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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나 Sep 11. 2023

02 당신과 미래의 교집합

02


모든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진부해진다. 발명 당시의 흥분과 기대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사그라들고 편리함이 일상이 되고 사람들은 그런 반복에 무뎌졌다. 발전과 진화는 당연한 도시의 양상이 되었고 사람들은 변화에 맞춰 생활을 자연스럽게 변화시켜 나갔다.

가상현실도 마찬가지였다. 지구를 제패하고 우주로 넘어가고 미처 하나의 우주도 다 정복하지 못했음에도 의식과 정신의 지평을 넓혀 새로운 세상을 하나 더 만든다는 건 인간적으로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가상과 현실의 조합. 실제처럼 보고 듣고 만질 수 있지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현실을 대체할 수 있다고, 그런 꿈같은 세계로의 입성이 임박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흥분과 기대에 가득 차 있었고 세상의 모든 일이 새로운 기술에 맞춰 재편될 것처럼 굴었지만(사실이기도 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처럼 보였다. 여전히 사람들은 아직도 살 만한 세상이 아니라고 불평했다. (이것 또한 사실이지만)

현실과 가상현실의 교집합 속에서도 사람들을 공평하지 않다고 느꼈다. 다중 가상현실 세계에서 통용되는 가상 화폐 또한 자본주의가 가상의 공간까지 깊게 파고드는 역할을 할 뿐, 가상현실에서 축적한 부가 현실의 부로 연동되는 시스템은 아주 당연했다. 역방향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현실을 초월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받지 않습니다.(왜 인지는 다들 아시죠?) 실리콘밸리의 어떤 기업도 이렇게 광고하진 않았다.

가상에서 존재하는 가난은 가상인가 실제인가. 나는 실제로 가난한 게 맞는가? 꿈깨! 너는 가난하지 않아! 실제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도 왜 우리는 여전히 불평등한가는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지만 기존 체제의 틀을 그대로 가져 온 세계에 그 의문은 여전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뿐이었다. 언젠가 변화는! 혁명은! 일어날 겁니다! 사람들은 기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을 뿐. 우리는 이미 불평등한 먹이 사슬 사다리에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오랜 시간 교육받아왔다는 사실을 망각했을 뿐이었다.


03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하지만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부를 수 있지요.”


지방의 모 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유명한 사람을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인용했다.

화면 속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숭고하다고 믿는 하나의 가치를 공유했으며 오로지 자신들만이 인류 진화 역사상 궁극적인 마지막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믿고 있었다. 인류를 포함한 전지구적으로 옳은 결정이라는 선민의식과 정의감, 북받쳐 오르는 형형색색의 감동들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디지털로지스. 사이언톨로지의 짝퉁이거나 자매교처럼 느껴지는 이 종교는 창설일마저 불확실하지만 2028년 윤일목에 의해 창시되었다고 알려졌다. 오래 동안 종교로서 입지를 다지지 못하고 일부 지역민들의 괴상한 동호회나 사이비 종교 정도로 여겨지다 2050년대 중반 가상현실 세계가 본격화된 다음에서야 물 만난 고기처럼 빠르게 교세를 확장해 갔다. 존재감이 없다 그제야 사람들의 의식 속에 사이비지만 종교로써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점은 교주 자리가 윤일목의 자식들로 세습된다는 점이었다. 종교 내에서 윤 씨 일가의 입지는 시멘트만큼 단단했다. 추후 증언에 따르면 윤 씨라는 성은 모든 교리와 집단 내 규칙을 앞서는 절대 법칙이었다고.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신격화된 지성을 거부하고 트랜스 휴먼을 거쳐 디지털화된 지성을 추구합니다. 우리의 존재를 트랜지션함으로써 닿고자 하는 건 모두가 평등한 세상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모두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는 단 한 번도 평등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아무리 역사를 헤집어 보아도 여태껏 어떤 왕조나 정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포함한 어떤 그럴듯한 사상도 해내지 못한 일입니다. 사실상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에선 불가능한 일이지요.…”

-2053년 전국 집회, <윤일목 목사의 연설> 중


그들의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고 최종 목적지는 메타 버스였다.

