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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준 Jun 14. 2021

저도 공무원은 처음이라서

제가 이걸 할 수 있을까요?

마치 어제 일처럼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임용 첫날이. 드디어 나도 어엿한 직장인이라는 사실에 한껏 설렜다. 그리고 몇 시간의 인수인계를 끝으로 바로 담당자가 되어 현장에 투입되었던 임용 첫날, 당황스럽고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지금 공무원이 된 건가…….     


그날은 까만 스커트에 재킷을 걸치고 아직은 어색한 구두를 신은 채 임용식으로 향했다. 한겨울 칼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한껏 상기된 얼굴을 한 채 똑같은 표정을 한 까만 정장을 입을 사람들과 함께 임용식 장소로 향했다. 몇 주간 연수를 같이 들었던 동기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어색하게 강당에 서있었다. 식이 시작되기 전, 호명하는 순서대로 줄을 서고 시작되길 기다렸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오니 드디어 실감이 났다. 내 손 위로 임용장이 건네지는 순간 ‘아, 내가 그리 고대하던 공무원이 되었구나.’ 감개무량했다. 식이 끝나고 신규 공무원으로 해야 할 일들이 기다렸다. 급여통장을 개설하고 각자 발령받은 곳으로 이동하기 전, 동기들과 인사를 나누고 같은 곳으로 발령 난 동기를 소개받았다. 발령지에 우리를 마중 나오신 주사님의 차를 타고 낯선 이들과 낯선 곳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이어지는 면담과 업무분장. 순식간에 일어났다. 동기는 도착하자마자 다른 곳으로 발령 난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으러 떠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인사이동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그날따라 유난히 민원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덩그러니 회의실 탁자에 앉아 동사무소를 유심히 관람했다.     


살면서 동사무소를 몇 번이나 가봤는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가 본 적이 극히 드물었다. 현실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서류를 발급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급한 불이 꺼지고 드디어 사수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앞으로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받고 바로 민원대에 앉았다. 


‘등, 초본 발급은 이거 누르시면 돼요. 먼저 신분증 받고 본인인지 확인하셔야 해요. 서명기에 서명받으시면 되세요. 수수료는 여기 보시면 나와요.’ 순식간에 쏟아지는 사수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등본과 초본의 차이도 몰랐던 나에게 갑자기 등초본 발급이라니. ‘제가 이걸 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제가 이걸 하나요?’ 진심이 툭 튀어나왔다.        


사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본인도 첫날 그렇게 말했다고. 그렇게 나는 담당자가 되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짧은 인수인계가 설마 끝은 아니겠지? 설마는 없었다. 뚝딱거리며 사수에게 하나하나 물으며 민원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때 깨달았어야 했다. 공무원 세계에 체계는 없다는 것을. 하나하나 몸소 부딪혀가며 깨달아야 했다.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다. 신기했다. 한 사회가, 한 집단이 이렇게 우당탕탕 굴러간다는 것이. 그리고 몇십 년을 굴러왔다는 게. 불안이 엄습했다. 까마득히 남은 공무원 생활, 과연 내가 견딜 수 있을까.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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