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총선, 어떻게 볼 것인가?-
혼돈스럽다. 며칠 전, 577명의 프랑스 하원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막을 내렸다. 프랑스는 우리와 달리 결선투표제를 실시한다. 이에 지난 6월 30일 1차 투표, 7월 7일 2차 투표를 통해 새로운 의회가 구성되었다. 여기까지는 그저 프랑스가 5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정치 이벤트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과정이 좋게 말하면 드라마틱했으며, 나쁘게 말하면 혼돈 그 자체였다. 예를 들어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가브리엘 아탈(Attal) 현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마크롱(Macron) 현 대통령은 정치적 안정을 이유로 반려한 상태다. 하마터면 프랑스 총리가 부재한 상황에서 오는 7월 26일부터 열리는 제33회 파리 올림픽이 진행될 뻔했다.
한국은 얼마 전 22대 국회가 개원하고 정치 고관여층조차도 국내 정치 이슈를 따라가기가 버겁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의 선거까지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국내 언론들의 파편화된 기사들을 통해 프랑스 선거 일련의 과정을 따라가기란 사실 어렵다. 이에 이번 글은 외신을 비롯한 여러 자료를 토대로 이번 프랑스 선거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프랑스 선거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먼저, 이번 프랑스 선거를 두고 외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도박(Gamble)’이다. 그 이유는 예정대로라면 이번 프랑스 의회 선거는 오는 2027년에 치러져야 했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제10회 유럽의회 선거에서 유럽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으로 알려진 르펜(LePen)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프랑스에서 1위를 기록하자 하원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발표했다. 정치적 여론이 본인에게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결선투표제라는 선거제도를 적극 활용해 극우 세력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는 소위 프랑스 국내정치에서 ‘공화국 전선’으로 불리는 극우 세력을 저지하는 정치적 방안이다. 이것이 이번 선거의 첫 번째 도박인 셈이다.
이 첫 번째 도박으로 실시된 지난 6월 30일 1차 투표 결과는 마크롱 대통령 입장에서는 참패였다. 1차 투표 결과, 르펜 중심의 극우 연합이 33%로 1위를, 멜랑숑 중심의 진보적 정당연합인 신민중전선(NPF)이 28%로 2위를 기록했다. 반면, 마크롱 현 대통령 중심의 중도연합(Ensemble)은 20%에 그치며 3위를 기록한 것이다. 이에 2차 결선투표를 앞두고 극우 정당이 의회에서 제1당이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중도연합(Ensemble)과 신민중전선(NPF)은 약 200여 개 이상의 지역구에서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이것이 두 번째 도박인 셈이다.
마크롱 대통령과 멜량송 입장에서는 정치공학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의 정치환경에서도 익숙한 이 ‘단일화’를 통해 일주일 만에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끌어 냈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기록하며, 프랑스 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총리를 배출할 꿈에 부풀어 있던 국민연합(RN)은 2차 투표 합산 결과 아래와 같이 3위로 추락했다. 예년에 없던 이러한 과정들 때문이었는지 투표율도 역대급이었다. 이번 1차 투표율은 66.7%, 2차 투표율은 66.6%를 기록했는데, 이는 직전 선거인 2022년에 비해 무려 약 20%가 증가한 수치다. 2022년 당시 1차 투표는 47.5%를, 2차 투표를 46.2%를 기록했다. 이번에 기록한 66.7%의 투표율은 프랑스 선거에서 지난 199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위 <표-1>은 프랑스 내무부(Ministry of the Interior, 8일 기준)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이번 프랑스 선거 결과다.(글을 작성하는 8일 기준으로, 언론들마다 이번 선거결과 관련 다소간 의석수의 차이가 있어 프랑스 내무부 자료를 토대로 한 statista 자료를 제시함.) 위 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총 577석의 프랑스 의회에서 과반의석이 되려면 최소 289석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에서 그 어떤 정당도 200석조차 얻지 못했다. 이에 독일의 글로벌 데이터 전문 기업인 statista는 이 표의 제목을 ‘진보 정당이 승리하였으나 보수 정당도 얻을 만큼 얻었다’(Left Wins But Right Gains)라고 한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CNN은 ‘마크롱 대통령의 도박이 일부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위에서 말한 두 번의 도박(gamble) 과정을 고려하면, 르펜이 이끄는 극우 연합이 제1당이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연합(Ensemble)은 지난 2022년 의석수 대비 무려 82석이 줄어들었다. 이를 두고 과연 일부 성공이라고 평할 수 있을까.
