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글라스를 쓴 사람은 보면 잘난 척한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옅은 색안경도 비호감이긴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런 부정적인 감각은 어릴 적부터 주위에서 선글라스를 쓰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내 선글라스는 10여년도 더 전에 제주도 중문면세점에서 샀다. 그것은 한때 유행이기도 했고 지금도 적지 않은 이들이 쓰는 오버사이즈 스타일이었다. 거부감 때문에 많이 쓰지도 않은 채 선글라스도 차곡차곡 나이를 먹었다.
개인적으로 진입장벽이 좀 있었던 선글라스에 대한 마음이 바뀐 건 다름 아닌 눈건강 때문이었다. 미모의 여배우 K는 나보다도 나이가 많다. 그녀가 어떤 인터뷰에서 아역배우로 연기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모조건 선글라스를 썼다고 말했다. 그냥 당연한 거였단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 덕에 노안이 늦게 온 것 같다고 했다.
자외선이 시력에 매우 부정적인 사실은 나 또한 알고 있다. 자외선 노출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백내장 발병률이 높다는 사실, 노안은 버틸 수 있는 만큼 최대로 버틴 후에 돋보기를 쓰란 조언도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최근 나는 노안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밤엔 반(半) 봉사가 되는 느낌이었다.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선 눈앞의 피사체가 쉬이 선명해지지 않는다. 좋은 눈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던 나로서는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생리적인 거부감이 있었다고 하나 상황이 이러니 선글라스가 일종의 지푸라기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방향을 달리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남은 눈이라도 잘 지켜야 한다! 앞으로 선글라스를 열심히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본래 가지고 있던 선글라스는 많이 쓰지 않았을 뿐이지 오래돼서 제 구실을 못할 것 같았다. 선글라스 렌즈도 수명이 있단다. 선글라스 렌즈의 수명은 1~2년으로 의외로 짧다. 겸사겸사 새로 구입하기로 했다. 아이와 함께였다.
사춘기가 오고 있는 아이는 자신은 물론 내 차림에 대한 간섭까지 심해졌다. 이유는 단 하나, 같이 다니면 창피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아이가 10년이 넘은 G사의 선글라스를 쓴 나만 보면 아주 질색을 한다. 뭐라든가? 잠자리 같단다. 그러니 아예 아이한테 허락을 맡고 제품을 구입해야 했다.
안경점에서 진짜 웬만한 선글라스는 다 써본 것 같다. 보기에 예뻐 보여도 내 얼굴에 얹으면 영 선글라스가 죽는 느낌이었다. 아이의 생각도 나와 다르지 않은지 연신 고개를 저었다. 나는 생각보다 선글라스가 안 어울리는 사람이었나 보다.
우연한 기회에 살짝 네모진 선글라스를 써보니 생각보다 봐줄 만했다. 국내 G사의 선글라스가 가장 맘에 들었지만 내겐 다소 부담스러운 금액이어서 나는 그것과 최대한 비슷한 디자인의 선글라스를 샀다. 이렇게 저렴한 게 과연 눈을 보호하긴 하나 싶었지만 자외선은 99.9% 차단해 준다니 다행. 그래, 선글라스 비싼 거 다 이름값이지.
안경을 본 아이의 평가는 기대 이상의 호평이었다. 나쁘지 않다 정도만 해도 성공했다 생각할 텐데, 잘 샀단다. 대단한 시험에 통과한 기분이었고 그 뒤론 더 신나서 해만 나면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 쇼윈도 속의 내 모습 꽤 괜찮은 것 같기도?
얼마 전 밖에 나갔다 선글라스를 벗을 생각도 못한 채 집까지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아이가 나보고 한다는 소리가 "비밀요원이 들어오는 줄 알았어" 이런다. 잘 샀다며? 네가 그랬잖아ㅠㅠ 아~ 잠자리도 싫지만, 비밀요원도 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