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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돈 Jan 06. 2022

겨울밤 가래떡

동지가 지나면서 지루한 어둠이 금씩 늦게 찾아오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여전한 겨울밤은 길고 길다. 베란다 커튼을 걷고 깜빡이는 불빛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지난 세월 따스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외숙모와 떡에 대한 기억이다. 아마 설 명절 때로 기억이 되는데,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머니와 함께 외삼촌 댁에 간 적이 있다. 지금은 각박한 세월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명절 때면 친척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자주 다니곤 했다. 외삼촌은 제천역 근처에 터를 잡고 계셨다. 제천이란 지역은 나에게는 항상 그리움의 대상이다. 의림지를 끼고 있는 모산이란 동네가 그립다. 산이 띠를 이루고 있는 산골마을이다. 겨울이면 의림지에서는 전국 빙상대회가 열리곤 했다. 찬바람을 마다하지 않고 의림지를 뛰놀던 그 시절이 벌써 수십 년 전이라니 참, 시간이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그날은 몹시 추웠고 눈도 많이 내린 날이었다. 역에서 내려 어머니 손을 잡고 한참을 걸어 외삼촌 댁에 도착했다. 외할머니께 세배를 하고 건넛방으로 가서 외숙모와 함께 화로를 쬐었다. "손이 차네" 하시며 내 손을 꼭 잡아주시던 그 따스함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따스한 온기로 기억된다. 어머니와 외숙모는 한참 이야기를 나누셨다. 나의 곱은 손이 녹고 속이 출출해질 즈음, 외숙모는  화로 위해 석쇠를 놓고 가래떡을 구웠다. 떡이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면서 톡톡 소리를 낸다. 젓가락으로 꾹 찔러보시고 “ **아, 먹어라. 여기 조청이 있으니까 찍어서 먹으면 맛있을 게다” 하신다. 젓가락에 떡을 꽂아서 조청을 찍어 입으로 한입 베었다. 입안에서 퍼지는 조청과 떡의 씹히는 식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요즘 세련된 세프의 손길에서 만들어진 음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말이다.

그날 이후 설 명절이 다가오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가래떡을 구워 먹어보곤 하는데 그때 맛이 나지를 않는다. 아마 외숙모의 따뜻한 마음과 정성이 어우러진 맛이었나 보다. 외숙모를 생각하면 화로와 가래떡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 지난 일에 대해 되돌아보며 그 시절을 그리워 하나 보다. 과거를 그리워하기보다 앞날을 생각하라고 하지만, 한 편의 아름다운 기억도 가슴에 묻어두고 가끔은 꺼내보는 삶이 더 애틋하지 않을까! 지금은 뵐 수 없는 외숙모님, 그곳에서 몸은 건강하신지, 그리고 아직도 요리 솜씨가 좋으신지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외종질이 궁금해합니다.

(2022.01.06. 맑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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