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르방 Oct 13. 2022

스몰톡, 스몰하지 않아

How are you?

 집을 나왔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안락함에서 벗어나 나는 독립했다. 회사생활 5년차, 뜬금없이 나는 새로운 환경으로 나를 던져 생활해보고 싶었다. 안전지대를 벗어나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분명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어를 더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늘리는 것 

 영어는 그냥 이유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나에게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았다.


 신입 사원 시절, 업무를 시작하고 1년 차일 때의 나를 돌아보면 나는 참 사람들과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어려서부터 혼자가 편했다. 알 수 없는 감정을 나누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너무나 골치 아픈 일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비교적 정답이 명확히 정해진 코딩이 좋아서 개발자 업무에 매력을 느끼고 진로를 결정했다. 나 혼자 업무에 온전히 집중해서 일을 마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팀플 과목을 필사적으로 피했던 대학 생활을 뒤로한 나에게 사회생활의 시작은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예상과 달리 개발자에게 필요한 역량은 코딩 실력, 문제 해결 능력뿐 만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발자는 발표도 잘해야 하고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어야 한다. 수많은 회의와 논쟁 속에서 내 코드를 어필하고 서로를 설득하고 자기주장을 명확히 하는 일이 개발자의 일이다. 일을 시작했을 때는 회사에서 나의 목소리를 낸 다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어려웠다.


 이제는 어느덧 5년 차가 되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회사에서 혼자 업무를 끝냈을 때의 만족감보다 동료와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며 함께 성장할 때 보람을 느낀다. 더 동료와 이야기하고 싶고 나 혼자일 때보다 함께하며 좋은 결과물을 낼수록 조직의 일원으로서 뿌듯하다. 이런 마음이 계속 이어지던 와중에 캐나다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항상 외국에서 일해보고 싶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캐나다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알잘딱깔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한국은 눈치껏 서로 이해하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암묵적인 문화가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해야만 자기 어필이 되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어떠할까. 그들의 소통 방식이 궁금했다. 나는 새로운 환경으로 나를 던져 영어도 잘하고 분명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하하. 그야말로 엄청난 꿈을 가지고 나는 캐나다로 왔다.


 아무런 인맥도 없이 온 캐나다의 작은 도시에서 나는 이방인이 되었다. 나는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입국하자마자 느꼈다. 다소 수동적으로 살았어도 내 삶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던 한국생활을 뒤로하고 '내가 먼저 나서서 행동하고 소통하리라!' 엄청난 다짐을 하고 출근을 했다. 근데 이럴 수가. 회사는 재택을 권장했다. 그래도 매니저는 1주일에 한 번씩 자율적으로 출근을 권장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스몰톡 문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스몰톡의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다.

polite conversation about unimportant or uncontroversial matters, especially as engaged in on social occasions.
social conversation about unimportant things, often between people who do not know each other well
낯선 사람들과의 소소한 대화


 입사 초기 옆자리 직원이 다정하게 말을 걸면 눈을 찡긋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리액션을 했다. 웃어주기! 딱히 할 말도 없는데 사람들은 출근하자마자 Good morning~ How are you?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웃어주기만 하고 대화를 길게 이어 나 가지 못했다. 이사하고 중고차 구입하고 정착하는데 시간을 꽤나 쓰고 불현듯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마침 매니저도 출근을 더욱 권장하고 팀원들 모두가 함께 출근하는 날을 정해 주기도 했다. 이무렵부터는 회사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조급함까지 느꼈다. 하지만 이야기하고 싶은데 사실 나는 할 말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소소하게 무슨 이야기를 하지?


 그렇게 회사에서 꾸욱 입을 닫고 살았던 나는 직장 동료 S를 만난다. 나보다 한 살 어린 S는 나와 굉장히 다르다. 그는 항상 모든 팀원들에게 먼저 다가서서 말을 건다. 밥 먹을 때도 사람들을 직접 모으기도 했다. 내심 너무 고마웠다. 아무튼 나는 동료 S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스몰톡을 하고 마주칠 때마다 소소하게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었다면 정말 판타지 소설이다! 사실 여전히 스몰톡은 나에게 쉽지 않고 S와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배우는 중이다. S는 말이 많고 다정한 사람이다. 주말에 자기가 여자 친구와 무슨 밥을 먹었는지,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드라마는 무엇인지, 자신이 오늘 준비해온 점심은 어떤 맛인지, 평소에 비디오 게임을 너무 좋아하는데 비디오 게임 좋아하는 사람 있는지.. S와의 대화는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S를 보며 많이 배운다. 이런 게 스몰톡이구나. 먼저 다가서서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 나는 S와 대화하다 보면 그가 정말 다채로워 보이고 그의 일상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그 밝은 기운은  엄청나다.


 나는 요즘 스몰톡을 할 때에도 용기 내어 묻는다. 참 웃기다. 아직도 나는 용기를 내야 한다니. "저번 주말에 뭐했어요? 이번 주말에 계획 있어요?" 보통 나의 스몰 톡은 이러하다.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면 대화가 쉽게 끝나버린다. "아! 그렇구나! 그래!" 머쓱한 공기는 수습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나는 계속 물어본다. "나는 주말에 어느 식당 갔는데 너는 가본 적 있니?", "나 주말에 그림 그리기 클래스 들었는데 좋더라. 겨울에 취미생활 만들고 싶어. 너는 보통 뭐해?" 이제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본다. 무슨 일이든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여전히 낯선 사람과의 스몰 톡은 나에게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사람에게 다가가서 정말로 그 사람이 어제는 무엇을 했는지 지금 기분이 어떠한지 조금씩 이야기하다 보면 예전만큼 부담스럽지는 않다.

 스몰톡은 스몰하지 않다. 그 사람을 향한 애정이 필요하다. 그 사람들이 소소하게 이야기해도 나는 important하게 듣기로 했다.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고 싶고 그 대화를 기억하려 한다. 어쩌면 나처럼 스몰톡의 문화에 용기가 안 나고 머리가 복잡해지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냥 스몰톡을 스몰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득 가지고 대화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선 내가 이렇게 살아보려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