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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돈 Mar 23. 2021

봄비, 그리고..

조용히 내리는 봄비의 기척에 놀란  미세먼지가 슬며시 꼬리를 내렸다. 발을 딛고 사는 아름다운 한반도는 철마다 비가 내린다. 계절마다 내리는 비는 여러 가지 모양이지만 홀로 두드러지는 게 봄비다. 움츠렸던 겨울을 씻어내는 바램과 더불어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기에 이 비는 그리운 사람을 향한다. 

 푸른 나뭇잎에 떨어지는 여름비는 맑고 깨끗하다. 가을에 내리는 비는 산기슭 단풍의 외로움을 파고든다. 그리고 이른 겨울, 처마를 때리는 비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어수선하다. 모동(暮冬)에 겨울 눈을 대신해 내리는 겨울비는 처량스럽다.


수많은 시인들이 봄비의 강한 흡인력에 매료되어 마음으로 스며드는 감정을 다양하게 표출하고 있다. 


 변영로(卞榮魯)의 (봄비)는 누군가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고 했다. 그리고 반가운 마음에 나가봤지만 기다림에도  오지 않는 사람(사랑)에 대한 상실감을 투영시키고 있다.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이수복(李壽福)의 (봄비)는 대지를 적시는 봄비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숙녀의 화사한 얼굴과 꽃이 서로의 아름다움을 다투는 모습을 그려냈다. 동시에 향연같이 사라지는 그리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이야기한다. 사랑과 이별은 뗄 수 없는 것일까?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벙글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노천명(盧天命)의 (봄비)는 겨울을 보내기 싫어서 통곡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울고 싶은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시인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인 사람들도 많을 듯싶다.


봄이 온다기로

밤새껏 울어 새일 것은 없으련만

밤을 새워 땅이 꺼지게 통곡함은

이 겨울이 가는 때문입니다.


정연복(鄭然福)의 (봄비)는 겨우내 지난했던 삶의 고단함을 위로해주는 존재다. 목마름을 달래주는 고마운 존재로 다가온다. 올봄, 이러한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까?


밤새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

겨울 너머 먼 길

걸어오느라 고단한

새봄의 목마름을

해갈시켜 준다.


이해인(李海仁)의 (봄비)는 보슬보슬 내리지만 마음 깊숙이 울림을 주는 귀한  깨달음이다. 시인은 무슨 말을 들었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지금 봄비가 내린다면 창가에 앉아 귀 기울여 들어보시기를, 빗소리가 아닌 마음의 소리가 들리리라.


조금씩 내리지만 

깊은 말 하는 너를 

나는 조금씩 달래고 싶단다.


김설하의 (그대 봄비처럼 오시렵니까)의 봄비는 그리운 사람과의 따뜻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심한 가슴앓이 중이다. 가슴 앓이를 하고 툭툭 털어낸 사람도 있겠고, 지금도 죽을 것 같은 그리움에 사무쳐 잠 못 이룰 사람도 있으리라.


물먹은 솜처럼 외로움에 젖어서

영원히 가라앉아 버릴까 봐

잠 못 이루는 날 많아져서

비 되어 하염없이 떠내려가다가

그대 가슴으로 스며들고픈

하루가 갑니다. 


김용택(金龍澤)의 (봄비)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 울고 있는 자신이다. 그리고 잊고 있던 그 사람을 소환하는 매개체다. 이 밤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으신지요.


내 가슴에 묻혔던 내 모습은

그대 보고 싶은 눈물로 살아나고

그대 모습 보입니다.


박목월(朴木月)의 (봄비)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다. 마음에 내리는 봄비에 하루 종일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


조용히 젖어드는 

초가(草家) 지붕 아래서

왼종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김소월(金素月)의 (봄비)는 꽃이 지고, 비가 오고, 봄과 내 가슴은 울고 있다. 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봄비를 보면서 특유의 슬픔과 격정을 끌어낸다. 이름 없는 봄비를 보면서 그사람이 떠오르는 건.. 


어룰 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 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속에는!


안도현(安度昡)의 (봄비)는 생명을 잉태하는 봄을 노래한다. 숨어있는 꽃망울을 틔우려는 지속되는 두드림이다. 결국에는 희망을 바라본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봄비는 왕벚나무 가지에 자꾸 입을 갖다댄다

왕벚나무 가지 속에 숨은

꽃망울을 빨아내려고.


양광모의 (봄비)는 당신과 나,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랑이다.


심장에 맞지 않아도

사랑에 빠져 버리는       

천만 개의 화살 

그대,                      

피하지 못하리.


 '후드둑 후드둑' 늙은 나무의 늘어진  어깨를 토닥이며 내리는 봄비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지친  마음에 날려 떨어지는 꽃잎이다.   살다 보면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립고 외로워진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리움은 사랑으로 움튼다. 비록 이별의 연장선상에 있을지라도. 누군가에게 그리운 사람이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당신에게 달달한 봄의 향기를 뿌리는 이 봄비는 어떻게 다가오나요?   애잔한 마음일 수도 있겠고, 또 끝내 닿지 못할 서러움일 수도 있으리라.

(2021.03.23. 맑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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