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폴란드의 행보-
최근 폴란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축구를 좋아하는 필자에게 폴란드는 ‘레반도프스키’의 나라다. 필자와 같이 폴란드의 특정 부분에 대해 알고 있는 시민들은 많이 있겠지만, 실상 이 나라가 유럽 어디에 위치하고 있으며, 어떤 나라인지 생소할 수 있다.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소련과 나치 독일의 침략을 받은, 한반도와 비슷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대표적으로 2차 세계대전의 가장 참혹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있는 곳이 바로 폴란드다. 이러한 폴란드는 생각보다 유럽 내에서 큰 나라에 속한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1.4배에 달해 유럽연합(EU) 내에서는 7번째로 큰 나라다. 인구도 약 4,100만 명(2024년 기준)으로 스페인에 이어 6번째로 큰 나라다.
폴란드는 단순히 면적과 인구만 큰 나라가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IMF(국제통화기금)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폴란드의 GDP 규모는 전 세계 21위(8,446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유럽 내에서 스위스(20위) 다음이며, 북유럽 국가들보다도 훨씬 큰 규모임을 알 수 있다. (스웨덴 24위, 노르웨이 31위, 덴마크 38위)
이 같은 경제성장에 힘입는 것일까? 최근 군사안보 정책에서 폴란드의 행보는 심상치 않다. 지난 7일 자 미국의소리(VOA) 보도에 따르면, 폴란드 국방부는 해군의 신형 잠수함 도입을 위한 시장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폴란드 병력 규모에서 육군(46%)과 공군(17%)에 비해 취약한 해군(7%)의 국방력을 증강시키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리고 지난 4월 25일에는 아르투르 쿱텔 폴란드 군비청장이 직접 한국을 찾아 경남 창원에 위치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약 2조 2526억원(16억 4400만달러) 규모의 천무 72대 계약을 체결했다.
폴란드는 최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최신 무기들을 도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폴란드는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대규모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먼저, 2023년 7월 폴란드는 미국으로부터 33개의 M1 에이브람스 탱크를 도입했다. 이는 계약한 총 250개의 탱크 가운데 일부를 받은 것이며, 이 33개의 탱크를 도입하는데 투자한 금액만 무려 45억 유로(한화 약 6조 5천억 원)에 이른다. 그리고 폴란드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미국의 하이마스 로켓(HIMARS rocket) 468기를 도입하기로 계약했는데, 이는 무려 92억 유로(한화 약 13조 1천억 원)에 달한다. 그리고 지난 2022년 폴란드는 현대로템과 총 1,000대의 K2 전차를 수입하기로 합의했으며, 구체적으로 2025년까지 180대(한화 약 4조 5천억 원 규모)를 받기로 계약했다. 이런 상황에서 폴란드는 국제적으로 방산업계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폴란드의 움직임은 단순히 한 국가의 안보정책이 아닌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2023 세계 군비 지출 보고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도 전 세계 국가들이 국방비에만 지출한 돈이 2조 4천 430억 달러다. 한화로 무려 약 3천 375조 원이다. 이 수치는 2022년 대비 6.8%가 증가한 것으로, 2009년 이후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 1991년도는 소련의 붕괴로 인해 전체 군비 지출 데이터를 산출하지 못함.
* 출처: SIPRI Military Expenditure Database, 2024.
먼저 위 <표-1>은 1988년부터 지역별로 세계 군비 지출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추세를 보면,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1999년 무렵까지 전 세계 국가들의 군비 감소 추세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미국의 이라크 침공, 러시아에서의 푸틴 등장, 그리고 무서운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전면적인 등장으로 인해 약 2010년까지 군비 지출에 급격한 성장세가 나타난다.
이러한 성장세는 2008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시작으로 2010년 중반까지 이어진 유로존 위기로 감소세를 보였다. 이 같은 감소세는 201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증가세로 돌아서더니 지난 2022년부터 증가폭이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지난 2023년도에는 전년 대비 6.8% 증가를 보이며,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군사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3%까지 상승했다.
