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대중국 외교가 필요하다-
"외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말로써 '원하는 바'를 얻어 내는 데 있다."
교과서와 같은 이야기다. 최병구 전 노르웨이 대사는 자신의 저서인 <외교언어>에서 외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같이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원하는 바'란 곧 '국가이익'이다. 국가이익은 '국가의 안전과 발전을 위하여 국민이 전체적으로 추구하여야 하는 이익'으로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이 포괄적인 개념에서 경제적 이익은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국내 정치에서 대파 가격과 같은 '민생'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듯이 외교도 마찬가지다.
위기의 한국과 독일 경제?
한국과 독일은 대표적인 제조업 강국이다. 2020년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산업개발기구가 발표한 세계 제조업 경쟁력 지수(CIP)에서 전 세계 152개국 중 한국은 독일(1위)과 중국(2위)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이런 한국과 독일이 최근 경제적으로 위기를 보이고 있다.
먼저, 한국은 단적으로 최근 원달러환율이 1400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아무리 전 세계적으로 달러가 강세라고 하지만, 유독 원달러환율이 크게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2023년 국가결산 보고서'는 현재 한국 경제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재정적자는 무려 87조 원에 달한다. 이로 인해 GDP 대비 국가채무가 1126.7조 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취임 후 2년 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나치게 강조하던 '건전재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치다.
이같은 한국경제와 관련해 유심히 살펴볼 지점은 대중국 무역 추이다. 아래 그래프는 1991년 한중수교 이래 양국의 교역 추이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1992년 불과 64억 달러이던 수치가 2021년 3천억 달러를 돌파하며 무려 47배의 성장을 기록했다.
이로써 중국은 우리 교역에서 약 1/4(24%)를 차지할 뿐(2021년 기준) 아니라, 한국의 제1의 교역 대상국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과의 교역은 단순히 교역량이 많은 것보다 질적으로 무역수지에서 흑자를 기록하며 한국경제를 견인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기류가 공교롭게도 지난 2022년 5월부터 급변하기 시작한다. 2022년 3월 대중 무역수지에서 약 30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는데, 5월부터 3개월 연속으로 적자를 보였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이 같은 3개월 연속 적자는 중국과의 교역에서 1992년 8월 이후 최초다. 급기야 2023년 1월에는 39.7억 달러로 역대 최대 대중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다음으로, 언제나 유럽 경제를 견인할 것 같던 독일이 예전 같지 않다. 지난 3월, 함부르크 세계경제연구소(HWWI)는 2024년 1분기 경제전망보고서에서 독일의 2024년 경제성장률이 0.25%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0.5%에서 하향 조정한 것으로 유럽의 지정학적 위기와 독일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0.25%는 지난 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유럽 평균 경제성장률을 0.9%라고 전망한 것에 크게 밑도는 수치다. 이처럼 최근 독일의 경기침체는 유럽 내에서도 '경제는 독일'이라는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정부는 중국과의 교역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한국 경제와 마찬가지로 독일 경제에서도 가장 중요한 교역 국가는 바로 중국이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 중국은 8년 연속 독일의 최대 교역국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구체적으로 독일 연방 통계청에 따르면, 중국은 2023년 독일과 2531억 유로 규모(약 362조 6000억 원)의 교역을 기록했다.
독일의 기업들도 앞다투어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독일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폭스바겐, 메르세데스 벤츠와 같은 기업들이 2022년 상반기에만 중국에 투자한 규모는 약 100억 유로에 달하는데 이는 유럽 전체 대중국 투자 중 약 1/3에 해당한다. 특히, 2023년 외국인의 대중국 직접 투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으나, 오히려 독일의 투자는 120억 유로로 증가세를 보였다. 이는 독일이 대중국 투자를 통해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울리히 브루크너(Ulrich Bruckner) 스탠퍼드 대학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여러 차례 독일 경제를 살렸다'고 평가했다.
독일-중국 정상회담
이러한 배경에서 지난 14일부터 2박 3일간 있었던 올라프 숄츠(Olaf Scholz) 독일 총리의 중국 방문을 이해해야 한다. 2021년 12월 앙겔라 메르켈 후임으로 독일의 총리가 된 숄츠는 이번이 벌써 두 번째 중국 방문이다.
현재 국제정치적 맥락을 고려하면 독일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기에 좋은 환경은 결코 아니다. 먼저, 경제적인 측면에서 유럽과 중국은 전기 자동차, 풍력 터빈 등과 같은 산업을 두고 무역마찰을 빚고 있다. 유럽은 덴마크 베스타스와 독일 지멘스가메사 등을 필두로 한때 글로벌 풍력산업의 선두 주자였다. 그러나 2018년 이후 중국의 풍력업체들이 급속한 성장을 보이더니, 최근에는 유럽의 주요 기업들이 수십억 유로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두고 유럽은 중국 정부가 불공정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공정한 경쟁을 해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독일의 숄츠 총리 또한 지속적으로 자국의 자동차 산업과 같은 첨단 산업을 고려해 중국의 과도한 보조금 지급 문제를 제기했었다. 급기야 지난해 7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중국산 전기 자동차와 풍력 터빈 산업에 중국 정부가 불공정한 보조금을 지급한다며 조사를 시행했다.
