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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Jul 28. 2024

디자인 컷 들어가실게요

미용실 유랑생활을 끝내며

  긴 머리를 한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고 그저 긴 머리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였다. 약간의 곱슬기가 있는 내 머리카락은 나의 애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치 저가 정신을 가진 생명체이기라도 한 것처럼 고집을 피워댔다. 오죽하면 스스로 오른쪽 옆머리에 귀신이 붙었다고 표현했을까? 그래서 아주 여러 해 전부터 짧은 단발을 유지하고 있다. 


  미용실은 거의 2달 주기로 간다. 1달이 조금 지나면 앞머리가 길어져 반 갈라지기 시작하기에 내가 대충 자르지만 뒷머리 때문에  2달은 결코 넘길 수 없다. 매번 가는 미용실에 예약을 넣으려는데, 어? 이거 뭐야? 그새 컷 비용이 올랐다. 처음 이곳에 갔을 때 12천 원이었고 한참 15천 원이었는데, 잠깐 사이 18천 원까지 올랐다. 어... 머리 자르는데 18천 원을 쓰긴 좀 아까운데...


  다른 미용실을 기웃거렸다. 지역 맘카페 검색을 해보니 웬만한 곳은 다들 18천 원이었고 2만 원인 곳도 제법 있었다. 그러다 학교 앞 아이가 머리를 자르던 곳이 떠올랐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그 미용실의 성인 컷 비용은 13천 원이었다. '아~ 바람직하다' 생각하며 다음 날 오픈시간에 맞춰 미용실에 도착했다. 무려 30분을 기다려야 했지만, 5천 원을 아낀다 생각하면 기다릴만했다.

 

  내 머리카락을 자르긴 처음인 원장쌤에게 열심히 설명을 했다. 이 길이로 잘라주시고, 속 머리가 많으니 적당히 솎아주시고, 층을 좀 줘서 너무 똑 단발은 안 되게 해 주세요! 가위질이 거침없이 이어졌고 바닥에 떨어지는 머리카락도 늘어갔다. 뭔가 말이 안 통하는 것 같았고 손길도 거칠었지만, 5천 원을 절약한다고 생각하면 이 정도는 눈 감아줄 수 있다 생각했다. 나는 거울 속 스스로와 눈을 마주치고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 몇 가닥을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계산대로 향했다. 따로 챙겨 온 2만 원을 내밀여 형식적으로 물었다.

  "얼만가요?"

  나는 성인 컷이 13천 원인 걸 알고 왔으니까.


  "디자인 컷 들어가실게요. 17천 원입니다."

  원장쌤이 돈을 냉큼 받아가더니 바로 내 손에 천 원짜리 세 장을 건네주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얼얼했다. 네? 뭐라고요? 디자인 컷이요? 어딜 들어간다구요? 이미 디자인 컷에서 나온 거 아닌가요? 진짜 들어갈 때 디자인 컷이라고 말씀해주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천 원 아끼자고 거길 간 게 아니었다. 배신감에 그냥 봐줄 만하다고 생각했던 머리도 영 꼴 사나워 보였다. 5천 원 아끼려고 했다가 된통 당했다. 다음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단골집으로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며칠 전 단골 미용실에 다녀왔다. 다른 곳에서 한 번 머리 자른 게 대단한 배신이라도 되는 듯 양심이 찔렸다. 친정 갔다 급하게 잘랐다는 변명도 미리 준비해 뒀는데, 원장선생님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많은 말이 오가지 않고 컷이 시작됐고 조금씩 머리가 잘려나가는 도중부터 이미 마음에 들었다.

  '그래, 이거지, 이거. 너무 괜찮아서 이대로 마쳐도 될 것 같은데?'

  진심이었다. 별 말하지 않아도 내 취향에 맞춰 알아서 잘라주는 이 익숙한 손길. 점점 본래 내 머리로 돌아가는 모습에 희열이 차오르고 감동이 되어 하마터면 미용실에서 머리 자르다 눈물 흘리는 여자가 될 뻔했다.


  현금 할인으로 컷 비용 17천 원을 냈다. 어쩌다 보니 지난번 컷 비용과 같은 금액이었다. 이번엔 내는 돈 17천 원이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더없이 합당한 금액, 아니 그때 기분이라면 조금 더 웃돈을 얹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미용실을 나서며 마음 속으로 원장선생님에게 '충성, 충성!!!'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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