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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yper Jul 05. 2024

‘정신 나간’ 표현에 담긴 한반도 상황

-북한과 러시아 그리고 한반도 외교지형-

 필자는 지난 글에서 22대 국회 구성이 향후 한국 외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했다. (https://brunch.co.kr/@4f92b1e701454a1/103) 이 글의 요지는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입법부와 임기 3년을 남긴 행정부 사이의 극심한 갈등으로 외교는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같은 예상은 빗나가길 바랐다. 그 이유는 그렇게 될 경우, 우리 국가이익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22대 첫 대정부질문에서부터 필자의 바람은 빗나간 듯하다. 


정신 나간 국민의힘 국회의원들


 어제(2일) 열린 22대 첫 정치안보분야 대정부질의는 ‘여기 웃고 계시는 정신 나간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라는 표현이 모든 걸 삼켜버렸다. 이 표현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은 끝없는 고성을 이어갔고, 결국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정회를 선포했다. 이 여파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의 질의는 한반도 외교안보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모든 언론의 이목은 ‘정신 나간’이라는 표현에 쏠리면서 정작 그 내용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사진-1>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출처: 아이뉴스24)

 22대 국회가 문을 열면서 법사위를 시작으로 하루에도 엄청난 국내 정치 이슈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정치 고관여층조차도 한반도에서 어떤 외교안보 이슈가 있는지 따라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27일부터 3일간 제주 남쪽 공해상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 미국, 일본 연합 군사훈련이 진행되었다. 한미일 ‘프리덤 에지’ 연합 군사훈련은 해상, 수중, 공중, 사이버 등 거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다영역 훈련이다. 이는 지난해 8월 윤석열 대통령, 바이든 대통령, 기시다 총리가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합의한 정상회의에 따른 결과물이다. ‘프리덤 에지’라는 훈련명 또한 한미연합훈련인 '프리덤 실드'와 미일연합훈련인 '킨 에지'를 합쳐 만든 명칭이다. 한미일은 공식적으로 동맹(alliance)조약을 맺고 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군사적 동맹관계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사진-2>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인 '시어도어 루스벨트'(CVN-71)함이 한미일 3국의 최초 다영역 군사훈련인 '프리덤 에지'(Freedom Edge)에 참가하고 있다. (출처:

 김병주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지난 6월 2일 국민의힘 논평은 “계속되는 북한의 저열한 도발행위는 한미일 동맹을 더욱 굳건하게 할 뿐입니다.”라고 밝혔다. 설령 대한민국 외교부가 이에 대해 반대한다 하더라도 제주 남쪽 공해상에서 진행된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을 제3의 국가가 본다면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외교는 나의 관점이 아닌 나의 외교안보 정책과 움직임을 상대가 어떻게 인식할지를 상정하고, 이에 기반한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외교지형은 질적인 변화의 한가운데 있다. 이에 한반도 외교지형에 대한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불안한 한반도 외교안보 


 한반도 외교지형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는 남한과 북한의 관계다. 윤석열 정부 이후,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위헌판결이 하나의 변곡점이 되었다. 대북전단 관련 법적 문제가 해결되자 남한의 민간단체들은 날씨의 영향에 따라 올해 봄부터 본격적으로 소위 삐라 살포를 재개했다. 이에 북한은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는데, 구체적으로 지난 5월 말 북한 김강일 부상의 담화 이후 오물풍선 살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함께 서해 NLL 인근 GPS 교란 공격, 방사포 발사 등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는 9·19 군사합의 이후 처음으로 서해 완충구역에서 실사격 훈련을 진행하였으며, 지난 9일에는 6년여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점점 남북 사이의 무력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으로 가고 있다. 


