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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Mar 24. 2024

내가 놓으면 끝나는 관계

나의 x에게

그녀는 내 글의 1호 팬이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고 그 재미에 흠뻑 빠져 있었을 때 그녀는 매번 내 글을 칭찬해 주었다. 시작이 좋았다는 말이다. 그 칭찬 덕에 나는 더 신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나라고 별 수가 있을까?

내게 브런치를 권유한 이도 그녀였다. 그때 나는 브런치의 존재도 몰랐는데. 3명이 고작인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그녀는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라면서 좀 더 큰 물로 나가라고 권했었다. 그 말을 들을 땐 과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글을 브런치에서 쓰고 있다니.


그녀와 보낸 시간이 모두 좋았다. 우리는 달에 한 번 글쓰기 모임을 했다. 그때마다 우린 ‘일로 만난 사이’란 말에 충실하게도 모임 후 밥 한 끼 함께하지 않았고, 모임날 외엔 따로 만나지도 않았다. 나는 그마저도 좋았다.

꼭 칭찬 때문에 그녀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 나는 처음 시작한 글쓰기가 좋으면서도 외롭고 또 불안했다. 그런 마음을 누구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그녀는 나만큼 글에 진심이었다. '아니면 말'고 이런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다. 글로 만나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그녀에게 일이 생겼다.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족 때문에 그녀는 장시간 집을 떠나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녀가 없어서인지 글쓰기 모임도 전 같지 않았다. 유독 내게만 박한 평가와 글쓰기에 게으른 사람들. 계속 글을 써야 하나 회의가 들었고 그럴수록 그녀가 더 그리웠다.

그러나 나는 마음껏 연락하지도 못했다. 부담스러울까 봐, 혹시 이게 나와 멀어지고 싶은 어떤 sign일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녀와의 추억이 너무 좋았던 탓에 그렇게라도 나는 그 관계를 붙잡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왔다.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앉으니 그간의 시간은 무의미했다. 마음은 금세 통했고, 내 마음속 흐릿했던 것들도 그녀와 얘기하다 보면 분명해졌다. 이렇게나 취향이 맞을 수 있는 건가. 적어도 글쓰기에 있어서는 그녀는 소울메이트, 영혼의 동반자였다.

나뿐 아니라 지인들 모두에게 연락을 잘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그녀. 그럼에도 그녀 곁엔 나처럼 이 관계가 좋아 끊어지지 않는 관계가 있구나. 담엔 꼭 자신이 먼저 연락해서 만나자고 했다.


역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내가 먼저 연락해 만났고 그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제 곧 1년이 된다. 나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그녀로부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상대만 좋다면 먼저 연락하는 것쯤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가끔씩 심술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만 좋은가 봐. 나도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고 싶었다. 상대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좋아도 이 관계는 내가 놓으면 끊어지는 관계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음이 부대낀다.

이 글을 쓰고 마음을 정리해야지, 아쉬움도 미련도 모두 내려놓아야지 다짐했으면서도 '이렇게 좋았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연락해 볼까? 그러면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가지 않을까?' 갈등하는 내가 참 못나게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좋아하는 걸 포기할 수 있고 다시 힘들고 싶지 않다. 내가 놓으면 끝나는 관계는 정상이 아니다. 괜한 욕심에 아름다웠던 추억까지 망치지 말자. 어떤 관계는 상대방에 의해 다시 시작되기도 한다.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 수 있을까? 1%의 가능성을 믿고 나는 이제 이 관계를 그만 놓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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