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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Jul 07. 2024

제 전생은 뽀로로였나 봅니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최근 내가 시간을 쓰는 방법은 과거와는 조금 달라졌다.


나에게 두 번째 목요일은 한 달 중 가장 바쁜 날이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독서회가 있고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또 2시간짜리 글쓰기 수업이 있다. 일정만 보면 두 수업 사이에 넉넉한 공백이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독서회 종료 후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 3시는 훌쩍 넘는다. 거기에 가족의 저녁 식사까지 준비해야 하므로 그야말로 하루종일 정신이 쏙 빠진다.


지난 6월 13일은 유독 더 바빴다. 그날 아침까지도 나는 독서회 뒤풀이 자리의 참석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유는 오후 2시에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있을 강의 때문이었다. 다시 만나기 힘들, 좋은 강의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내가 과연 3개의 일정을 소화해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부산을 오가는 일정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 답이 부표라도 되는 것처럼 딱 떠오를 때가 있다. 독서회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부산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리고 독서회가 끝나자마자 역으로 달려가 기차를 탔고 김밥 한 줄로 배를 채웠다. 물론 강연에도 늦지 않았다. 돌아올 때도 기차시간에 늦지 않을까 맘을 졸였지만, 수업에도 늦지 않았으니 완전 세이프!!! 좋았던 강연과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에 피곤함도 몰랐다.


특별한 일정이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내 자의로 친목의 자리를 거절한 적도 있었다. 그날은 웬일로 단톡방에서 번개 제의가 나왔다.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자는 얘기. 그러나 그날 나는 이미 나 홀로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마음먹은 날이었다. 가만히 대화를 지켜봤고 날짜가 픽스될 때 불참 의사를 알렸다. 나 홀로 비밀을 간직한 것 같았다.


그들이 모이는 날, 나는 인스타에서 봐두었던 피크닉 포인트를 찾아냈다. 눈앞에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버드나무 아래 고요한 초록의 자리에 간간히 물소리를 보탰다. 그곳에 캠핑의자를 펴고 돗자리를 깔았다.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어느 때보다 집중이 잘 됐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보단 훨씬 현명한 선택이라고 여러 번 생각했다.


과거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전의 나는 사람에 또 모임에 전전긍긍했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그들에게 배척될까 봐 '여기서 지금 내가 뭐 하는 거지?'라는 자괴감을 이겨냈고,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오고 갈까 귀를 쫑긋 세웠다. 이제, 과거 나를 옥죄던 그 불안과 두려움에서 내가 조금 벗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6월의 3번째 주도 특별했다. 토요일 오후 6시에 부산에서 있을 북토크 소식을 접했다. 초면인 작가였지만 소식을 알려준 지인과 함께 참석할 생각에, 또 장소가 백화점 루프탑이라는 점 때문에 기다림에는 설렘이 묻어 있었다. 후자를 핑계 삼아 관심 없는 아이까지 꼬셨으니 어찌 고대하지 않을 수가 있나.


북토크 3일 전에 지인을 통해 또 다른 북토크 소식을 들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부산도 아닌 내가 사는 도시에 오신다는 깜짝 놀랄 뉴스였다. 그것도 소식을 들은 다음날에! 당연히 나는 북토크에 참석했고 작가님과 눈을 맞추며 진짜 북토크를 했다. 물론 끝나자마자 저녁밥을 차린 후 저녁수업에 참석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긴 했지만, 1주에 2북토크는 좀 대단한 듯.ㅋㅋ


어릴 적 내 꿈은 '평생 배우면서 살고 싶다!'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배우는 게 재밌고 또 나름 적성에도 맞는지 배운 것에 대한 효율도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엔 밥 벌어먹고 사는 걱정은 없었다. 어찌 보면 제일 중요한 건데... 취미로 카페나 서점을 열까? 하는 마음 같은 좀 철없는 생각이었다.


올해의 가운데 허리였던 6월은 확실히 평소와는 달랐다. 좋지 않아도, 원하지 않아도 타인에게 휘둘리던 내 삶을 다시 내게로 돌려놨고,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을 위해 노력했다. 이 정도면 내 꿈은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다. 취미로 배우면서 살자던 어린 시절의 꿈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도 이 정도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겠는가.


물론 남편 잘 만나서 그렇다는 애아빠의 공치사는 사실 여부 그리고 내가 느끼는 고마움과 무관하게 듣지 않는 것만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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