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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Jul 21. 2024

시어머니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

가족의 무거움에 대하여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나서 아이를 불렀다.

"안나야, 할머니 혼자 계시니깐 우리 할머니네서 파자마 파티 할까?"

결혼한 지 올해로 15년이 되었지만, 시댁에서 잠을 잔 적은 한 번도 없다. 시댁이 멀지 않기도 하지만 누구 하나 꼭 시댁에서 자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시아버지의 오랜 여행으로 집이 비어버렸기에 지금이 여자들만을 위한 파티의 적기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대답은 당연하게도 YES!


고작 하룻밤일 뿐인데도 나와 아이는 캐리어에 짐을 꾸렸다. 구입 후 첫 개시를 앞둔 침낭도 캐리어 위에 올라탔다. 손님이 집에 놀러 올 경우 잠자리가 제일 신경 쓰이는 것에 익숙한 나는 어머님께 미리 이불을 준비하실 필요가 없다고 말해두었다. 캐리어를 끌고 시댁으로 향하니 정말 짧은 여행이라도 가는 것 같았다.


저녁은 어머님이 해주시는 밥을 먹었고, 밤엔 시엄마 찬스로 신용카드를 받아 간식을 잔뜩 샀다. 다음날 아침 짧은 산책을 하고 오니 아침이 대령해 있었다. 이후엔 계곡에서 놀다가 맛집에서 점심을 먹었고 낮잠까지 거하게 자며 파자마 파티가 마무리되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파티였다. 모든 게 느슨했다. 아마도 이날의 추억은 모두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어릴 적 엄마는 '뜨거운 걸 잘 먹으면 시어른에게 사랑을 받는다'라고 했다. 이 말이 정말처럼 느껴졌던 건 뜨거운 것을 먹는 것에 잼병인 엄마가 시댁의 사랑을 받지 못한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나는 뜨거운 걸 잘 먹어서인지 시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며느리다. 물론 아무래도 '시'자가 붙었는데 마냥 좋을 리 없다. 나쁜 의도가 전혀 없어도 꼬아져 보이는 게 시댁이란 관계니까.


어느 날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상을 받았냐고, 책을 냈다고 물어오셨다. 이게 뭔 소린가 싶다가 얼마 전 바꾼 카카오톡의 프로필이 생각났다. 공모전에서 작은 상을 하나 받고, 독립출판으로 내 책을 출간했기에 나는 그걸 자랑삼아 프로필에 올려뒀었다. 그걸 어머니가 보시고 알은체를 하실 줄은 몰랐다.


그런데 어머니는 정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셨다. 내가 조용히 그리고 홀로 이뤄낸 성과에 대견하다고 칭찬도 아끼지 않으셨다. 당신의 지인들에게 선물하겠다며 책을 10권이나 주문하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축하와 칭찬이 유난스럽게 느껴졌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부끄러울 일도 아닌데 괜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땐 그게 그렇게 싫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얼마나 고마운 알아챔이었는지 또 진실한 축하였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소식을 접한 내 부모님의 반응과 너무 달라서였다. '그렇구나, 잘했다, 축하한다'가 고작이었다. 그 정도의 축하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간 애써온 시간과 노력은 적어도 내 부모님 앞에선 세세히 해부되어야 하고 오래도록 함께 호호하하 하며 회자되어야 마땅했다.


서운했다.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은 시어머니도 오버스럽게 나를 축하해 줬는데... 그땐 싫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던 거였다. 그 축하는 나를 크게 위로했고, 오래 힘을 주었다.  내 엄마가 그렇게 축하해 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해하려 애썼다. 가진 것 없이 먹고사는 게 바빠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삶을 배울 기회도 없었다. 그러니 나의 수상과 출간이 지니는 의미를 충분히 헤아리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도 한 번 떠오른 실망과 서운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차라리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덜 힘들었을 것이다. 부모님과 유대관계가 약했다면 쉽게 털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엔 엄마는 너무 무해한 사람이었고 한때 나는 나 자신보다 엄마를 사랑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엄마의 삶을 이야기하라는 의도일까? 사명감마저 느꼈었다.


가만히 엄마 자리에 시어머니를 가져다 댄다. 엄마의 마음이야 다르지 않겠지만 내 일에 더 관심 갖고 예쁜 말을 해주고 조금 더 애정을 표현하는 모습은 다를 것이다. 더 젊고 더 잘 꾸미는 엄마는 친구들 앞에서 자랑거리였을 확률이 크다. 그리고 더 넉넉한 환경에서 서포트받았다면 현재 내 모습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은 내가 정신적으로 독립했고 그래서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깊어질수록 속이 쓰린 상상이기도 했다. 죄책감이 나를 옥죘다. 절대 가벼워질 수도, 산뜻해질 수도 없는 애정에 숨이 막혔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지만 피한다고 피해지는 마음이 아니란 걸, 피해봤자 결국 남는 건 더 큰 죄책감과 후회뿐이란 사실에 나는 쉽게 굴복한다.


그래서 오늘도 아빠에게 오는 전화를, 엄마에게 거는 전화를 가장 밝은 목소리로 받는다. 아파도 그만하기 얼마나 다행이냐 안심시키고 지금껏 잘 살아오셨다고 그들의 삶을 한 번 더 응원한다. 그 마음이 무겁긴 해도 거짓은 없다. 우리는 천륜으로 묶인 부모와 자식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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