윤 씨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해 마치 한 나라의 건국 신화를 만들 듯 자신의 피에 신성한 의미부여를 시작했다. 자신이 신의 대리인이자 신을 향한 유일한 창구라고 사람들을 세뇌시켰다. 지상을 떠나 유토피아로 입성하기 위해 교주에게만 들리는 저 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건 윤 씨 일가에 엄청난 권한과 독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했다. 교의 모든 규율은 윤 씨 일가만 들을 수 있었던 목소리, 신탁을 통해 내려졌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생활로 피해가 사전에 차단되지 못하고 더 커진 것으로 추측된다. 신도들은 윤 씨 일가의 입을 통해 정해질 그날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날이란 모두가 육신에서 해방되고 새로운 인격으로 재탄생하는 날을 뜻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심신을 정화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은 신이 윤 씨의 입을 통해 일시를 계시하길 기다리는 동안 인천항에서 2시간 떨어진 무인도에 모여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섬은 윤 씨 일가의 이름으로 매입되었지만 자금의 출처는 신도들이었다. 공동체를 위해 모두 공평하게 사용될 것이라는 말을 믿고 신도 모두가 제단에 전 재산과 부동산을 기부하였고 실제 일부는 그렇게 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대부분은 윤 씨 일가가 뭍에서 사치를 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외 종교와 공동체 생활의 세부 사항 대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기도 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건 그 누구도 깊게 팔만큼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 사이비 종교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일까. 폐쇄적인 포교 활동으로 눈에 띄지 않는 사이비 종교가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윤목사가 지정한 ‘일시’, 모두가 기다리던 가상의 유토피아로 들어가는 날이 다가와 서였다. 


이해할 수가 없어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이런 당연한 결과를 왜 당사자들만 모르는지. 모든 사람들은 답답해했지만 그들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거라는 어느 교수의 말처럼 다만 할 수 있는 건 모든 상황이 벌어진 뒤의 추측뿐이었다.


360명의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 속 진화한 인류를 위하여’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마저도 영원히 세상에 묻힐 뻔했지만 윤 씨 일가로서는 난데없이 들이닥친 바다태풍으로 계획이 망가진 셈이었다. 유독 거칠었던 풍랑이 시체 일부를 인천항으로 밀어 보냈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여객선에 탑승 중인 가족과 연인들이 이 모습을 보고 잊지 못할 충격을 얻고 여행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집단 자살이라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흔한 일은 아니라 당시 큰 화제가 되었으며 조사 과정 중 밝혀진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전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후 제 부모의 손에 죽은 아이들을 위로하는 위령비가 세워졌고 무인도는 한동안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윤 씨 일가를 족쳐야 한다며 분개했지만 이미 복수와 응징의 대상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남겨진 음성 파일과 윤 씨 일가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선착장 근처였다는 점, 몸싸움의 흔적 등을 통해서 그들이 사람들을 선동한 후 몰래 뒤로 빠지려다 걸린 것이 아닌가 추정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공개할 수 없을 만큼 훼손이 심하다는 말이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보아선 모두가 평화로운 마지막을 바라고 있지 않았다. 정부 조사단에 따르면 이들이 모두 마인드 박스와 같은 형태의 디지털 휴먼이 되었는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유일한 생존자는 윤 씨 일가가 아닌 기면증을 가진 남성 한 명뿐이었다. 여전히 잠에서 깰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남자의 말이 비유인지 사실인지 알 길이 없었다. 여전히 가끔 어디선가 윤일목이 목격되었다는 괴담이 심심치 않게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왔다 사라졌다.


인터넷 특집 기사를 본 김미주가 창을 끄곤 말했다.

어휴 미친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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