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르방 Nov 14. 2022

붕붕이가 준 자유

yeah I'm a very driven person 

 우리 붕붕이 맘마먹을까?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가 주유소에 가면서 위 대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의 자동차를 붕붕이라고 부르는 천연덕스러운 배우의 연기를 보며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붕붕이라니. 얼마나 차가 좋으면 애칭까지 있을까.


 한국에서 나에게 자동차는 별 의미 없었다. 한국 대중교통이 워낙 잘 되어있어서 자동차를 구매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리고 사회초년생 때는 유지비도 부담되어서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살았다. 하지만 점점 주변에서 운전을 하고 차를 사는 지인들이 생겨났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운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나도 너무 운전을 하고 싶었다. 그 모습이 멋져 보였다.


 그리고 캐나다를 왔다. 사실 운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운전이 필수인 캐나다로 이직한 것 도 있다. 그만큼 운전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의미 있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상황에 나를 던져버리면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하겠지. 나를 믿는 단단한 마음이 아니라 근거 없는 낙관이 눈치 없이 또 힘을 발휘해서 나는 차를 알아봤다. 같은 회사 동료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중고차 딜러 아시나요?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한국인 딜러 연락처를 공유받았고, 감사하게도 중고차 사이트를 안내받았다. 중고차 시장의 수요가 폭발한 여름, 나도 캐나다 중고차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중고차를 사본 적이 없는 나에게 낯선 타지에서 중고차를 사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주변에서 자동차 딜러와 가격 흥정을 하라는 팁을 공유해줬지만 반도체 이슈로 자동차 공급 부족 문제가 생긴 시점에서 나는 완벽한 을의 구매자가 되었다. 신차를 사려면 가을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딜러들은 말했다. '그럴 수 없지. 나는 여름에 놀러 다녀야 하는데!' 빨리 사고 싶은 마음과 달리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가격 비교해서 전화하면 다음날 아침에 자동차가 팔려있는 등의 일이 반복되었다. 뜬금없이 한국을 떠나기 전 언니가 말해줬던 충고가 생각났다. 

갑자기 집에서 혼자 울고 싶은 날이 있을 거야. 눈물이 나는 날이 있을 거야. 

나에게도 그날이 왔었다. 중고차를 알아보면서 아이유의 '비밀의 화원' 노래를 듣다가 책상 앞에 엎드려서 청승맞게 울었다.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주변에서 아무리 조언을 해줘도 결정을 내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느낌이 낯설었다. 살면서 이렇게 큰돈을 처음 써보는데 내가 차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어서 딜러샵에 갈 때마다 손해 보는 기분이 나를 작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울적한 기분을 뒤로하고 나는 한 달 동안 중고차 사이트를 계속 체크했다. 어느 금요일 밤, 내가 원하는 가격대와 사고기록이 없는 차를 찾아냈다. 나는 다음 토요일 아침 딜러샵을 가서 테스트 드라이빙을 하고 차를 구매했다. 그렇게 우여곡절의 시간 끝에 나는 나와 캐나다 생활을 함께해줄 차를 샀다. 


 물론 그것은 시작이었다. 차가 주는 시공간적 자유와 맞바꾼 내 텅장. 이곳에서 차를 구입하고 그 이후의 유지비는 내가 사전에 생활비 예산을 예상하며 계산기를 두들겼을 때보다 심각했다.

차 가격 

차 가격에 대한 주 세금 (온타리오 13%)

Carfax  갱신 요금 (Car proof fee) : $75

차 번호판 : $10

자동차 보험비 : 매달 약 $150~200

주차비 : Apartment 거주 시 지하주차장 비용 월 납부

주유비 : 날마다 놀라운 주유비

윈터 타이어 교체비 (매년 11월/12월 윈터 타이어 교체 필수) : $1000 이상

하하. 그래도 미리 알았으면 오히려 차를 살 엄두도 못 냈었을 것 같다. 그냥 나중에 알아버린 게 다행이라고 마음먹었다. 


