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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는 속도 1.26km/h

by 은섬


땅! 드디어 마라톤이 시작됐다. 어쩌다 보니 꽤 선두에 선 나는 출발소리와 함께 발을 재게 놀리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출발 지점에 있는 기록측정 탭을 세게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분성산 천문대 방향으로 올랐다 내려오는 10km의 코스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것은 올해 나의 첫 마라톤 도전기다. 마라톤은 보통 2~3달 전부터 접수를 받는데, 몇 해 전부터 러닝 붐이 불어 마감이 빠른 편이다. 나는 접수 타이밍을 놓쳐 6월이 되어서야 겨우 처음으로 마라톤 접수에 성공했다. 나로서는 다섯 번째 10km 도전. 최종 목표는 하프지만, 뛸수록 힘들어지는 탓에 요즘은 그것이 허무맹랑한 목표처럼 느껴진다.


‘숲길마라톤’은 이름에 걸맞게 업다운이 제법 있다. 트레일 마라톤이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평지만 달리던 러너에겐 제법 부담스러운 코스다. 그래도 지난해 기록이 꽤 괜찮았다. 경기 당일엔 출발 전부터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뿜뿜해서 평소보다 기록이 잘 나오는 편이다. 그러나 올해는 작년 만큼의 기록을 장담할 수 없었다. 턱없이 모자란 연습량과 그새 나이 든 내 몸 때문이다.


경기 전에 2번 실전 코스로 달려보긴 했다. 그럼에도 운동장을 벗어나자마자 나를 가로막은 오르막은 영 적응이 안 됐다. 내 앞에 펼쳐진 10km는 엿가락처럼 길어지고, 결승선은 자꾸만 뒷걸음질 치는 기분. 그래도 달리기 시작하면 이 괴로움에도 끝이 있단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줄 모른다. 고통이 끝도 없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나는 쉽게 포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반환점까지 가는 코스는 약이라도 올리는 것처럼 업과 다운이 반복된다. 연습할 때도 느낀 거지만, 그 오르막을 뛰어오르는 건 최소한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를 마치 1차선에서 주행 중인 초보 운전자처럼 지나쳐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초조해지는 걸 어쩔 수 없다. 혼자였다면 분명히 걸었을 길이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힘내어 뛰어본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모든 모공이 땀을 내뿜고 허벅지는 찢어질 것 같다. 점점 명확해지는 진실. 이렇게 무리하단 완주할 수 없다! 반환점 이후 들이닥친 내리막길이 문제였다. 오르는데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리면 다리에 힘을 주어야 할 때 주지 못하므로 내리막길에서 넘어져 다칠 가능성이 많아진다. 결승선 전에 힘이 달려 백기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을 따라 달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기를 쓰고 걷는다.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그렇게 나는 오르막에서 달릴 마음을 초장에 접고 대신 평지나 내리막에선 최대한 달리자고 마음먹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오르막에선 그저 묵묵히 버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럴 때 어떻게 뛰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것은 마라톤에 도전한 나의 본래 목표가 무엇인지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나의 목표는 언제나 기록 경신이 아닌 완주. 즉, 나의 에너지는 눈앞의 언덕을 넘기 위한 것이 아니라 10km를 완주를 위한 것이다. 내 페이스로 달려야 한다는 가능한 일이다. 조금은 초연해지며 목표를 소박히 ‘완주’로 잡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초조함도 옅은 죄책감도 달리는 내 어깨너머로 날아가 버린다.


첫 연습에서 10km를 달리는데 1시간 25분 33초가 걸렸다. 지난해 기록은 1시간 12분 36초. 1년 새 13분이나 늦어졌다. 기록을 단순화해서 보자면 나는 1년 동안 1.26km/h의 속도로 나이 든 셈이다. 수치화하지 않더라도 노화의 감각은 분명했다. 계속 달리면 점점 더 기록이 좋아지는 것이 맞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다. 그 갭을 극복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것이 실력이 늘어나는 속도가 나이가 먹는 속도를 이겨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3.5km 지점을 달릴 즈음이었다. 그곳은 조금 더 올라가면 4km가 시작되는 시점에 깎아지를듯한 언덕이 나오기에 앞으로 나아가는 게 마냥 반갑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반대쪽에서 서너 명의 남성 러너들이 뛰어 내려온다. 아무리 내리막길이라도 해도 엄청난 속도였다. 알고 보니 그들은 이미 반환점을 돌아서 내려오는 참이었다. 빠른 속도에 혼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잠시 후 내게도 반환점이 나타났다. 그곳을 돌자 시야가 뒤집혔다. 조금 전까지 반환점을 돌아 내려오는 러너들을 그저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았었는데, 이제는 내가 올라오는 러너들이 부러워하는 지점에서 달리고 있다. 그러나 나보다 먼저 달려간 이들을 보고 초조할 이유도, 아직 반환점에 도착하지 못한 이들을 보고 우월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달리기는 참 우리의 삶과 닮았다.


가는 길에 내리막길이 있다고 좋아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내가 다시 돌아올 때 오르막길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 작은 이익과 손해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 중심을 지킬 수 있다. 어쩌면 이제 올라오는 그 러너가 사실은 나보다 한참 늦게 출발해서 속도는 나보다 빠를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은 장소에서 함께 달리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각자의 길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이것은 그들과의 싸움이 아닌 나와의 싸움이다.


나의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달리는 이들을 본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피부, ‘컥’에 가까운 가쁜 호흡소리가 나의 것인지 다른 이들의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그 경계가 사라진 곳에서 유대감이 뜨끈하게 피어오른다. 같은 시간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우리. 나는 마라톤에 홀로 참여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결승점이 2km로 남지 않은 지점에서 다시 오르막이 등장했다. 돌아오는 보답 없이 내가 힘들기만 한 이런 도전을 왜 하는 걸까? 이때까지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는 오지 않는다. 달리는 이들에게 익숙한 이 단어는 장시간의 신체 활동이나 고강도 운동 후 발생하는 일시적인 행복감과 불안감 감소, 통증 역치 상승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 번뇌들을 뚫고 달리면 결국 결승선은 나타난다. 주위에 선 이들이 모두 소리 높여 응원해 준다. 나는 그 응원을 뚫고 나의 결승선으로 뛰어들어온다. 그때 러너스 하이가 온다. 힘들지만 견디지 못할 만큼이 아니다. 다음 도전도 잘 해낼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그렇게 러너스 하이는 느린 걸음으로 내게 도달한다.


이번 마라톤의 공인 기록은 1시간 10분 53초. 작년보다 1분 43초 앞당긴 결과다. 계산대로라면 나는 0.196km/h의 속도로 젊어진 셈이다. 이것은 아주 미세한 수치지만, 그만큼 나는 나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내 삶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나의 몸은 어른이 된 지 오래지만, 마음은 여전히 쉽게 날뛰고 불안해진다. 그래도 달리다 보면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나는 그것을 달리기가 가르쳐주는 ‘삶의 지혜’라 부른다. 그러므로 0.196km/h라는 이 속도는 내가 성장하고 있는 속도다. 결국 나를 자라게 한 건 신체적 단련이 아닌 삶의 깨달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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