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글을 남에게 보여주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수필은 원하지 않아도 내 TMI가 너무 드러나고 소설에는 나의 내밀한 욕망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땐 어느 정도 자아도취가 있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초반 남들에게 글 보여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나는 자뻑이 좀 심했는지도.
현실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소설에서 최악의 피드백을 받으면 자아도취는 바로 치료된다. 그 일은 합평모임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그날 누가 또 정확히 어떤 말로 피드백을 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뇌가 기억을 삭제했나? 나의 마음을 칼날로 벤 것처럼 상처 입힌 말은 내 글에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였다.
충격을 받아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몸이 자꾸 작아졌다. 내가 달팽이였다면 껍데기 안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건 당신이 알지 못해서 그런다고, 글이나 제대로 읽고 왔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내뱉은 건 그저 나를 지키기 위한 변명뿐. 마음이 너무 상해 자리를 지키고 있기 어려웠다.
사실 그전부터 쭉 불편함은 있었다.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하다 내 차례가 되면 10초가량 침묵이 흘렀던 것 같다. 그게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었다. 차마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없어 꾹 참는 것 같은 불편함. 마치 이 괴로운 글을 쓰는 쟤를 누가 좀 말려달라는 비언어적 표현 그래서 분량이 많은 글을 쓴 달엔 괜히 더 눈치가 보였다.
더 서럽고 억울했던 건 사람들이 내 글에 대해 유독 가혹한 평가를 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나 에세이에는 칭찬의 말 일색이었는데... 그들 눈에 나는 각 잡고 쓰는 사람이었다. 공모전 참가 의사도 확실하고 계속 글 쓰겠다는 의지도 확고했다. 그런 내게 도움을 주겠다는 사명감 때문이었을까? 좋은 소리보단 나쁜 말이 훨씬 많았다. 내가 소설에 진지하다는 게 안 좋은 소리를 들을 이유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놓고 매번 내게 하는 말이 그랬다. 소설을 이렇게 매달 꼬박꼬박 써낸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재미도 감동도 없는 글을 쓴다는 건 독자를 고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가 글을 쓴다는 건 세상에 쓰레기를 보태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그 뻔하고 반복적인 칭찬은 오히려 나의 성실함을 모독하는 말로 들렸다.
가장 괴로웠던 건 그들에게 악의가 없다는 거다. 여러 번 생각해도 그들이 나를 미워해서 그러는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저런 비판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인가? 그런 편협한 마음으로 글을 쓰겠다고? 그냥 독자로 남아 책이나 읽으면서 살면 얼마나 행복했을 텐데, 굳이 글을 쓴다는 욕심을 부렸나. 즐거웠던 글쓰기는 생각할수록 힘들고 괴로운 무엇이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맘에 들지 않지만, 다시 시간의 힘에 기대어 나는 힘든 마음을 밀어냈다. 그 자리에 오기가 차올랐다.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걸 왜 저 사람들 때문에 포기해야 하나? 아예 모임에 안 가버리거나 에세이로 대체하는 우회로를 통하지 않고 나는 보란 듯이 다음 달에도 소설을 썼다. 지난달 나의 상처를 그대로 담은 이야기였다. 남녀의 사랑 이야기였지만, 그건 내가 글쓰기에 가진 애정의 알레고리였다. 이걸 쓰고 회원들이 눈치채면 어쩌나 가슴이 요란했었다.
결론적으로 이 일로 나와 나의 글을 조금 더 성장했다. 내 마음은 더 단단해졌고, 내 글은 천천히 나아졌다. 후에 작가가 되었을 때 받게 될 악평 예방접종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쓸 때 감정선에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됐으니 그 비판도 옳은 말이긴 했다. 하지만 그땐 너무 힘들어서 글 쓰는 것 자체에 관해 회의를 많이 느꼈다. 그때 남의 말만 듣고 글을 포기했더라면 어땠을까? 그건 내 인생 장르가 공포가 되고 스릴러가 되는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