그렇다면, 거시적인 맥락에서 2023년 전 세계 군비 지출이 199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단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중동위기다. 특히,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약 2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이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국가에게 엄청난 국방비 지출을 야기했다. 러시아의 경우, 2021년 약 659억 달러(한화 약 90조 7천억 원)이던 국방비가 2023년 1,090억 달러(한화 약 150조 1천억 원)로 증가했다. 그러면서 2023년 러시아의 GDP 대비 군사비 지출은 4.1%에서 5.9%까지 증가했다. 우크라이나의 수치는 그야말로 국가 비상사태다. 2021년 약 59억 달러(한화 약 8조 1천억 원)로 전 세계 국방비 지출 순위에서 36위였던 우크라이나는 2022년 440억 달러(한화 약 60조 6천억 원)로 급증하며 1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2023년에는 648억 달러(한화 약 89조 3천억 원)까지 증가하며, GDP 대비 군사비 지출이 37%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안보위기는 지정학적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인접해 있는 유럽 국가들에게는 심각한 안보위협이 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NATO) 가입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침공하자 불과 3개월이 지난 2022년 5월 동시에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이후 핀란드는 2023년 4월 나토의 31번째, 스웨덴은 2024년 3월 32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이는 각각 2차 세계대전 이후 약 75년 동안과 1814년 이후 약 200년가량 비동맹 중립국가를 표방했던 핀란드와 스웨덴이 외교노선의 변화를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최근 폴란드의 심상치 않은 안보정책 또한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 폴란드의 국방비 지출 추이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아래 <표-2>는 필자가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매년 발표하는 자료를 토대로 지난 2021-2023까지 세계 상위 20개 국가들의 군비 지출 현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폴란드는 불과 3년 사이(2021년-2023년)에 국방비 지출 규모가 무려 2배가량 증가했으며, 2023년 유럽연합 내에서 GDP 대비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3.8%로 단연 1위를 기록했다.
* 이 표는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매년 발표하는 자료를 기반으로 연도별로 재구성하였음.
* 출처: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구체적으로 폴란드는 2021년 국방비로 137억 달러(한화 약 18조 7천억 원)를 지출하며 세계 20위권에 진입했다. 21년 유럽 내에서 폴란드의 국방비 지출 규모는 네덜란드에 이어 7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은 2.1%로 2.2%를 기록한 영국(2021년 684억 달러 지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듬해 폴란드는 166억 달러(한화 약 22조 7천억 원)를 지출하며 지난해 6위였던 네덜란드를 밀어내고 세계 18위(유럽 내에서 6위)를 기록했다. 2022년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폴란드의 GDP 대비 국방비 비율 2.4%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에 폴란드는 유럽 내에서 GDP 대비 국방비 지출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증가세는 2023년 들어 더욱 두드러졌다. 폴란드의 국방비는 전년대비 무려 약 2배가 증가해 316억 달러(한화 약 43조 2천억 원)를 기록했다. 폴란드는 불과 1년 만에 20조 원이 넘는 국방비 증액을 보인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 국방비 지출에서 폴란드는 2023년 14위를 기록했으며, 유럽 내에서도 스페인을 밀어내고 상위 5개국 내로 진입했다. 특히, 2023년 폴란드는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은 3.8%를 기록하며, 유럽 내에서 각각 2위, 3위를 기록한 영국(2.3%)과 프랑스(2.1%)를 압도했다. 이러한 추세라면, 폴란드가 빠른 시일 내에 이탈리아(2023년 316억 달러 지출)까지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폴란드 안보정책은 폴란드 국내정치의 상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난 3년 동안 폴란드가 보여주고 있는 공격적인 안보정책은 2015년부터 정권을 잡은 법과정의당(PiS)의 민족주의 성향과 궤를 같이 한다. 이 정당은 지난 8년 동안 지속적으로 유럽연합과 마찰을 빚으며 폴란드 자국 목소리를 키우는데 집중했다. 그러나 지난 23년 10월 총선에서 법과정의당(PiS)은 도날드 투스크(Donald Tusk)가 이끄는 연합에 패했다. 도날드 투스크는 2014년부터 5년 동안 유럽 정상회의 상임의장(President of the European Council)을 역임할 정도로 친EU성향으로 분류되는 지도자다. 이로 인해 전문가들은 폴란드 안보정책에 있어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예상하기도 했지만, 당분간은 이전과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총리가 된 도날트 투스크는 지난 3월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등의 위협에 맞서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폴란드 안보정책이 의미하는 첫 번째는 유럽연합 내에서 폴란드의 위상 변화다. 즉, 유럽연합 내에서 폴란드의 정치경제적 위상이 달라질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로 시작된 유럽통합은 당시 서유럽이 중심이었다. 