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에세이
남편과 함께 건강검진을 다녀왔다.
대중교통을 선호하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 편한 자차를 버리고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평소에 잘 걷지 않고 운동을 즐기지도 않는 나는 지하철 몇 계단에 이내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쓰지 않던 다리 근육이 뻐근하게 아파오기 시작했고 그제야 참고 있던 불만이 뾰족하게 돋아나기 시작했다.
"차 조금 막혀도 차 가져오는 게 더 편한데. 이렇게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 가야해?"
그런 나에게 일침을 가하는 남편의 한 마디.
"이거 걷고 그렇게 힘들어서 어떡하니? 여보, 남들 다 이렇게 다녀."
그래, 맞다. 너무 수긍을 잘 하는 것도 문제라고 여기면서도 나는 여전히 빠르게 수긍한다. 다들 이렇게 부지런히 걷고 오르며 저마다의 삶의 목적지에 다다른다. 대중교통이 편해서일수도, 자차가 없어서일수도, 이런 저런 알 수 없는 이유로 부지런히, 묵묵히 계단을 오르내리는 숱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당연하게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전에 없던 부지런함이 묻어나는 것도 같다.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평안한 일상에 젖어 산건 아닌지 잠깐 돌아본다. 독서와 글쓰기에 빠진 삶은 운동과 더 멀어지게 했다. 활동적인 일을 하는 시간보다 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흠칫 이상한 생각에 빠져든다. 나중에 남편이 기분좋게 해외여행에 데리고 갔는데 체력이 없다며 걷지도 못하고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면 어쩌나? 쓸데없는 걱정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남편과 함께 떠나는 유럽여행은 상상만 해도 신나는 일이지만 체력이 되지 않아 일정을 마치지 못할 생각에 미치니 갑자기 무척 슬퍼졌다.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그래. 나에게 없던 글쓰기 근육을 만든 것 처럼 내 몸에 장착되지 않을 것 같은 운동근육도 만들어봐야겠다.
굳센 다짐을 하고 나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지하철 계단을 허리를 더 꼿꼿이 세워고 올라본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 다시 1호선 전철에 몸을 실었다.
"오래 가야 되니까 앉아서 가야 돼."
다행히 앉을 자리가 있었다. 편하게 앉아 유유히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나마 대중교통 나들이가 한편으로 기대되었던 이유였다. 전철 안에서 마음껏 책 읽다 여유롭게 와야지. 자차로는 느낄 수 없는 여유란 이런 것 아닌가!
그런데 정수리가 너무나 따갑다. 그 시간에 어르신들이 어찌나 많은지, 연신 자리를 양보하고 나니 차라리 서 있는 게 편할지경이다.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해드리고 아직 튼튼한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도 꼿꼿이 독서를 즐겨본다. 비록 근육하나 없는 텅빈 강정이지만 아직 늦지 않은 젊음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해진다. 더 굳건한 두 다리로 만들어 내 발길 닿는 모든 곳, 가 보고 싶은 모든 곳 씩씩하게 다녀봐야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지금부터 틈틈이 외양간 모양새를 잘 다듬어보자.
"어떻게 그렇게 운동을 좋아하고 자주 해요?"
"글쓰기 안 하면 큰일 나는 것 같죠? 매일 글쓰기하시죠? 운동도 똑같아요. 말씀하신 것 처럼 하다보면 늘고 하다보면 근육이 생기고 하다보면 안 하면 허전하고 이상해요."
글쓰기 모임에서 글쓰기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 연사 항상 자신있게 외쳐왔건만 역설적으로 코칭당하고 말았다. 정신이 번쩍 든다. 우리 몸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나의 뇌는 '운동'을 도망쳐야 할 적군으로 인식하고는 철저하게 벼르고 있다. 완강하게 버텨 이기겠다고. 무의식이 습관을 만들고 의지는 습관에 항복한다. 무의식에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장착되어 있는 것 처럼 나의 무의식에 한 가지 더 새겨넣어 본다. '운동'
하루라도 글쓰기를 안 하면 목구멍에 가시가 돋는 것 처럼 하루라도 운동을 안하면 찝찝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행복한 그 날이 나에게도 어서 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