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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Mar 31. 2024

너에게 이불을 사주지 않을 거야

혼자 자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엄마, 나 이불 사줘. 혼자 자면 사준다고 했지?”

안나(가명)가 지난번 이케아에 갔을 때 찍어둔 사진을 전송했다. 당시  이불을 사달라는 아이에게 혼자 잘 수 있게 되면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랬던 내 꼼수가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아이의 침대 위에 이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안나는 자기 취향에 맞는 이불을 덮고 싶어 한다.


사야 한다면 조금 도톰하고 따뜻한 이불을 사야 할 텐데, 안나가 고른 이불은 39,900원이었다. 그렇지만 이건 순전히 이불속일 뿐이므로 덮고 자려면 커버도 하나 장만해야 한다. 고르라고 하면 그녀는 또 물색없이 몇 만 원짜리를 대뜸 고를 것이다. 둘러보니 제일 저렴한 커버가 만원. 순식간에 5만 원이 홀랑 나갈 판이다.


아이가 변심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 손을 많이 필요로 했던 아이를 독박육아로 힘든 줄도 모르고 키워냈다. 그리고 모든 걸 함께 했다. 같은 걸 보고 같은 걸 하니 어찌 닮지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 우린 개그 코드도 같다. 몸의 사이즈만 다를 뿐 우리는 하나나 마찬가지다.


아이가 변한 건 역시 학교에 다니면서부터였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왔는데, 3~4학년 때쯤 갑자기 혼자 학교에 가겠단다. 친구들 중 누구도 엄마가 오지 않는다며 내가 가면 창피하다고. 나로선 매우 편한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하교 후에도 나와 보내는 시간보다 친구와 노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나마 내게 보장되었던 주말에도 안나는 매주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나는 어쩌라고?


그럼에도 이전과 다르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잠자리다.  


애써 잠자리 독립을 시도해 본 적도 없는 안나는 잘 때가 되면 여전히 내 방으로 온다. 잠자리에서는 우리만의 의식이 있다. 내가 붙인 이름은 ‘쪽’. 그건 내가 아이 위에 엎드려 몸무게를 싣는 건데, 무겁지도 않은지 아이는 매일밤 내려가려는 나를 붙잡고 ‘더’를 외친다.


다음 차례는 아이의 근황 토크.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안나는 잠들기 전에 낮에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나에게 일러바친다. 앙금 하나 없이 털어내야 잠을 잘 수 있다는 듯이. 근데 진작 하면 좀 좋아? 얼른 재우고 육퇴를 하고 싶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입에서 쏟아지는 단어들의 포화 아래 있을 수밖에.


하나가 더 남았다. “안아줘!” 아이의 요구는 자못 당당하다.

잘 때는 무조건 안아줘야 한단다. 나는 스마트폰을 조금 더 보고 싶어 ‘네가 잘 준비가 되면 안아주겠다’고 하고 안나는 ‘안아줘야 잠이 온다’고 주장한다. 매일밤 창과 방패가 부딪힌다. 결국 나는 한 손은 폰을 보고 다른 손을 대충 안나 몸에 얹는다. 잠이 안 온다고 칭얼거린 게 무색하게 한순간 아이의 숨소리가 순해진다.


잠자리에서 아이는 오롯이 내게 속한다. 얼마 전 나는 이것이 지금의 내게 허락된 몫의 애정이란 걸 순순히 받아들였다.  


자는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어스름한 빛 속의 아이를 보면 마음이 끝도 없이 물렁해진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세상에 어머니를 보냈다고 하지만, 난 모든 곳에 천사가 있을 수 없어 아이들이 왔다고 생각한다.


그저 자는 것밖에 한 게 없는 아이를 대견한 듯 쓰다듬고 손바닥으로 아이의 볼을 가만히 감싼다. 내 볼을 갖다 대 아이의 말랑한 볼이 빵떡처럼 뭉개지는 느낌도 좋다. 무방비한 그 낯에 몰래, 그리고 자주 도둑뽀뽀를 한다. 자는 아이에게 달라붙어 아이를 안는다. 귀찮을 법도 한데 한 번도 쳐내는 일 없이 무의식 중에서도 아이는 몸을 내어준다. 엄마의 손이 편히 들어올 수 있도록.


그 무방비함이 엄마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란 걸 알기에 내 마음은 잠든 아이의 몸처럼 뜨끈해지고 조금은 황송한 마음마저 든다. 그 느낌은 요즘 같은 때에 더욱 소중하다.

'안나야, 어른 될 때까지 나랑 같이 자자.'


어릴 적 스킨십을 많이 했어도 아이가 자라면 그 빈도가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그나마의 스킨십도 어색해질 것 같다. 지금만 해도 사춘기  아이의 몸을 만지는 게 낯설고 조심스럽다. 그래서 나는 오로지 내 몫으로 허락된 잠자리에서의 아이를 마음껏 독점한다. 할 수 있는 만큼 오래, 또 많이.


매일밤 아이의 넘치는 TMI에 귀가 따갑겠지만 그 조잘거림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아이와 쪽을 하고 잠든 아이의 얼굴에 도둑뽀뽀를 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너에게 이불을 사주지 않을 것이다. 절대 안 사준다는 건 아니고 이건 보류다,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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