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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NIE Dec 22. 2021

운동화를 신은 신부

허리디스크 환자의 결혼식

허리디스크를 진단 받고 난 뒤, 가장 걱정이 되었던 부분은 10월에 있을 결혼식이었다. 주인공이 되는 인생의 하나뿐인 날을 앞두고 병이 나다니, 그것도 나는 결혼식에서 주인공이라고 일컫는 '신부 역할'인데 말이다. 허리디스크 진단 초반에 몇 가지 잘못된 행동을 한 결과, 8월의 나는 외출을 10분도 못하는 몸이 되어있었다. 결혼식을 백 일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다. 1년을 잡고 넉넉하게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플래너 없이 결혼준비를 했는데, 반쪽짜리 체력과 정신력을 가지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건 여간 쉬운일이 아니었다.


결혼식에서 신부는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불편한 드레스를 입으면서 동시에 환한 웃음으로 하객들을 맞이해야하고 30분정도 진행되는 예식에는 대부분 서있게된다. 허리디스크에 좋지 않다는 행동을 다 하게 되는 것이다. 디스크 환자는 높은 구두를 신거나 한 자세로 오래 있는 경우에는 허리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결혼식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심지어 코로나 거리두기 4단계로 최소한의 손님만 모셔온 상황에서 신부가 죽상을 지을 수는 없었다. 새벽부터 받는 메이크업부터 피로연까지, 약 7시간이 걸린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일지 모르나 휴직한 이후로 오랜 외출을 하지 않았고, 새벽부터 시작되는 일정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매일매일 기도했다. '결혼식 날은 제발 괜찮게 해주세요'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서는 또 다른 걱정이 있었다. 다행히 기도 덕택인지 허리는 조금씩 괜찮아지고, 걷는 것도 큰 무리는 없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무리할 경우 혹은 숙면을 취하지 않거나 역치 이상을 걸었을 경우에 허벅지와 엉덩이가 쓰리고 싸하게 아픈 방사통이 지속되었다. 결혼식 날은 기본적으로 예민한 상태에서 새벽부터 일정을 소화하기에 체력적으로도 힘들 것이 뻔했다.


게다가 많은 손님을 만나고, 인사하고 예식이 잘 치뤄지는 지까지 매니징하는 신부 겸 PM(project manager) 을 자처했기에,  '결혼식을 계기로 몸이 더 안 좋아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월간 보존치료하여 허리를 살살 달래왔기 때문에 결혼식을 계기로 그동안의 공든 탑이 무너지면 안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밖에만 나가면 허리가 딱딱해져 10분도 있지 못하는 일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구두 대신에 운동화를 신자!




가장 무리가 있을 요소부터 없애기 위해 신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보통 신부는 메이크업샵에서 부터 구두를 신고 이동하는데, 허리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 것이라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신부 대기실에서도 구두 대신에 운동화를 신고 하객을 맞이한 뒤, 입장 직전에 6cm정도의 구두로 갈아신기로 했다. 인생에 한번 뿐인 예식에 하얀 운동화도 아니고, 회색 운동화를 신는 일은 쉬운 결정은 아니였지만 바닥이 튼튼한 '에어'가 들어간 운동화가 아니면 운동화를 신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 운동화를 고를 수 밖에 없었다. 


메이크업샵에서 이모님께 "저 운동화 신고 이동할 거에요!" 라고 말하자, 드레스샵 이모님은 약간 당황했지만 허리 때문에 그렇다고 말씀드리니 오히려 내가 조심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사진작가분께도 부탁드려 여러가지 사진에서 허리를 과하게 꺾는 행위나 무리한 자세는 취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고 이 때문에 스냅 사진에서도 포즈가 제한되기도 했다. 원활한 예식 진행을 위해 웨딩홀 스탭들에게도 전달해야 했고 감사하게도 신발을 갈아신는 시간을 적절히 조절해 주셨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에 나의 운동화 도전(?)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운동화를 신기로 한건 사실 건강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손님을 초대하는 인생에 중요한 행사에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패션 센스가 눈총을 받을까 걱정한 적도 있었다. 당일에 예식을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운동화를 신는다고 말하고 그 이후에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던 것은 조금 피곤했지만 이유를 듣고는 다들 도와주려고 하셔서 오히려 괜히 혼자 눈치를 봤나 싶었다. 


스냅사진에 포착 된 '운동화를 신은' 예식 당일의 나

다행히 여러모로 조심한 덕택인지 결혼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걱정하는 것 처럼 결혼식 이후에 허리가 심각하게 아프지도 않았다. 허리디스크는 다시 한 번 평범한 일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예식 당일 운동화 신은 내 모습을 보며 고작 그 짧은 시간도 참지 못했냐고 속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한 번 뿐인 결혼식에 굳이 오점을 남겨야 했느냐고 물을수도 있다. 


그래도 막상 운동화를 신은 스냅사진을 보니 당시에는 '결혼식 날까지 이놈의 디스크때문에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니'라고 생각하며 우울했던 날들도 나름의 에피소드가 되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운동화를 신은 바람에 갈아신을 시간이 필요해 신부대기실에서 많은 사진을 찍지도 못 했고, 허리를 숙이지 못해 하객들에게 감사인사도 뭔가 대충(?)하는 것 처럼 보였겠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후회는 없다.


아마 나는 허리디스크를 가지고 살면서 계속해서 이렇게 평범한과는 거리가 있는 일들을 선택해 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겠지만, 고정관념과 상식을 깨는 나름의 비범함이라며 위로하며 살아갈 것이다. 


혹시 아는가, 결혼식에서 운동화를 신을 수 밖에 없는 현실에는 좌절했지만, 뒤늦게 받은 스냅사진에서 운동화를 신은 모습을 보고 오히려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네' 라고 또 생각할 날이 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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