 잔보다 미세하게 더 큰 찻잔에 에스프레소와 스팀우유를 1:1 비율로 섞는 커피음료이다. 그냥 우유로는 당연 어림없다. 호주-영국에서 많이 먹는 플랫화이트 보다 우유 질이 덜 두껍다. 스페인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영국식 발음의 코오타아도오나 미국식 발음의 콜타도가 아닌, 꼬오르타아도로 발음하더라.
스페인어로 cortado는 cortar에 나왔고 이 뜻은 줄이다 (to cut)이다. 그렇다면 뭘 줄이는가? 그렇다 에스프레소의 진하고 걸쭉한 맛을 스팀우유로 줄여준다는 것이다. 그림상에서는 1:1이라고 되어있지만 경우에 따라 비율을 유연하게 조정해서 파는 카페들도 있다. 물론 전적으로 바리스타 재량이다.
코르타도의 또한가지 특징은 찻잔 사이즈이다. 보통 4-5온스로 서빙이되는데 이는 에스프레소의 풍미와 우유의 절묘한 조합을 느끼며 마시기에 안성맞춤이다. Vitrina cafe에서 먹었을때는 살짝 아쉽다는 느낌이 들정도의 양이었는데 막상 영국 돌아와서 플랫화이트 크기에 꽉 담아주는 카페에서 먹어보니 속이 부대껴서 반 마시고 버렸던 기억이 있다. 마시려고 애썼는데 말이다.
2023년 11월의 물가를 생각하면 스페인 본토에서 파는 커피를 2유로는 결코 비싸지 않은 금액이다. 영국에서 2.3파운드 주고 사먹었는데 물가 치면 오케인데 맛은 하…영국음식에 대한 평가는 과연 언제 바뀔지.
일단 커피 스토리로 바르셀로나 여행기를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