또한, 대다수 국내·외 언론은 신민중전선(NPF)을 이끌고 제1당이 된 멜량송이 가장 큰 승리자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민중전선(NPF) 또한 의석수가 180석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선거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멜량송을 총리로 임명할 뜻이 없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선거에서 누가 가장 큰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는가?
르펜의 국민연합(RN)은 6월 30일 1차 선거에서 1등을 기록했으나, 7월 7일 2차 선거 합산 결과 최종 3등을 기록했다. 이에 이번 프랑스 선거에서 국민연합(RN)이 마치 참패를 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다. 그러나 전혀 아니다. 이번 선거는 지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국민연합(RN)이 압승을 하면서 시작된 일련의 과정으로, 다시 말해 기성언론들이 소위 극우로 분류하며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 국민연합(RN)의 무서운 성장이 이 모든 스토리의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위 <표-1>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민연합(RN)은 이번 선거에서 지난 2022년 대비 무려 54석을 더 확보하며 총 143석을 확보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연합(Ensemble)과의 차이는 불과 20석에 지나지 않는다. 2022년에는 마크롱이 이끄는 정당은 245석이었으며, 르펜이 이끄는 정당은 89석으로 당시 그 차이는 무려 156석이었다. 2년 사이에 두 정당의 차이가 156석에서 20석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 7일 르펜을 지지했던 한 유권자는 독일의 공영방송(DW)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연합(RN)을 제외한 정당들은 자신들이 가진 정지척 지향을 가지고 유권자들을 설득한 것이 아니라 비겁하게 국민연합(RN)을 막는 것에 급급했습니다. 이것은 창피한 일입니다.”
필자의 정치적 지향과 정치적 옳음을 떠나 이 르펜 지지자의 발언을 정확했다. 이번 프랑스 선거 과정에서 멜량송이 이끄는 신민중전선(NFP)과 마크롱이 이끄는 중도연합(Ensemble)은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기보다는 다시 한번 극우세력으로부터 프랑스를 구해달라고 읍소했다. 프랑스에서는 이 전략을 위에서 말한 ‘공화국 전선’이라고 한다. 마크롱과 멜량송이 이번 선거에서 이 낡은 전략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만큼 프랑스에서 국민연합(RN)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스스로를 엘리트 그룹이라고 인식하는 기성 정치인들과 기성 언론들은 극우정당과 극우 정치인을 은근히 폄하하며 확실히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자. 먼저, 프랑스 대선에서 국민연합(RN)의 르펜의 득표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현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017년, 2022년 대선에서 모두 르펜 후보를 상대했다. 비록 르펜은 두 번 모두 졌으나, 결선 투표에서 르펜의 득표율은 2017년 33.9%, 2022년에는 무려 41.5%를 기록했다. 이에 오는 2027년에는 과연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둘째, 이번 선거의 핵심적인 배경이 된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다. 이 선거에서 현 마크롱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르네상스)은 불과 14.6%에 그친 반면,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은 무려 31.5%를 득표했다. 그들(엘리트)이 아웃라이어로 인식했던 극우정당이 단순히 승리한 것이 아닌 두 배가 넘는 차이로 ‘압승’ 한 것이다. 셋째, 르펜의 국민연합(RN)은 이번 2024 선거에서 기존 정당체계에 균열을 냈다. 6월 30일 1차 투표결과는 국민연합(RN) 중심의 연대세력이 33.2%로 당당히 1위를 기록했다. 이에 서로 앙숙과도 같은 마크롱과 멜량송은 어쩔 수 없이 손을 잡게 된다. 결국, 위 르펜 지지자의 인터뷰처럼 이번 프랑스 선거는 ‘르펜의 국민연합 vs. 반 국민연합’ 구도가 되어 버렸다. 그 구도를 만든 것은 마크롱도 멜량송도 아닌 바로 르펜이었다.