<사진-3> 북한에서 남한을 향해 보내고 있는 오물풍선(왼쪽)과 이에 남한 정부가 대응하고 있는 대북 확성기(오른쪽) 사진이다. (출처: 연합뉴스)

 둘째는 동북아 외교 지형의 측면이다. 지난 19일 푸틴 대통령은 24년 만에 북한을 공식 방문했다. 이 방문을 계기로 양국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Comprehensive Stratrgic Partnersip)에 서명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당시 미국, 남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던 북한의 노선이 확실하게 중국과 러시아로 회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1960-70년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며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했던 외교 경험을 살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 이후 급속하게 결속하고 있는 한미일 협력은 이 같은 북한과 러시아의 움직임에 명분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한미일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삼국의 군사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동일하게 북한과 러시아는 이러한 한미일의 군사협력에 대응하기 위해 상호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북한과 러시아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두 가지 관점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새벽 2시에 도착한 푸틴


 푸틴은 역시 푸틴이었다. BBC 보도에 따르면, 초기 푸틴의 방북 일정은 18일부터 1박 2일 일정이었다. 그러나 푸틴의 전용기는 19일 오전 2시가 넘어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했다. 이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홀로 순안 공항 활주로에서 푸틴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기다리는 정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새벽 2시에 도착한 푸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환대를 받고 바로 준비된 숙소로 이동했다. 결국 푸틴의 공식 일정은 도착한 당일 정오에 이루어졌고, 그날 저녁 바로 베트남 하노이로 떠났다. 24년 만에 이루어진 푸틴의 방북은 계획되었던 1박 2일이 아닌 당일치기가 된 것이다. 


<사진-4> 지난 19일 오전 2시,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마중 나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포옹하고 있다. (출처: AP 연합뉴스)

 평소 정상회담에서 지각하기로 유명한 푸틴이지만, 이번에는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외교적 결례다. 이는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물며 모든 것이 사전에 준비되고, 이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의전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을 고려한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참사다. 일반적인 정상이라면 이 같은 행동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푸틴은 자신이 주도권을 쥐어야 하거나 이를 통해 외교적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푸틴은 지난 2007년 러시아 소치에서 독일 총리가 된 메르켈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푸틴은 메르켈이 개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자신이 기르던 검정 리트리버 ‘코니’를 정상회담장에 풀어두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정상으로서 과연 이게 할 짓인가. 


<사진-5> 2007년 1월 21일,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푸틴은 자신의 개를 의도적으로 풀어두었다. 이 사진은 메르켈 자서전에서 발췌한 것이다. (출처: 박민중)

 그렇다면, 푸틴은 왜 굳이 상대에게 무례한 ‘새벽 2시’에 도착했을까? 러시아 정부는 이번 방북의 정치·군사적 의미를 축소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전면전을 펼치고 있는 러시아 대통령이 독재국가인 북한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외교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BBC에 따르면, 러시아의 외교관계는 ‘선린 우호 관계 - 상호 신뢰하는 협력관계 - 전략적 동반자 관계 -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 - 전략적 동맹’ 순으로 총 다섯 단계로 나뉜다. 즉, 이번 방북으로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선린 우호 관계’에서 세 단계나 격상된 것이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자칫 중국, 미국 그리고 한국 등 주변국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인해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북한의 지속적인 도움, 특히 무기 지원에 대한 외교적 답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북한과의 과도한 결속으로 인해 한반도에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란?


