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적동 봄을 그리다(12)
누군가 내게 취미가 무어냐? 묻는다면 호기심이라 답할 것 같다. 나는 늘 궁금해하며 알고 싶어 한다.
세계의 실체와 질서에 관한 나의 호기심은 나이가 들수록 커지고 있다.
생물 철학 농업 정치 경제 등등 다양한 영역에 무한한 호기심을 갖고 대한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채 검증해 보지 못한 것들로 인해 실수도 많다.
요즘 내가 즐기는 취미는 대략 다음과 같다. 불경을 비롯한 철학공부 정원 가꾸기 글쓰기 가축 키우기 등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무수히 많은 일들이 나의 일상을 채워간다.
내가 나름 세상의 질서로 정한 법칙은 변화다. 세상은 상호연관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싯다르타의 연기다. 최제우 큰 선생도 변화를 세상의 기본원리로 바라보셨다. 고정된 실체가 아닌 원인과 결과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것은 특정해서도 특정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늘 변화하기에 우리는 늘 깨어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죽은 지식의 암기에 매몰되어서 안되며 살아있는 지혜를 깨우쳐가야 한다. 세상을 고정된 지식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위는 없다. 학문도 이상도 현실에 머무르지 않으며 늘 변화한다. 세상의 변화는 시작도 끝도 없다.
나의 호기심은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삶이 세상에 조금이나 쓸모가 되길 바랐기에 호기심은 운명이며 필연이다.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세상의 질서를 무너트리려 준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변화의 질서에 대항하는 한순간의 준동에 지나지 않는다.
호기심은 암기로 채워지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공부를 외우는 것으로 단정 짓는데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싶다. 호기심은 암기가 아닌 이해와 수용으로 채워진다. 이해와 수용이 공부의 전제가 되면 공부는 지루하지가 않다. 늘 외우기보다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을 통해 나의 호기심을 채워가고 있다.
풀과 꽃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정원을 가꾸는 것이 아닌 정원의 관찰자가 된다. 섣부른 통제를 버리면 정원은 살아 움직이는 세상 그 자체가 된다.
나는 요즘 사회에 대한 조절 통제가 가능하다는 어리석음을 떼어내려 노력 중이다. 조절과 통제가 아닌 변화하는 배를 타고 관찰자로 현존하려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