그렇다면, 기성 언론에서 ‘극우’로 폄하하는 르펜의 국민연합(RN)은 왜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여러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극우정당이 변했다. 과거 극우라고 하면 몰상식하며, 역사의식이 부재하며, 단순히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인종을 배척하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에 유권자들의 입장에서 스스로 극우정당을 지지한다고 표현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극우 정당들이 달라졌다. 그들은 과거 극단적인 노선을 벗어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단순히 반이민 정책만을 강조했다면, 최근에는 복지 확대, 세금 감면 등과 같은 기존 정당들이 내세우는 정책으로 노동계층과 중산층의 지지를 확보하기도 하며,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책을 제시하며 국가 운영을 할 수 있는 정당임을 보여주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실제 이번 프랑스 선거에서 국민연합(RN)은 기존의 이민자 제한 정책은 기본으로 하되 신민중전선(NPF)과 유사한 연금개혁 정책을 제시했다.
두 번째는 극우가 젊고 멋있어지고 있다. 지금의 국민연합(RN)은 과거 마린 르펜의 부친이 창당한 정당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고리타분하고 무언가 시대에 뒤떨어진 정당처럼 인식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꼰대’를 인식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극우가 멋있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젊은 극우 조르당 바르델라(28) 대표다. 일단 그는 젊고 잘생겼다. 그리고 그는 젊은 계층과의 소통에 매우 적극적이다. 실제 그의 인스타그램과 틱톡 계정 팔로어 수는 각각 65만 명, 105만 명을 넘는다. 그런데 그의 정책은 잘 살펴보면 예전의 꼰대 극우 정치인들이 말했던 ‘강경한 이민 정책’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유권자들의 관점에서 정교한 정책(이성)도 중요하지만, 이를 전달하는 사람의 모습(감성)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내가 그를 지지한다고 말해야 하고, 내가 그를 지지한다는 것은 일정 부분 나 자신을 그와 동일시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지지하는 특정 정치인이 멋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본적으로 위의 분석들에 동의한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 분석들은 전문가들의 분석(이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에 한 걸음 더 들어가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번 프랑스 선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즉, 프랑스 선거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다.
필자는 정치학을 전공했다. 정치학 중에서 유럽정치가 세부 전공이다. 그리고 유럽정치를 전공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서 유학했다. 필자가 다닌 런던의 학교는 유럽 관련 단과대학으로는 유럽 내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학교다. 이에 정말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유럽정치를 공부하기 위해 모였고, 같은 학년만 약 240명에 이르렀다. 공교롭게도 필자가 유학할 시점이 브렉시트 논의가 한창이던 시기로 당시 영국의 총리가 테레사 메이였다. 이에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이야기는 물론 토론 수업에서 단골 주제가 바로 ‘브렉시트’였다.
1시간의 강의를 듣고, 2시간의 토론을 해야 하는 당시 학교 수업은 필자에게 고역이었다. 정치학에서 중요한 그 미묘한 뉘앙스를 따라가기란 불가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렉시트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교수는 물론 학생들 사이에서 비슷한 기류가 있었다. 그것은 이성적으로는 브렉시트 주장이 매우 비합리적이라는 주장이었고, 감성적으로는 그 브렉시트를 주장하고 이에 동조하는 일반 시민들을 향한 알게 모르게 흐르는 비아냥이었다. 즉, 이 브렉시트가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영국에 부정적인 정책인데 이것을 마치 옳은 것인 것처럼 주장하는 정치인들과 이에 동조하는 일반 시민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실제 브렉시트 이후 약 4년이 지난 지금 그들(엘리트)의 이성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여러 지표들에서 영국은 지금 경제적으로 직격탄을 맞았고, 그 결과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은 유례없는 승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 필자가 경험했던 또 다른 일화가 있다. 아시아인으로 그것도 유럽과 지리적으로 매우 먼 동북아에서 온 필자가 강의와 토론만을 접했다면 브렉시트는 물론 이번 프랑스 선거 결과를 보며 극우 정당과 이를 지지하는 일반 시민들을 알게 모르게 경시하는 태도를 가졌을 것 같다. 그런데 그때 우연히 영국 택시 하면 떠오르는 블랙캡을 탄 적이 있다. 