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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Aug 04. 2024

보지만 보지 않았다

나의 기억과 다른 이야기

  외지 생활을 했던 오빠는 집에 올 적마다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나는 그게 조금 서운하고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나 또한 친정행이 결정되면 친구들에게 연락부터 넣으니까. 만남 1은 고등학교 동창 K를, 만남 2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E과 J를 위한 약속이다.


  그 일은 E과 J를 만나던 날에 일어났다. 매번 우리는 이안경원 앞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커피숍 2곳을 돌며 수다를 떠는 게 루틴이다. 가는 곳이 3곳이니 돌아가며 계산을 하면 맞춤이다.

  이번엔 제대로 된 밥을 먹자며 생선구이집엘 갔다. 가자미 3마리와 고등어 1마리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가자미는 크기가 제각각이었고, 선탠이라도 한 것 같은 고등어는 너무 커서 그릇에 겨우 몸만 걸친 모양새였다. 나는 슬쩍 친구에게 속삭였다.


  “나 고등어 안 먹는데, 가자미 제일 큰 거 내가 먹으면 안 돼?"


  그렇게 내 앞접시에 제일 커다란 가자미가 옮겨졌다.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이런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깟 생선 먹지 않고 푸성귀만 먹어도 충분하다. 가자미 살을 바르며 나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이 내게 얼마나 편한 친구들인지 실감했다.


  지난 겨울의 만남에서 나는 J의 말투가 내내 거슬렸다. 나는 격양된 목소리로 너 그거 피해의식이라고, 사람이 말을 하면 귀를 좀 기울이라고 쏘아붙였다. 그것은 카페 내 손님들이 쳐다볼 정도의 소란이었는데, 내 성격에 그런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살았고, 다들 무던한 성격이라서 서로를 밀쳐낼 줄도 모른 채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취향, 성향 때문에 친구가 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듯 타인 앞에선 드러내길 주저했던 내 욕심을 드러내고 싸우게 될까 봐 참기만 했던 불만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라니! 우리는 그저 오래 알고만 지낸 친구가 아니었다.


  우리의 대화에서 소재의 고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대화의 방향은 뭍으로 올라온 미꾸라지처럼 종잡을 수 없었다. 덕분에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어린 나와 마주했다.

  J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아왔던 나를 기억해 냈다. 그러자 E도 생일이든 뭐든 나만큼 잘 챙기는 사람이 없었다는 증언을 보탰다. 나는 순식간에 정말 다정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아주 자세히 또 오래오래 듣고 싶었다. 그렇지만 친구들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내 다정함이 부끄러워 어영부영 얘기를 들을 기회를 잃어버렸다.


  내 기억의 뒷면만을 본 게 아니었다. 과거 나의 학창 시절엔 '왕따'란 단어가 없었지만, 명칭만 없었을 뿐 왕따는 분명 존재했다. 공공연한 왕따였던 S가 그런 대접을 받을 가장 큰 이유는 뚱뚱하고 순하다는 것 정도였다. 나는 S가 아이들에게 놀림이나 당하고 은근히 따돌림이나 당한 줄 알았다. 그런데 E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노는 애'에 속했던 K가 그녀를 화장실 뒤로 불러내 놀랄만한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창 W는 엄마를 학교로 불러, 내 친구 E과 다른 아이를 나무라게 했다.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당한 패악에 얼마나 부끄럽고 무기력했을지가 절로 상상이 됐다. W는  “오늘은 얘랑 놀지 마!'”라고 가스라이팅을 시전해 순진한 아이들을 따돌렸다.

  그런데 W는 나와도 친한 친구였다. 나는 그녀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13년 인생 처음으로 롤러장을 가봤다. 그녀에게 이런 악의가 있는 걸 알았다면 나는 절대 그 아이와 친구가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K도 W도 순진한 시골 아이들이 아닌 아이의 얼굴을 한 영악하고도 악독한 인간이지 않은가?


  계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J가 지나온 고난이었다. 나쁜 의도를 가진 이에게 이용당하고 때론 몸이 상하고 때론 상실까지 겪어야 했던 그 시간에 나와 E는 성인이 되느라 각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속상한 마음에 왜 미처 연락하지 않았냐고 의미 없는 질문이 오갔지만 결국 남은 건 침묵이었다.


  과하게 자신을 지키려 해 사람을 불편하게 했던 그녀의 벽은 어쩌면 그 시간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여름과 겨울, 1년에 2번이지만 이 정기적인 만남이 불안으로 흔들리는 그녀를 지금에 있게 하는 하나의 뿌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J을 꼭 안아주었다.


  지금껏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타인을 해하려는 마음 품은 적 없이 순리대로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과거를 돌이킬 적마다 힘들고 괴로웠던 추억보다 좋았던 일들을 먼저 떠올리는 건 긍정적인 엄마 덕분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아온 우리의 기억은 왜 이다지도 다를까? 우리는 그때 어떤 시간을 살았던 걸까? 알지 못했다고 발뺌하는 것은 얼마나 편리한 핑계인지.


  20~30년이 지난 기억의 뒷면은 달콤하기보단 처참했다. 그때 내 눈이 본 건 뭐였을까? 보았다고 믿었던 것은 모두 진실이었을까? 눈을 뜨고 있되 제대로 본 것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눈꺼풀을 세게 감기라도 한 것처럼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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