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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르친 첫 수업

나의 첫 글쓰기 수업을 정리하며...

by 은섬

“너는 브런치 작가가 되고 책을 출간할 거고, 글쓰기 선생님도 될 거야!” 5년 전의 내게 이렇게 말한다면 아마 나는 말도 안 된다며 코웃음 쳤을 것이다. 그렇게 허무맹랑하게 여겨졌을 꿈이 모두 현실이 되었다. 지난 5월의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은 지금 생각해도 얼떨떨하지만, 처음 글쓰기 선생님 제안을 받았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지난해 같은 수필 수업을 듣고 문집 출간을 함께 하며 인연을 맺은 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문집을 나눠가질 땐 또 만나자고 손을 흔들었지만, 그것은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말만큼이나 의례적인 인사였으므로 의외의 연락이었다.


그녀가 제안한 것은 복지관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초 글쓰기 수업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전화를 받았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멍한 중 손이 절로 볼로 갔다. 이래서 믿기지 않을 때 볼을 꼬집어 보는구나! 강사료가 적다며 그녀는 굉장히 미안해했지만, 경력이 없는 내겐 공짜라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력서를 써본 게 얼마만이던가. 대단한 경력은 없었지만 글쓰기와 독서 관련 수료증, 자격증, 수상경력을 깡그리 긁어모았다. 그래놓고 보니 딴 건 몰라도 나라는 사람이 글쓰기에 진심이라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의계획서 작성은 또 하나의 난관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용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수업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때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그간 열심히 들은 글쓰기 수업들이었다. 좋았던 수업은 물론이고, 별로였던 수업도 나름의 배움을 남겼다. 타인의 수업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내 것이 된 것들, 그리고 글을 써오며 직접 체득한 것들을 조합하니 괜찮은 계획안이 나왔다.


도구적으로도 AI의 도움이 컸다. ‘챗GPT’로 강의 내용을 조사하고, ‘감마’로 교안을 만들었으며, ‘제미니’로 대본을 짰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글에 대한 피드백도 AI의 손을 빌렸다. 이걸 전부 혼자 했다면 정말 아찔했을 것이다. 사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바빴다.


대본을 열심히 외웠다. 집에선 인형들을 관객으로 놓고 연습했고, 복지관으로 향할 땐 한 한 손에 대본을 들고 내내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가 남대문 시장에서 ‘골라 골라’를 외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지향하는 스마트하고 차분한 강사상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 메울 수 없는 간극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마음만큼이나 몸도 큰 부침을 겪어야 했다. 수업이 없다면 평온했을 삶. 하지만 준비 때문에 늘 긴장 상태였고, 그 탓에 한 달 내내 숙면을 못 했다. 피로는 차곡차곡 쌓였고, 좌식 노트북 작업 탓에 요통도 도졌다. 심지어 생리주기까지 흐트러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처음이 반’이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드디어 첫 수업 날이 밝았다. 강의실에 도착했을 때 긴장은 거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대담한 사람이었나? 멘털을 꽉 잡고 수업을 시작되자 말이 술술 나왔다. 그간의 고민은 무의미했다. 교안을 만들기 전의 고민, 만들 때의 수고, 대본 연습량 등이 내 안에 쌓여 있었기에 무엇 하나 꾸미지 않아도 되었다. 수업 속 나는 보여주기 위한 누군가가 아니었다. 그냥 나였다.


수업을 거듭하면서 강의계획을 짜는 실력도, 시간 운용 감각도 나아졌다. 학생들의 반응을 보며 유연하게 내용을 조절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가하여 수업의 질도 높아졌다. ‘수업이 계속 이어졌다면 이런 식으로 적응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즈음 수업이 끝이 났다. 그야말로 시원섭섭했다.


사실 수업이 확정되었을 때부터 나는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애써 눌렀다. 어릴 적부터 들어온 ‘입방정’이나 ‘부정 탄다’는 말을 떠올리며. 모든 걸 잘 끝낸 다음 얘기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며 더 몰두했다. 그렇게 평소의 일상을 이어가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5월을 살아냈다.


6월 초, 친구를 만나 마침내 자랑할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 경험을 좀 더 오래 혼자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당황스러웠다. 그것은 나만의 이야기로 아껴 두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그러나 호기심 가득한 친구 앞에서 결국 털어놓았다.


더 이상한 건 그다음이었다. 준비부터 수업까지 두 달 넘게 이어진 이 일이 내게는 너무 기쁘고 소중한 경험이었는데, 막상 말로 꺼내자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인가. 자랑하려던 마음이 유난스럽게 느껴졌다. 참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뒤, 나는 이 일을 블로그에 올렸다. 워낙 할 말이 많아 쓰는 데에도 품이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전에 느꼈던 상실감 비슷한 감정이 서서히 회복되는 걸 느꼈다. 글의 힘일까? 나는 이제야 이 일을 제대로 소화한 것 같았다.


글을 쓰고 작가를 꿈꾸면서, 언젠가 글쓰기 선생님이 되는 것도 바랐다. 그건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동시에 존중받는 삶이었다. 나는 결국,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글을 써온 건 아닐까. 지금으로선 답이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글로 다시 만나게 될 이야기다.


느리지만 지치지 않고 이뤄온 축적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떠밀려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미래에 어떤 삶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고 했던가. 그 일이 이미 현실이 된 것처럼 믿고 행동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또 어떤 꿈을 꿔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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