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연휴에 맞춰 아버지가 자식들을 모두 부르셨다. 나도 오랜만에 명절에 맞춰 귀향 열차에 몸을 실었다. 어느새 여든을 훌쩍 넘긴 아버지는 작년 경증 치매를 진단받으셨다. 그래서 유독 무엇이든 이번이 당신 삶의 마지막 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시는 듯했다. 그건 자식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 말이 유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 무게를 더했다.
그때 거실에 있는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던가? 마침 그때는 계엄령이 해프닝으로 끝나고 후속 처리에 대해 나라 전체가 설왕설래하던 시절이었다. 정치 이슈는 가족끼리도 얘기하면 안 되는다는 말이 있던데, 그 불문율을 무시한 우리는 서로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일찍 집을 떠나 독립을 한 오빠는 우리 자매들과는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유일하게 TV만 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가 어렸던 시절부터 아버지는 뉴스를 즐겨 보셨다. 그 시절 뉴스는 내가 보고 싶은 만화를 못 보게 가로막는 장애물이었을 뿐이었기에 뉴스를 챙겨보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먹고사는 일에 숨 돌릴 틈도 없던 그때에 사회에까지 관심을 두었던 아버지라니. 새삼 존경심이 치민다. 3김 시대부터 아버지와 함께 세상 이야기를 나누며 자랐다. 그러니 나도 자연스레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됐다.
그의 은밀한 삶을 엿보게 된 건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안방 장롱 위에 책 한 권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이 꼭 나를 꾀는 것 같았기에 기어이 그 책을 보고 말았다. 그건 ‘삼청교육대’에 관해 고발한 책이었다. 어린 내 눈에도 그건 금서였다. 가슴이 참을 수 없이 쿵쾅거렸다. 한동안 꿈속에서 빨간 베레모가 악귀처럼 나타나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가 시위에 참가하거나 정당에 몸을 담은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그저 조용하게 정치적인 사람이었다.
어른이 된 나는 아버지처럼 세상 돌아가는 걸 알기 위해 뉴스를 본다. 뉴스를 보다 보면, 남편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하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느낀다. 내가 아는 언니는 따지자면 민주당 지지자인데, 그녀의 남편이 했다는 말이 내겐 개그처럼 들렸다. “누가 유시민 총으로 안 싸 죽이나?” 그 부부는 정치적인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 부부는 뉴스를 보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분통을 터뜨린다. 남편 역시 나처럼 정치에 관심 많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시아버지는 부마 항쟁 당시 성당의 소모임을 통해 진실을 담은 비디오를 돌려봤다고 했다. 자연스레 아버지의 ‘삼청 교육대’ 책이 떠올랐다. 우리가 이러할진대 아이가 정치적으로 아주 무지하거나 무관심하긴 어려울 것이다. 생각의 결이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만, 콩 심은 데에는 대체적으로 콩이 나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손주까지 정치적으로 만든 나의 아버지가 변했다. ‘삼청교육대’를 시행한 정권의 후신을 지지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사람은 나이를 먹고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여당을 지지하게 된다는 말,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내겐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그들의 의견을 고스란히 따라 했고, 그것이 자신의 생각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남편도 의외긴 했던지 장인어른이 그러실 줄 몰랐다고 했다. 그 말에 내가 발끈했다.
“우리 아빠 같은 범부(凡夫)야 정치적 견해를 바꾸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높으신 분들이 문제지. 노인네가 그러거나 말거나 누구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구만 뭘.”
준비한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이 튀어나간 걸 보면 아버지의 태세 전환에 좀 놀라긴 했어도 실망을 하거나 배신감을 느끼진 않았던 것 같다.
지난 4월 4일, 외출 중에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그날은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가 결정되는 날이었다. 자연스럽게 이 일이 대화 주제로 올랐을 때 아버지가 한탄하셨다. 나라의 최고 어른에게 어떻게 저럴 수 있냐고 했다. 마치 철없는 아이들을 나무라는 투였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가 왜 변했는지 궁금해졌다.
“아빠, 우리 어릴 때부터 민주당 지지하셨잖아요? 그래서 자식들도 다 민주당 지지하게 해 놓고 왜 이제는 국민의 힘 편드세요?”
말을 꺼내는 순간 아차 싶었다.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가능성 하나가 스쳤다. ‘설마…?’ 하는 순간, 아버지가 내 마음을 읽은 듯 대답했다.
“난 언제나 약한 쪽 편이었지.”
머리를 한 대 얹어 맞은 느낌이었다. 과연 지금 국민의 힘이 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약한 편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국힘당이 야당인 건 사실이니까. 뭔가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최근 읽고 있는 웹소설 속 내용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주인공은 과거 독설을 날리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사고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다정해졌다. 그 주인공만큼 아버지도 많이 변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전엔 아버지는 매일 과거를 곱씹고 자신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을 저주했다. 망상 증세까지 있어서 아버지에게 전화가 오면 받기 두려울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연을 끊은 자식도 있었다.
그런데 우울증 복용 후 아버지는 인지력이 약해졌지만, 확실히 유해지면서 웃음도 늘어났다. 사실 아버지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약한 사람의 편에 서고 싶었던 사람. 그런데 녹록지 않은 현실에 그렇게 고슴도치처럼 타인을 마구 찌르는 사람이 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마지막 만남 때 외식을 하고 집으로 오던 길에 폐지를 줍는 노인을 만났다. 아버지가 갑자기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주우면 하루에 얼마를 버느냐고 물었다. 왜 저러시나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아버지는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나는 당황하고 또 곤혹스러웠다. 상대가 동정에 기분 상해 엉뚱한 짓이라도 벌일까 겁이 났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아빠의 표정을 보고 말았다. "나도 그렇게 살아봐서 안다"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 모른 척했다.
아버지는 정치적 견해를 바꾼 게 아니었다. 다만, 젊은 시절엔 미처 닿지 못했던, 자신이 되고 싶었던 사람에 조금 가까워졌을 뿐이다. 어릴 적엔 아버지조차 깨닫지 못했던 그 마음은 가족을 부양할 의무를 훌훌 던져버린 지금에서야 비로소 드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오래 쌓인 장벽이 허물어지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쇄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여든이 넘은 아버지가 평생 자신을 잘 몰랐던 것처럼, 나도 이제야 그를 제대로 바라본다. 웃음이 난다. 아버지의 이유 있는 ‘변절’을 통해, 나는 조금 더 빨리 삶의 교훈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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