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학왕라니 Aug 01. 2022

살풀이는 조갑녀, 그렇다면 나는?

2022.08.01. 월요일

물놀이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전북 남원에 들렀다. 아들이 얼마 전 책을 읽고 춘향이와 이몽룡 이야기를 했기에, 그들이 지냈던 장소를 보여주고 싶었다.

차에서 내리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처음에는 우산 쓰고 사진은 찍을 수 있는 정도였는데, 조금 지나자 잠시 비를 피할 공간을 찾아야 할 정도로 세차게 퍼붓는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조갑녀 박물관"이었다. 문장이 강렬하다. 살풀이는 조갑녀

그녀의 모습과 생전에 사용한 물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젊을 때의 모습은 없다. 이 분은 인생의 시작 지점보다 끝 지점에서 빛을 내신 분인 듯하다. 하지만 젊었을 적에도 부단히 노력하셨을 거란 건 분명하다. 한 분야의 일인자가 되어 자신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삶이 경이롭다.


난 어떤 분야에서 저렇게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곧이어 부끄러워졌다.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으면서 어찌 이 질문에 바로 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는지. 어영부영 이렇게 지내다가 곧 40이 되고, 50이 되고, 퇴직하게 되는 건 아닐지 괜스레 마음만 바빠졌다.

비는 그칠 생각을 않는다. 옆 건물로 가보았다.

여긴 판소리 명창 "안숙선 박물관"이다. 햇빛 쨍한 날이었다면 그리 감흥이 없었을 텐데, 빗소리와 어우러져서인지 판소리가 제법 운치 있게 들렸다.

수궁가, 춘향가, 흥부가 등 판소리에 문외한인 사람도 알 수 있는 곡들이라 반가웠다. 이 분의 삶도 한 개인의 삶으로서는 굉장하셨을 텐데 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나의 관심사가 아닌 분야의 일인자에게는 대단함을 느끼지만, 부러움이나 질투의 감정은 생기지 않는다. 살풀이를 잘하고 싶은 마음도, 판소리를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마음에서 "부러움"이란 감정을 느끼는 대상에 집중해야 한다.


난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부럽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도 부럽다. 이 둘 중에 어느 마음이 큰지 헤아려보면 시기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결국 나는 이 두 가지를 손에 쥐고 살아갈 것이다. 다행히 우리의 손이 두 개이니 굳이 한 가지를 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살면서 잠시 한쪽의 힘이 빠진다 하더라도 다른 쪽에 힘을 단단히 주면 되겠지.


남은 방학 동안 2학기에 아이들과 수학을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지 고민해야겠다. 수학 역량을 기르기 위해 어느 부분에 힘을 쏟을지도 깊이 고민해야겠다. 지금 하는 선택에 따라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이 달라질 테니까.

이전 02화 아들 친구 엄마 효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