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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mom Nov 13. 2022

나 vs. 우리

서점에 깔려있는 책들의 제목과 목차를 한두 시간 훑어보다 보면 요즘 핫한 키워드들을 대략 파악할 수 있다.

주체성, 자기주도성, 나다움, 힐링... 

모두 '나'로 수렴된다. 


사실,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연구를 하다 보면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성향이 제공하는 유익이 너무 분명해서 그 중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내 연구 결과들이 거대한 흐름 속에 함께 가고 있다는 반가움이 느껴지는 한편,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남들을 의식하며 살았는지를 역설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공존한다. 


학생 시절에는 객관적이고 획일화된 외부의 기준에 끊임없이 평가받으며,

부모님과 친구들, 선생님을 의식하며 성장한다.

그 희망고문의 끝에 대입이라는 인생의 절대적 관문을 통과하고 나서도

이미 익숙해진 사고의 메커니즘은 쉽게 벗어던져지지 않는다.

경쟁과 평가의 체계가 깊이 내재화되어,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파악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무한 경쟁 사회에서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춰가다가 주체할 수 없는 막막함에 절규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이기적으로 자신을 돌보고 챙기라는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졸도 직전인 개인을 살린다.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나만의 세상에서 나만의 즐거움, 나만의 가치,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는 것, 그래서 내가 진정한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문화가 된 것 같다.

이제는 모두가 그것을 숭배하고 추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관계성과 무관한 '나'라는 고유성이 과연 존재할까?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기질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의미 있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간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간절히 열망하는 '나로 살기'는 그리 오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통제권을 상실한 인생을 일시적으로 환기시켜주고 위로해 줄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우리 삶의 지향 가치가 될 수는 없다.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는 것이 인류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이제는 대중에게도 익숙한 심리학자인 메슬로우가 가장 고차원적인 욕구로 설명했던 '자아실현'의 욕구도 그 궁극적인 종착지는 자아초월이다. 진정한 자아실현은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기여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소중히 여기기를 잊어버리면서까지 물질과 권력의 소유를 향해 달려가던 것은 멈추되,

너무 '나'에만 집착하지 말고, '의미 있는 관계 속에서의 나'는 염두하면서 나아갔으면 좋겠다.


소중한 가족, 스승, 멘토, 친구, 동료...

지나치게 그 관계들에 매몰되어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은 정당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무시될만한 관계들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타인'이란,

한평생을 함께할 소중한 관계들이자 내 삶의 의미를 함께 만들어갈 사람들이다.

인본주의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가 말한 '의미 있는 타자'와도 상통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겠다.


인간은 의미 있는 관계들 속에서 존재함을 깨달아야 한다. 

그 안에서 세상에 기여하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때 진정한 행복과 삶의 만족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니 달콤한 개인주의에 쉽게 현혹되지 말고, 의미 있는 타인과 형성하는 '우리'의 관계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자아실현을 넘어서 자기 초월을 지향했으면 좋겠다.

그럼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억지스럽게 나만의 것을 붙잡지 않더라도 좀 더 편안해진다. 

협력을 위해 조금 더디 가고 양보하게 되더라도 조바심이 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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