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쌀과 찹쌀을 반반 섞어 고두밥을 만든다. 한 김 식은 밥에 누룩과 물을 넣고 적당히 치대다가 항아리에 넣고 뚜껑을 덮어준다. 이다음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일주일 동안 실온에 두면 발효가 되면서 점점 술이 되어 가는 것이다. 밥알이 뜨면 술이 되었다는 뜻이다. 항아리에 든 술을 면포에 넣고 물을 부어가며 짜낸다. 짜낸 술은 병에 옮겨 담아 냉장 보관하다가 술이 생각날 때 한 병씩 꺼내 마시면 값비싼 양주가 부럽지 않다. 집에서 만든 누룩 막걸리에는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시큼한 맛이 강하다. 우리 집은 여기에 직접 만든 조청을 넣어 마신다. 조청의 구수하고 달달한 맛과 향이 막걸리를 곱절은 맛있게 만들어준다.
귀한 막걸리는 한 번에 한 병씩만 마실 수 있다
이번 술은 너무 잘 되어 버렸다. 얼마나 잘 되었냐면은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소중한 술이 한순간 동이 날까 봐 우리 가족끼리만 몰래 쉬쉬하며 마실 정도이다. 하루를 마치며 가족 중 누군가가 “오늘 막걸리 한잔할까?”라고 운을 떼면 가족 모두 두말없이 술상을 본다. 요즘 제철인 파래에 부침가루와 물을 살짝 넣고 청양고추를 다져 넣으면 다른 재료 하나 필요 없이 간단하게 막걸리 안주가 완성된다.
첫 잔은 안주 없이 마신다. 자연스럽게 생긴 탄산과 부담스럽지 않은 달콤함에 금세 한 잔을 비워낸다. 두 번째 잔부터는 막 부친 파래전과 함께 마신다. 튀기듯 익힌 파래전은 그 자체로 풍미와 감칠맛이 넘쳐 다른 안주가 필요 없다.
아빠는 종종 젊은 시절 마셨던 ‘농주’ 이야기를 하곤 했다. 친구 어머니가 직접 만드신 농주는 그날 하루 노동으로 힘들었던 몸과 다친 마음까지 달래주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 맛이 그리워 여러 막걸리를 마셔봤지만 그때 그 맛은 느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맛이 아빠의 젊은 시절에 대한 향수의 맛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집 막걸리는 그때 그 시큼털털한 ‘농주’ 맛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의 따뜻하고 다정한 맛이었으면 한다. 젊은 시절 힘들었던 아빠를 위로해준 그 ‘농주’처럼 지금의 아빠에게 지친 하루 끝에 위안이 되는 맛이길 바란다. 마음이 다친 날이면 함께 모여 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