당시 유학생이던 필자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비싼 이 블랙캡을 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고, 실제 그때 탄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사실 한국에서 여행을 온 친구 덕분에 탈 수 있었다.) 부연하면 최근에 일반적으로 많이 이용하는 택시 앱인 우버의 택시 운전사는 아시아와 중동에서 온 젊은 이민자들이 많은 반면, 블랙캡의 운전사는 오랜 영국인들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접한 블랙캡에서 브렉시트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당시 운전사는 60대 전후의 백인 남성이었고, 오랫동안 런던에 거주했던 평범한 일반 시민이었다. 필자는 호기심에 조심스럽게 그 운전사에게 당시 뜨거운 이슈였던 브렉시트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리고 약 30분가량 그 운전사를 통해 분노에 찬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그 내용의 핵심은 수많은 이민자들 때문에 자신들의 일자리와 삶이 위협에 처해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여기서 다양한 데이터를 가지고 논박한다면, 그 블랙캡 운전사의 주장은 틀렸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느끼는 건 감정이었고, 그 감정을 잘 대변해 주는 정당이 당시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나이젤 파라지(Nigel Farage)의 브렉시트당(현 영국개혁당)이었다. 그리고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양한 이민자들이 우버를 통해 런던의 택시 시장을 잠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이번 프랑스 선거에서 르펜의 국민연합(RN)이 프랑스 시민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는 것으로 보며 위의 개인적 경험들이 오버랩되었다. 이 경험의 핵심은 기존의 엘리트 계급과 일반 시민들의 간극이다. 여기서 이번 프랑스 선거에서 극우정당의 선전을 바라본 위르겐 게르마이스(Jurgen Germeys) 벨기에 칼럼니스트 표현을 빌리고자 한다.
“통상 살기 힘든 환경은 분노를 낳고, 사람들은 누군가를 탓하려고 한다.”
필자는 이 표현을 이렇게 해석한다. 이번 프랑스 선거에서 ‘통상 살기 힘든 환경’을 만든 기존 정치 엘리트들은 그 환경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 일반 시민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분노하고 있는 일반 시민들은 그 탓이 ‘누군가’, 즉 그 환경을 만든 책임이 큰 기존 엘리트라고 인식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정권을 잡지 않았던, 이에 ‘통상 살기 힘든 환경’을 만든 기존 정치권의 책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극우 정당들은 이 일반시민들의 스피커 역할을 한 것이다.
즉, 엘리트 계급들은 자신들의 똑똑한 이성으로 만든 ‘살기 힘든 환경’에 대한 책임을 지기보다는 그 탓을 자신들보다 덜 똑똑하다고 보이는 일반 시민들의 탓으로 돌린다. 반면, 극우 정치인들은 엘리트 계급이 만든 그 살기 힘든 환경에 따른 일반 시민들의 분노를 활용한다. 즉, 극우 정당과 정치인들은 그들의 분노에 공감하고, 그 분노를 그들 편에 서서 함께, 아니 대신 표출한다. 이런 상황에서 팍팍한 살림살이와 함께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일반 시민들은 과연 누구를 지지하게 될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필자가 런던에서 만난 그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와 브렉시트의 작동원리가 이번 프랑스 선거에서도 동일하게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개인의 정치적 의견과 정치적 옮음을 떠나 이번 프랑스 선거에서 르펜의 국민연합(RN)의 성장은 이 같은 일반 시민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소 묵직한 질문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과연 정치란 무엇인가?”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볼 때, 정치란 함께 살고 있는 시민들을 위해 좋은 사회를 설계하고 그 설계를 잘 설득하는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절대 그 과정이 가르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즉, 시민들이 느끼고 경험하는 감정을 도외시하거나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조금 배웠다는 그들이 그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이성이 맞다고 시민들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정치는 시민들의 삶과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 엘리트들도 그저 시민들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치 엘리트들을 보면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여전히 자신들이 일반시민들보다 우월하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그래서 자꾸 가르치려고 하고, 자신들의 결정이 그들의 생각보다 낫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이는 비단 이번 프랑스 선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한국정치와 한국 정치집단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장 사태도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