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쌀쌀해진 날씨와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에 몸을 움츠린다. 주일날 저녁, 행신역에서 직장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차가운 공기와 내려앉는 어두움이 어우러져 고된 하루의 마감을 재촉한다. 오늘따라 두통이 심해 피곤한 몸을 객실 의자에 기댄다. 객실의 탁한 공기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하다. 다정한 연인들의 행복한 미소부터 다소 무뚝뚝한 표정의 아저씨, 그리고 조잘대는 딸을 안고 달래는 엄마의 모습까지. 하지만 가장 흔한 표정은 이어폰을 끼고 자신만의 음악을 들으며 핸드폰에서 무언가를 검색하는 모습이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와 낯선 사람들의 눈길이 거북해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요즘 사람들의 보편화된 모습이다. 나 는 핸드폰을 자주 열지는 않지만 낯선 눈길이 민망해 괜히 힐끔힐끔 핸드폰을 열어보곤 한다. 바탕화면 달력을 보니 벌써 올해 마지막 달이다.
거리에 쌓이는 낙엽 위로 겨울비가 내렸다. 어느덧 당당했던 달력은 마지막 한 장을 남겨두고, 얇아졌다는 자기반성에 파르르 떨고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 달은 "힘을 내. 아직 늦지 않았어"라고 위로하는 듯하다. 자기 최면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12 숫자에 눈길을 준다. 어제 밤거리는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거리를 물들였고 인파로 북적였다. 이유 없이 분주한 객지에서 마음이 시린, 그리고 몸이 지친 지인들의 송년회를 알리는 문자가 주춤하다. 역시 코로나를 이길 재간이 없다. 사무실에서 연말에 평가받을 실적을 점검하며 부족한 숫자를 맞추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니(전 3:1~2) 지금은 각자의 기대치와 가치관의 잣대로 의미 있는 마무리를 해야 할 때다. 2022년 업무수첩을 받고 2021년 업무수첩을 뒤적이며 지난 연초부터 있었던 일들을 더듬었다.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고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한다. 마지막 달의 의미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평가는 엇갈릴 것이다.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는 뭉클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스스로에게 하나만 묻자. 올해 잘 살아왔니?
망설임 없이 "당연하지"하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더라도 아직도 나를 기다리는 세상이 있으니 불안해하지 말아야지. 관심도 없으면서 내가 그 자리에 있기를 바라는 세상을 향해 화를 낼 줄 아는 것을 보니 아직은 내가 살아있나 보다. 하얀 눈처럼 순수한 눈빛을 가지고, 자신이 서있는 곳을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늦을 거라는 조언에 "주변을 맴돌며 왜 그러고 있니?"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젠 몸매도 흐트러지고 금전적으로도 예전 같지 않은 나이에 이르렀다. 그래도 "괜찮아, 나는 그냥 나야. 내일이 있으니 어제와 다르지 않을 거야. 두려워하지 않아야 자유로울 수 있잖아". 나 자신에게 읊조린다.
돌이켜보면 처음 무대에 오를 때는 떨렸지만 그 긴장감은 나를 흥분시켰다. 여전히 가슴은 뛰고 있는데 혹시 내가 나를 밀어내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한다. 가장 바쁜 사람이 가장 많은 올해를 누렸다고 말해주고 싶다. 몇 주 남은 올해도 정신없이 지나갈 것이지만, 넘겨짚지 말고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자. "다 잘 될 거야". 이 아침, Nina Simone의 "Feeling Good"을 들으며 커피 한잔해야겠다. "넌 내 기분 알지?"
(2021.12.16. 맑은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