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은 길을 걸어왔구나
2022년 1월 18일, 제가 브런치에 처음 글을 썼던 날입니다. 매일 그래왔듯 자기 전 제 브런치 글을 정독해 보는데 오늘이 첫 글을 쓴 지 1년 되는 날이더군요. 되게 신기했습니다. 저에게 '작가'라는 타이틀은 정말 되고 싶었지만, 정말 멀었던 단어였거든요. 저는 왜 작가로서 활동을 하려고 했을까요? 작가가 되고 싶었던 신입 기획자가 벌써 3년 차를 바라보는 작가가 되었고, 괜히 감수성이 뿜어져 나오는 시간이 되었네요. 그래서 오늘은 글을 쓸 계획은 없었지만, 작가로 활동한 1년의 흐름 동안 느낀 점을 가볍게 적어보려 합니다.
예전부터 브런치에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어요.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었지만, 작가의 서랍에 차곡차곡 쌓아 나중에 재밌게 열어볼 추억을 담고 있었죠. 시간이 지나 장사를 그만두고 기획자가 되어 신입으로 회사를 다니던 어느 날, IT 업계에 몸담고 있던 디자이너 친구가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기획자에 대한 기록을 담아보는 게 어떠냐'며 권유했고, 그렇게 작가신청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 작가신청을 하고 떨어졌을 때 '아, 생각보다 쉽지 않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미 작가가 된 친구가 "내가 보는 글이 아니라 남이 보는 글이라고 생각해 봐"라고 말해준 한마디에 머릿속의 전구가 반짝였어요. 그 말을 듣고 제가 썼던 글을 보니 저만 이해할 만한 수준의 내용이었던 것이죠. 이후 다시 도전했을 때는 기분 좋게 승인을 받았습니다.
아마 브런치를 생각하는 제 마음이 단순히 기록을 남기는 공간에서 누군가에겐 쓸모 있는 기록을 남기는 공간으로 바뀌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작가가 되기 전의 글과 작가가 되고 나서의 글은 많이 달랐어요. 가장 크게 달랐다고 느낀 부분은 화자의 시점이 취준생과 신입 기획자로 나뉘게 되었다는 겁니다. 취준생일 때는 여러 정보를 찾아보고 정리하여 글을 썼고, 덕분에 객관적인 근거가 글을 뒷받침해줬지만, 신입 기획자가 되고 나서 쓴 글에서는 제 경험이 주를 이루었기에 자칫하면 편향된 글이 나올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 경험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부딪치고 느낀 대로 쓰고 싶었어요. 초고를 내고 이를 적어도 10번은 수정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고생한 만큼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지치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어요.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처음은 두려운 존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누군가 제 처음을 미리 체험해 보면서 그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없앨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첫 글을 발행하기까지 약 2주는 걸렸던 거 같은데, 생각보다 할 만하다고 속으로 생각했죠.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글을 써보자'라고 다짐했는데, 이 다짐을 저는 작심삼일이라고 부르게 되었어요. 어쨌든 저는 현업이 있었고, 배울 게 많은 바쁜 신입 기획자가 지키기엔 다소 어려웠던 다짐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습관이 결국 실력이 된다고 믿긴 하지만, 이는 철저한 자기 객관화가 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무리는 더 이상 유리하지 않더라고요.
쓴 글의 개수가 15개쯤 되어 갔을 때, 어느 날 글을 쓰겠다고 노트를 폈는데(저는 컴퓨터보다 노트에 먼저 어떤 글을 쓸지 끄적여 봅니다) 30분 정도 멍을 때린 적이 있어요. 글은 써야겠는데 쓸 내용이 고갈되었던 거예요. 누가 글 쓰라고 제 등을 떠민 것도 아닌데 전 무언가에 쫓기듯 여러 아티클을 보며 쓸만한 소재가 있나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다 쓴 초고를 보니 1도 제대로 읽히지 않았어요. 당연하죠? 제 머릿속에서 나온 글이 아니니까요. 잠시 글을 내려놓고 생각해 봤어요. 그리고 알았습니다. '내가 더 이상 나눌 경험이 없구나' 였다는 것을요. 한 달 두 달 정말 긴 시간 동안 고민했고, 결국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던 시기가 되었어요.
글과 함께 성장했어야 하는데, 지금 돌아보니 저는 글을 이용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글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제 글이 누군가에게 쓸모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다행인 건지 1년이 지난 요즘, 제 바람이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이러고 나니 욕심이 생겨버렸습니다. 이전까지는 제 글이 누군가에게 쓸모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면, 이젠 누군가 제 글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보고 싶더라고요. 제품이나 프로젝트를 다룰 때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기획자를 소통의 징검다리로 생각하는 것처럼요.
가끔 주변 기획자들이 '기획자는 박봉이다', '여기저기 치인다', '굳이 없어도 된다', '직무 전환을 하고 싶다' 등 신세한탄을 하거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경우를 보곤 하는데요., 이제 저에게 기획은 전부가 되었고, 기획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갈고닦도록 하려고요. 누군가에게 잘 보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