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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준 Jun 24. 2021

동사무소에서 이런 것도 해요?

선거, 어디까지 가봤니?

동사무소로 발령 난 후 업무를 배우며 들었던 생각 중 하나가 동사무소에서 이런 것도 하나? 였다. 나에게 동사무소는 등초본 서류를 떼러 가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큰 착각이었다. 동사무소는 마치 백화점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 지하 1층 식품매장부터 화장품, 여성의류, 남성의류, 스포츠웨어, 가구, 영화관 등 다양한 업무를 동사무소라는 한 곳에서 여러 사람이 분담하는 모양새이다. 한 사람 당 하나의 업무가 아닌 여러 업무를 담당한다.      


근무 기간 중 담당 업무를 다 경험할 수도 다 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시즌 별로 돌아오는 업무가 있기 때문이다. 선거 업무를 예로 들 수 있다. 선거는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2년 동안 선거를 담당한다고 했을 때, 운이 좋으면 2년 동안 한 번도 선거가 없을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재보궐선거까지 여러 번 경험할 수 있다.      


선거를 동사무소에서 담당한다는 사실도 임용되기 전까지 몰랐었다. 당연히 선거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리한다고 생각했다. 선거인 명부 작성부터 투표소 설치까지 모두 공무원들의 손을 거쳐 완성되는 것들이다. 선거철, 집으로 선거공보물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각 후보들의 공약이 적힌 홍보물과 투표안내문 모두 공무원들이 일일이 하나하나 수작업한 뒤 발송된다. 이 작업을 위해 주말에 모든 직원이 총출동되어 하루 종일 공장처럼 나란히 서서 일을 한다. 당시에는 온종일 서서 일하느라 다리도 아프고 주말 출근이라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동사무소라 경험할 수 있던 추억이었다.      


투표 당일, 투표소에 보이는 기표대, 투표함 등 모든 것들을 다 투표사무원들이 일일이 준비한다. 투표 전날, 투표 사무원들이 모두 모여 설치한다. 바닥에 종이를 펼치고 테이프로 붙이고 기표대를 설치하고 참관인들을 위한 의자도 설치하는 등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본 투표 당일, 새벽 4시 30분까지 집합한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참관인과 함께 선서를 하고 투표함을 봉인한 후 투표가 시작된다. 사전투표와 달리 본 투표는 거주지에 따라 투표소가 정해진다. 지정된 투표소에만 투표가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투표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투표소를 잘 못 찾는 사람들이 많다. 같은 지역이어도 누구는 1 투표소, 다른 이는 2 투표소 일 수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누구를 찍어야 하냐고 묻는 사람, 당당히 새치기하는 사람도 있다. 새치기를 저지하자 화를 내며 사라졌었다.      


오후 6시가 되면 드디어 12시간의 투표가 끝이 난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관리관은 투표함을 들고 개표소로 향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뒷정리를 시작한다. 우리가 처음 이곳에서 온 것처럼 유에서 무를 만들어야 한다.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고 말끔히 정리를 하고 동사무소로 돌아온다. 투표관리관이 투표함을 개표소로 인계하고 나면 비로소 끝이 난다.      


공무원이라 겪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경험이었다. 당시에는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공무원 생활을 떠올리며 누군가에게 소소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추억거리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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