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냈나요.
지중해 깊숙한 곳에 밤이 찾아온 순간이면 당신은 이미 나를 망각했겠지요. 어둠 속에서 생장캅페라(Saint-Jean-Cap-Ferrat) 등대가 보내는 신호는, 나를 향한다기보다는 어느 죽음에게 다가가는 것인지라, 나는 고개를 떨군 채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삶의 형상을 떠나보냅니다. 해가 지고 나면 등대를 품고 있는 바위 언덕의 형상은 소멸하고, 오로지 검은 하늘에 붕 떠 있는 새하얀 불빛만이 주기함수처럼 반짝이고 있을 뿐입니다.
스무 살의 나를 마주할 자신이 없습니다. 산들바람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던 그날이 생각나서, 부끄러움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 부끄러움을 수평선 너머로 던져버린다 하더라도 나는 부끄러움과 함께 수평선 너머 보이지 않는 바다 깊숙이 숨어버릴 터이지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나는 끝내 스무 살의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영국인 거리(Promenade des Anglais) 위를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갈매기들과 함께, 처음으로 ‘방황’이라는 현상(또는 감정, 또는 행동)을 마주한, 그 시간을. 나는 그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갈망하며 시간이라는 지폐를 한 장씩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잊어야 하는 존재로부터 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망각되기를 바라는 한 소년이 나를 기다리고 있나 봅니다. 그리움이 존재하기에 삶이 더 아름다워지는 법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