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젊음을 바라보며
독서회 후 언제나처럼 뒤풀이 장소로 향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커피 한잔을 마시며 모임 중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우리가 고른 커피숍은 기찻길 옆 대형 카페로 소금커피가 시그니처 메뉴인 곳. 주요한 선택 이유 중 하나는 넓은 주차장이었다.
사람들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지 카페엔 벌써부터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피하고 싶지만, 이 시간에 9명이나 되는 인원이 주차를 용이하게 한 후 조용히 차 한 잔 마실 공간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도떼기시장 안에 자리를 잡았다.
모임에서 나이가 어린 축에 들어가는 나는 모두의 주문을 넣고 만들어진 음료를 가져오는 일에 익숙하다. 아예 들고 갈 요량으로 주문 후 오픈 주방 앞에서 음료가 나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그간 보이지 않던 어떤 사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직원이 모두 어리다! 내 눈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지금껏 카페에서 젊은이가 내어주는 음료를 쥐어든 적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반면 우리 테이블에만 해도 가장 어린 회원이 30대 후반. 30대부터 70대까지 일부러 섞기라도 한 것처럼 연령대가 고루 섞였다. 그중 누군가의 손녀가 그 직원의 나이대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중장년층이 젊은 그들보다 먼저 여유로운 시간에 도달해 취미생활을 즐기고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그런 그들을 위해 젊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는 게 어쩜 이렇게 반으로 가른 것처럼 딱 나뉘었는지. 물론 그 중장년층에게도 저들처럼 돈을 벌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도 오픈 주방 앞에 선 나의 마음은 조금 이상했다.
얼마 전 친구네서 파자마 파티를 했다. 야식은 파자마 파티의 꽃! 그러나 커다란 설렘과 다르게 최종 선택지는 초라하게도 편의점이었다. 이것저것 주문하고 배달을 기다리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를 받자 배민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이 전화가 편의점에서 온 것임을 알려주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긴장이 됐다.
직원은 내가 주문한 '아몬드 브리즈'가 재고가 없다며 같은 금액의 다른 제품으로 대체해 주겠다고 했다. 당연히 사과도 잊지 않았다. 분명히 재고가 있기에 내 주문이 들어간 거였겠지만, 사람이 하는 일인데 어찌 실수가 없을 수 있을까? 다른 제품이 어떤 건지 물으니 대답은 대기업의 두유였고 난 괜찮으니 그걸로 달라고 했다.
이후 직원이 거듭 사과했다. 직원은 기껏해야 20대 초반일 여직원이었다. 전화선을 타고 전해지는 사과에서 미세한 떨림이 감지되었다. 마음에 실체가 있다면 그 순간 내 마음은 쿵 소리를 내며 추락했을 것이다. 나는 일부러 더 유순한 목소리로 괜찮으니 그걸로 대체해서 보내주시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여직원의 목소리에 묻어나던 떨림에 나는 맥없이 안쓰러움의 파도에 휩쓸렸다. 나는 이런 목소리에 아주 약한 사람이니까. 그간 얼마나 많은 갑질에 시달렸으면 이렇듯 대수롭지 않은 일에 파들파들 떨까? 그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물론 그 갑질의 주인공들이 모두 중장년층 일리 없다는 걸 알지만, 그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또 자주 갑질할 위치에 서는 건 사실이다..
스토리가 흥미로워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소설 속 미래사회에서는 과학과 의료의 발달로 더 이상 사람이 죽지 않는다. 그러자 부와 권력은 노인들에게 정체되었다. 그리고 이때 새로운 사업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중장년층에게 청년의 몸을 임대해 주는 것. 주인공이 몸을 빌려줬다 사라진 청년들의 소식을 접하고 이 사업에 가려진 음모를 파헤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저 미래사회에 대한 암울한 판타지일 뿐인데도 최근의 일을 겪은 나는 이 읽지도 않은 소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다고 해서 현재 내가 가진 것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 뽐낼 수 있을까? 일요일, 성당에서 우리를 위한 기도를 올릴 때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간 그 젊은이들을 떠올려 보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