 이번 북한과 러시아의 조약에 대해 대다수의 언론은 4조항(article 4)에 집중하고 있다. 이 4조항은 상호 간의 군사적 협력을 약속하는 내용으로 양국 중 어느 국가가 제3국으로부터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면 양국은 ‘유엔 헌장 제51조’를 언급하며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기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마치 이번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마치 지난 1961년 북소 동맹조약이 부활한 것처럼 분석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번 조약에서 상호 간의 군사지원이 명문화된 것은 북한의 외교적 성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약의 형태가 ‘동맹’이 아닌 ‘전략적 동반자관계’라는 점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번 조약을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1961년 소련과 맺은 조약은 “동맹조약”이라고 명명하였으며, 2000년 러시아와의 맺은 조약은 “친선, 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이었다. 따라서, 이번 조약의 내용과 함께 이 외교적 수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동반자 관계’(Strategic Partnership)라는 것은 국제정치적으로 다소 모호한 개념이다. 그러나 이 개념을 외교 수단의 관점에서 '동맹'(alliance)과 비교해 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동맹이 전통적으로 두 국가 이상이 군사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동반자관계는 1990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탈냉전이 도래하면서 과거 군사 일변도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의미한다. 특히, 동반자 관계를 뜻하는 'partnership'이라는 용어가 원래 경제·경영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제 정치에서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에서 비록 군사·안보 분야의 협력은 아니더라도 경제·문화 교류와 같은 분야의 협력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외교수단으로써 '동반자 관계'를 '동맹'과 비교해 보면 간략하게 두 가지 특징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동반자 관계는 탈냉전이라는 국제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외교수단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냉전 시기에는 대부분의 외교가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진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탈냉전 시기에는 진영을 넘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가능한 많은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둘째, 동맹이 군사·안보 분야의 협력이라면 동반자 관계는 단계는 다양하지만 경제분야가 협력의 공통분모라는 점이다. 이는 경제라는 하위 정치 분야의 협력을 매개로 과거 교류가 없었던 두 국가 또는 행위자가 새로운 관계를 맺는 측면이 있다. 이후 지속적인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면 경제 분야의 협력을 고리로 정치·군사와 같은 고위 정치 분야의 협력을 도모하는 것이다. 

<사진-6> 지난 27일, 단크베르트 러시아 수의·식물감독청 국장이 김수철 북한 수출입품질관리위원회 부위원장과 회담 후 악수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북한과 러시아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우리가 보고 싶은 ‘군사적 측면’만을 확대해석 하기보다는 이 외교수단이 가진 의미에 충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푸틴은 지난 18일 방북을 앞두고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기 위해 상호 간 무역에서 결재를 루블화로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대북 제재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지점이다. 또한, 푸틴의 방북 직후인 지난 27일 러시아의 수의·식물감독청은 북한과의 농업 부문 협력을 통해 향후 러시아가 북한산 사과와 인상을 수입하는 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양국은 서로 처한 외교적 현실과 현재 동북아의 외교 상황을 고려해, 합의에 이르기 어려운 군사안보적 측면보다는 경제적 분야의 협력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서로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번 북한과 러시아의 외교에 대해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먼저, 우리 정부는 오인(misperception) 하지 말아야 한다. 벌써부터 우리 정부는 한미일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재검토를 시사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지난 27일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러시아를 향해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답게 처신하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물론 우리 외교부 입장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반발할 수는 있지만,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의 가능성을 제거해서는 안된다. 특히, 우리가 보고 싶은 부분만을 확대할 것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략적 동반자관계의 특성을 고려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양국이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맺은 것은 ‘노스 코리아 리더십 워치’ 마이클 매든 연구원이 평가한 것처럼 북한과 러시아는 “깊은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그들의 협력은 기회주의적이고 거래적 성향이 강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우리의 외교행태를 살펴보고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현재 한미일 관계를 ‘동맹’으로 지칭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 이후 6월 말 진행된 ‘프리덤 에지’ 연합 군사훈련을 제3국, 특히 북한과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한미일은 ‘동맹’이라고 볼 것이다. 이에 단순히 러시아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있는 외교 현장에서 우리의 외교를 바라보는 상대의 입장과 전략을 간파하는 외교전략이 필요하다. 나아가 푸틴은 여전히 한국과의 관계개선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 구체적인 사례가 이번 방북에서 엄청난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굳이 새벽 2시에 도착한 것이며, 실제 푸틴은 방북 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러 관계를 회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현 외교 현실을 고려해 우리 정부가 러시아와 공식적인 외교협상을 하기 어렵다면, 물밑외교를 활발하게 펼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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