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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변의 발화 Mar 25. 2023

나에게 벚꽃의 꽃말은

잔인한 4월 극복담

 우스갯소리로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는 얘기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벚꽃이 한참 예쁘게 피고 꽃구경 가고 싶어 마음이 두근두근 할 즈음이 4월 초중순 대학교 중간고사 시즌이라 그렇다고 합니다. 그럴 듯한 것 같은게, 저도 학부시절 또는 대학원 시절 열람실 밖에 있는 벚꽃 나무에서 벚꽃이 비처럼 흔들리며 내리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그러고보니 대학교 마다 벚꽃은 참 많았던 것 같네요 ㅎㅎ) 벚꽃 꽃잎이 수북히 떨어져 쌓인 계단이나 언덕을 올라가던 기억도 새록새록 납니다. 


 4월은 저에게 한동안, 사실 아주 오랫동안 정말 잔인한 달이었어요. 변호사시험의 발표가 4월 말쯤 나기 때문이죠. 제 경우 한번에 변호사시험을 붙지 못해서 아예 관두었다가 다시 시작해서 더더욱 특히나 그런 것도 있지만(그래서 몇년 간 매월 4월마다 변호사시험 생각으로 가득차있었던 같아요. 떨어졌을 때는 억울해서, 시험을 안볼때는 왠지 아쉬워서, 그리고 시험을 치고 나서는 또 불안해서..), 일단 아는 사람들이 변호사시험이 발표날 때마다 저도 왠지 같이 긴장되고 스트레스를 받았고, 제 시험일 때는 정말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너무 괴로운 한시간 한시간을 보냈던 것 같네요. 변호사시험은 1월 중에 치는데 엄청 추운 겨울이 저는 차라리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아요. 슬슬 뭔가 모랫바람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운동장의 흙먼지와 아이들이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면 이제 곧 발표구나 하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 잤던 것 같습니다. 다들 새벽냄새, 겨울냄새 하지만 저는 봄 냄새가 가장 두려웠어요. 슬슬 날이 풀리네, 하면서 새로운 마음이나 새 옷으로 즐거워야할 때에 저는 늘 마음이 불안하고 너무 두근두근 거렸네요. 그래서 봄이 오는 게 기대되거나 신나고, 설레기보다는 이제 곧 발표일텐데, 나는? 하는 생각에 너무너무 괴롭고 시간이 그대로 멈췄으면 했어요.


  시험을 합격한 지도 이제는 꽤나 지났습니다. 주변에 변호사시험을 보는 사람도 이제 거의 없어졌고, 저도 변호사로서 잘 살고 있고, 그 사이에 많은 변화도 있었어요. 변호사 시험 이후 매 해 저에게 새로운 사건이 많이 있었어요. 그 사이에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코로나도 있었네요. 여행도 다니고, 취직, 퇴사, 이직도 하고, 이사도 하고, 새로운 취미도 발견하고, 다른 공부도 시작하고 새로운 친구들도 생기고요. 아쉽지만 정말 벚꽃과는 연이 없는지, 벚꽃보러 진해 군항제를 다녀오는 게 위시리스트였는데 다녀오지는 못했네요. 간간히 근처에서 벚꽃을 보는 정도? 냄새로 기억되는 게 오래간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지, 아직도 겨울에서 봄이 되는 냄새, 뭔가 겨울보다 한껏 넉넉해진 공기와 분위기가 너무 저를 예민하고 스트레스받게 만드네요.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괜히 답답해지는데 잘 생각해보면 이제 저에게는 고통스러울 이유가 없는데 말이에요. 


 변호사시험 치고 기다리는 동안, 집 근처 평소에 가고 싶었던 맛집에서 빵도 사먹고, 와인도 사고 했었거든요. 그 때 한가득 손에 들고 집(지금의 친정)에 들어오곤 했었는데, 얼마 전 회사 근처 유명한 빵집에서 빵을 한가득 사서 엄마아빠를 보러가는데, 갑자기 이게 다 꿈이면 어쩌지? 사실 나는 아직도 공부중이면 어쩌지? 하는 정말 이상한 생각이 들기까지 했답니다. 


 어떨 때는 정없다 소리를 들을 정도로 냉정하기도 한데, 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라 그런지 그래도 몇 해 동안 잔인했던 4월은 저에게 깊은 생채기를 내둔 것 같아요. 상담을 받아야 하나, 기타 등등 다양한 생각을 해본 적도 있지만 결국 단순하게 시간에 저를 맡겨야하는 것 같아요. 4월에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지금 제 힘으로 결국 시험을 붙어서 "극복"해냈다고 생각하고, 또 앞으로 힘내서 또 즐겁게 지낼 수 있다고 다짐하기 위해서 이 글을 씁니다. 



 저에게 한동안 "벚꽃"의 꽃말은, "변호사시험 발표", "기약없는 기다림" 같은 거였거든요. 진짜 벚꽃의 꽃말이 궁금해서 네이버에 쳐보니, 가장 위인 나무위키에서 "꽃말은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정신(영혼), 정신적 사랑, 삶의 아름다움"이라고 알려주네요. 앞으로는 벚꽃이 만개하면 이 꽃말을 떠올려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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