당시 6개국은 지금도 유럽연합 내에서 대표적인 나라들로 손꼽히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다. 1990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소위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한 것은 불과 20여 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유럽연합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은 경제는 물론 정치, 규범의 측면에서 서유럽 국가들을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그러나 최근 폴란드의 안보정책은 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실제 폴란드는 유럽연합(EU)에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다음으로 인구 규모가 큰 나라일 뿐만 아니라, 이 나라들보다 높은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 Statista가 예측·발표한 2022-2028년 예상 GDP 성장률에 따르면,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는 모두 1%에 그쳤지만, 폴란드는 평균 3%를 상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3년 동안 폴란드가 보여준 약 2배 이상의 국방비 지출 증가는 이 같은 경제성장의 결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유럽연합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서유럽 국가들이 인구와 면적의 크기는 물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토대로 한 폴란드의 이 같은 변화를 앞으로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 얼마 전, 독일과 프랑스는 오랜 협상 끝에 차세대 전차를 공동으로 개발하는데 합의했다. 주지상 전투체계(MGCS)개발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독일 국방장관은 향후 잠재적인 참여국가로 이탈리아와 폴란드를 언급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무엇보다 지정학(Geopolitics)의 중요성 다시 대두된다는 점이다. 다양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전 세계는 하나의 동네, 즉 지구촌이 되었다. 과거에 비해 국가들의 외교 범위가 확대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전략들을 기획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라는 지도에서 그 누구도 선택한 것이 아닌 주어진(given) 지정학은 개별 국가의 안보에 있어 변수가 아닌 상수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그러하듯 오랜 역사에서 이 같은 국가들이 불편한 관계를 가졌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것은 지정학이라는 주어진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 폴란드의 안보정책 또한 이 지정학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지정학적으로 폴란드는 러시아가 유럽으로 진출하는 데 중요한 요충지 역할을 했고, 이에 폴란드는 러시아로부터 수많은 침공을 경험했다. 즉, 폴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며 지정학적으로 안보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급변하는 국제 안보 환경과 급부상하고 있는 폴란드를 보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첫째, 지정학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에서 북한과 분단되어 있는 한국은 과연 어떠한 외교 정책을 펼쳐야 하는가?
둘째, 우리는 지금 폴란드와 같이 국방비 지출을 늘려야 하는가?
첫 번째 질문은 오랜 세월 한반도가 가진 근본적인 질문이라면, 두 번째 질문은 보다 현실적인 질문이다. 위 <표-2>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은 2021년 10위, 2022년 9위, 2023년 11위를 기록하며 세계에서 국방비 지출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국가다. 그러나 GDP 대비 국방비 비율로 보면, 한국은 상위 20개국 가운데 2021년 5위, 2022년 7위, 2023년 8위를 기록했다. 2022년과 2023년 전쟁을 겪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제외하면 한국은 지속적으로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이 세계 5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오랫동안 분단이라는 구조적인 한계 속에서 다른 분야의 지출을 감소하면서 국방비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급변하는 국제 안보환경에 맞서 무작정 군비 증강과 군비 지출을 증대해야 하는가? 아니, 할 수 있는가? 최근 한국의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다. 구체적으로 지난 29일 한국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GDP가 지난 2012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낮은 순위인 14위까지 추락했다. 이는 중남미 국가인 멕시코에도 추월당한 수치이며, IMF는 5년 뒤엔 한국이 인도네시아에도 추월당한 것으로 내다봤다. 2018년 한국의 GDP 순위는 처음으로 10위를 기록했지만, 2022년 13위에 이어 2023년도에는 14위까지 하락했다. 이 같이 악화된 경제 여건 속에서 군비를 증강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군사력과 같은 힘에 기반한 외교가 아닌 대화와 타협에 기반한 말 그대로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현재 윤석열 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외교 노선을 견지하며 스스로 미중경쟁의 한복판에 뛰어든 형국이다.
급변하는 안보환경에서, 더욱 그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과연 한국은 괜찮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