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향할 곳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곳. 매화를 보러 왔을 것이다. 이 지방에선 꽤나 유명한 꽃놀이 장소인 데다 TV에서도 수 차례 소개되기까지 했다.
올해는 매화밭의 일부가 폐쇄되었고 날은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나 역시 언제부턴가 꽃놀이로 계절의 변화를 확인하는 게 좋았다. 그런데 올핸 시작부터 영 시큰둥했다. 꽃을 봐도 예쁜 줄 모르겠고, 불안에 자꾸 뒤만 돌아보았다. 이 봄은 왜 이모양이란 말인가?
매화를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기차여행이었다. 비록 기차를 타면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특유의 낭만이 있으니까. 그러나 최종 결정은 자전거였다. 운동삼아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면 좋을 것 같았다.
네이버 길찾기로 검색하니 거리는 12km, 예상시간은 50분. 갈만한 거리였다. 아침에 집을 나서려니 귀찮은 마음에 잠깐 미적거렸다. 항상 하지 않을 이유는 너무나 많다. 그 마음을 겨우 밀어냈다.
이게 얼마 만에 타보는 자전거란 말인가? 그새 기어를 변속하는 손놀림도 서툴러졌다. 게다가 탈수록 이 여행을 제대로 끝마칠 자신이 없어졌다. 너무 추웠다. 후드티의 목덜미로 바람이 쏟아붓듯 들어왔다. 손도 너무 시리고 맞바람을 맞고 있자니 내 계획은 가당치도 않게 느껴졌다.
재정비가 필요했다. 후드티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그 위에 헬맷을 썼다. 헬맷이 삐쭉 올라와 꼴이 우스웠지만, 추운 것보단 백배 낳았다. 자전거 가방에 뒤져보니 언제 넣어놓은 건지 모를 장갑도 있었다. 오예!
과거 한참 자전거를 탈 때 쉼터까지는 금방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그 길이 쉽게 끝나지 않았다. 계속 돌아갈 길이 걱정되었다. 믿을 구석이라곤 초행길은 갈 땐 멀게 느껴져도 돌아올 땐 금방이었던 운전할 때의 경험뿐이었다.
8킬로를 달렸을 땐 10킬로만 채우자 싶었다. 10킬로에 도착해선 1.3킬로 밖에 남지 않은 목적지를 포기하자니 너무 아쉬웠다. 그렇다고 끝까지 가자니 돌아갈 길의 고됨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죽기야 하겠냐고, 내일 드러누우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원동역에 도착했다. 매화 꽃향기보다 나무 타는 정겨운 냄새가 먼저 나를 맞았다. 자전거는 자물쇠로 잠가두고 매화꽃을 보고 왔다. 다행히도 자전거는 그대로 있었다. 유별나게 자전거 도난에서만큼은 상상을 불허하는 우리나라이기에 마음이 내내 불안했었나 보다.
허벅지와 무릎은 우리하고 엉덩이와 팔도 고통을 호소했지만 이러나저러나 집에는 가야 했다. 다행인 것은 돌아가는 길은 역시 한결 수월하다는 것. 불이 붙은 근육 덕분에 낮지 않은 기어에도 페달이 헛돌아갈 정도였다. 계속 속도가 붙어 올 때 14km/l이었던 최고 속도가 18km/l까지 올라갔다. 강 위에 놓인 자전거길에서 듣는 낙동강의 파도소리는 시원했다.
총 3시간 반, 자전거를 탄 거리는 23km. 움직일 적마다 곡소리가 절로 났다. 너무 피곤하면 잠도 오지 않는다더니 몸을 뉘어봤자 뒤척임뿐이었다.
한창때에 비하면 이제 닳고 하찮아진 나의 몸. 그래도 계획한 대로 다녀왔다는 만족감이 컸다. 잘 해냈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엔 내 몸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오는 내내 느끼지 못했던 허기도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그 몸에 탄수화물을 꾹꾹 눌러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