정치적 맥락에서는 그 무엇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여파다. 2022년 2월부터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해 독일은 그 어느 나라보다 앞서서 러시아를 비판하고 있다. 실제 독일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우크라이나에 많은 군사 지원을 하고 있다.
지난 17일, 유럽연합 특별 정상회의에 참석한 숄츠 총리는 독일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3기의 패트리어트 시스템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을 상기시키며 다른 유럽 국가들을 향해 동참을 촉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총리가 실질적으로 러시아의 침공을 묵인하며, 사실상 러시아의 편에 서 있는 중국을 방문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독일 도이체벨레 보도에 따르면 숄츠 총리는 방중 직전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중국의 명확한 입장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숄츠 총리는 중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중국과의 디커플링은 없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는 정치적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중국의 태도와 경제적으로는 지나치게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독일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있지만, 독일은 중국과 경제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명확한 선언이다. 즉, 여러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독일이 현실적으로 중국과의 교역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정치적인 선택인 것이다.
이같은 선택을 뒷받침하는 것이 이번 숄츠 총리의 2박 3일 일정이다. 독일 공영 국제방송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숄츠 총리는 14일 독일 기업인 보쉬(Bosch)가 있는 중국의 충칭을 시작으로, 15일 또 다른 자국 기업인 코베스트로(Covestro)가 위치한 상하이 혁신 센터를 방문했다. 그리고 방중 마지막 날인 16일에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나는 일정이다. 심지어 마지막 날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이 끝나고 오후에는 양국 경제자문위원회(DCBWA) 회의에 참석했다. 이처럼 실질적으로 이번 숄츠 총리의 방중은 경제행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독일의 행보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중국과 정상회담을 할 계획이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2년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가 보인 외교행보를 고려하면 임기 내 한중 정상회담을 보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지난 4일 대통령실은 오는 5월에 서울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은 지난 2008년부터 매년 연례적으로 개최되었다. 하지만 지난 2019년 이후 코로나 이후 열리지 못하고 있다.
무조건 정상회담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핵을 둘러싸고 한반도 외교에서 매우 중요한 행위자인 것과 동시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경제에 가장 중요한 파트너다.
그렇다면, 북핵위기를 포함한 동아시아 역내 평화와 같은 정치적 명분을 만들어서라도 현재 무역적자를 완화하기 위한 실리적 차원의 정상회담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주중대사관이 중국 외교부와 물밑접촉을 해도 모자랄 판에 정재호 주중대사는 부하 갑질 의혹에 이어 김영란법 위반 의혹으로 신고되어 현재 외교부가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이종섭 전 호주대사 사건에 이어 이번 정재호 주중대사 사건까지, 외교의 최전선에서 양국의 외교를 원활하게 해야 할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한중 정상이 만날 수 있는 두 번의 좋은 기회가 있었다. 하나는 지난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이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개막식에서 기시다 총리가 후쿠시마 원정 오염수 방류 이슈로 참석을 할 수 없게 되자 중국 측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개막식 참석을 타진했다고 한다. 비록 기시다의 불참으로 인한 중국 측의 제안이었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냉랭한 한중 관계를 고려하면 스포츠라는 매개로 양국 정상이 만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개막식에 한덕수 총리를 대신 보냈다.
다른 하나는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정상회의다. APEC 정상회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21개국 정상들이 매년 11월 모여 지역 현안들을 논의하는 다자회담이다. 과거와 달리 탈냉전 이후 이 같은 다자간 회담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에 각국의 외교라인은 이 같은 다자회담을 활용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 전략 가운데 하나가 회담 기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회담에 참여한 국가들과 양자회담을 가지는 것이다.
한 국가의 수반이 공식적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이슈를 조율하는 것도 어렵지만,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그런 맥락에서 이 같은 다자회담은 일정을 조율하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인 장이 된다. 실제 이 APEC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일본과 양자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는 16일 전체회의 세션 직전 3분 정도 환담을 나눈 것이 전부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시간이 모자랐다"라고 해명했으나, 그보다는 대통령이 만나기 싫었거나 이 같은 다자회담을 준비하는 외교라인의 무능이 낳은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다소 무리해 보이지만, 필자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를 보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외교란,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것이다. 미국, 일본과 만나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그런 외교가 아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외교 말이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보인 언사를 고려하면, 그가 개인적으로 중국을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교는 그런 개인적인 감정에 기반해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유럽 내에서도 가장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을 강조하는 독일이 왜 중국을 방문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8년부터 8년 동안 사민당 출신의 독일의 총리였던 슈뢰더는 중국을 6번 방문했고, 2005년부터 16년 동안 독일을 이끌었던 메르켈 총리는 무려 12번이나 중국을 찾았다. 이번 숄츠 총리를 포함해 그들은 중국에 대해 할 말은 하되,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고려해 중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윤 대통령은 자존심을 세우며 국민의 삶을 힘들게 할 것이 아니라,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원하는 바를 얻어내야 한다. 그게 리더고, 외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