 이제 차 없이 생활은 생각할 수 도 없을 만큼 매일 운전하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이상하게 도로가 거친 느낌이었다. 도로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캐나다 도로는 왜 이렇게 거친 거야. 되게 이상하네. 아니 이 정도면 포장도로공사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캐나다 도로 탓을 하며 액셀을 밟았다. 빨리 달리면 소리가 안나는 것 같아서 액셀을 쑤욱 밟으며 집으로 갔다. 그런데 싸한 기분이 온몸을 감쌌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한 번도 이런 소리가 난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달달달달...' 소리가 여전히 났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혹시 모르니까 정비소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차장 문이 열리고 차창을 바라보는데 앞 창문이 조금씩 왼 쪽으로 스르르륵 기울어졌다. '어라..?' 그 때서야 나는 타이어가 펑크가 났다고 알게되었다. 당황스럽고 놀랐지만 다행히 주차장에 간신히 들어가 주차를 했다. 그리고 머리를 굴렸다. '정비소까지 어떻게 가지.?' 트렁크 뒤에 스페어타이어가 있다는 것은 예전에 확인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스페어타이어를 사용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황급히 유튜브를 켜서 스페어타이어 교체하는 법을 검색했다. 그리고 나는 타이어를 갈았다. 주차장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지나갔지만 아무도 못 알아듣겠거니 하며 한국어로 불평을 내뱉었다. '아니 뭔 이런 일이.. 아 이거 어쩌냐.. 와.. 진짜 어이없다..' 하지만 막상 스페어타이어 가는 방법 자체는 복잡하지 않았다. '뚝딱!'은 아니었지만 땀을 흠뻑 흘리며 나는 타이어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음날 정비소로 달려갔다. 우리 집 앞에는 뭐든지 해결해줄 것만 같은 "MIDAS" 자동차 정비소가 있다. 이름부터 든든하다. 마이다스 정비소의 숀 아저씨는 매우 친절하시다. 아저씨한테 구구절절 내가 경험한 일을 전했다. "타이어가 펑크가 났어요. 참나..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윈터 타이어 바꿀 시즌이니까 윈터 타이어로 바꾸려고요. 근데 제가 스페어타이어를 직접 갈아서 여기까지 왔다니까요. 사진 좀 보세요." 친절한 숀 아저씨는 펑크 난 타이어도 손봐주시겠다며 활짝 웃으시며 윈터 타이어 영수증을 슬쩍 내밀었다. 또 놀라운 가격이었지만 나는 담담한 척 카드를 내밀었다.

 이렇게 큰돈이 계속 지출되고 신경쓸 부분이 많지만 나는 운전하는게 좋다. 그 이유는 운전하며 느끼는 경험들이 꽤나 특별하기 때문이다. 조금의 스크래치가 있는 내 회색 차와 나는 여름에 캐나다 도시를 함께 돌아다녔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차를 타며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여행했다. 그리고 운전하며 특별한 감정들도 느낄 수 있다. 11월부터 캐나다는 써머타임이 끝나고 4시부터 노을이 지고 5시는 깜깜해지기 시작한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정말 큰 달을 봤다. 깜깜해지기 직전 주황색의 붉은 노을빛과 은은한 보랏빛이 함께 하늘을 뒤덮고 있고 그 위에 동글동글한 달이 정말 크게 떠있었다. 그 달을 보고 달리다 보니 달을 향해, 달 속으로 드라이브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풍경에 나는 놀랐다. 갑자기 누군가와 함께 이 달을 보고 싶기도 했고 동화 속의 한 장면에 내가 있는 것 같아 황홀한 느낌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필요성을 모르지만 알고 나니 운전은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 누군가 빵빵거리며 나를 지적할 때도 있고 괜히 마음이 위축되는 날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마음이 편안해진다.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리스크가 있지만 그 리스크는 나에게 특별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며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끔 한다. 차를 타면서 너무 의미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쩌렁쩌렁 자랑하고싶다. 나도 이제 운전할 수 있어. 운전은 내가 원하는 길로 원하는 시간에 주도적으로 목적지로 갈 수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래서 오늘도 난 달리러 나가야겠다. 붕붕.

매거진의 이전글 땡스기빙데이, 너에게 땡큐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