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팅클럽을 넘어 글사이로

by 은섬

글을 쓰는 데 가장 많은 도움과 힘을 얻는 모임 얘길 해보려 한다. 고작 회원은 둘뿐인 모임이지만 이름도 있다. <글사이> 글 사이에 감동을 담자는 뜻과 함께 글 쓰는 사이란 의미도 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이야기는 ‘혜정님’에 관한 거지만,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지나온 모임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혜정님을 처음 만난 건 휴메트로의 시민강좌에서였다. 선생님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자여서 기대가 컸던 그 수업의 첫 참석자는 5명이었다. 두 번째 수업에서 참석자는 3명으로 줄었고 셋은 수업 끝까지 함께 했다. 그때는 코로나 시국이어서 우리는 줌으로 만나며 내적 친밀감을 차곡차곡 키웠다.

사실 혜정님의 첫인상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가장 강렬한 느낌은 ‘나랑 참 다른 사람이구나!’ 였다. 줌 수업 중 화면 밖으로 쏟아지는 말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그만큼 글을 쓰는 스타일에서도 큰 차이가 났다. 그녀의 에세이는 너무 자세했고 내 건 생략이 많아 불친절한 글이었다.

그런 그녀와 단둘이 모임을 결성할 줄 누가 알았을까? 시민강좌가 끝났는데도 글을 향한 열기가 식기는커녕 오히려 더 뜨겁게 타오른 우리는 선생님과 함께 라이팅클럽을 결성했다. 우리는 2주에 한 편씩 카페에 글을 올려 공유하고, 1달에 한 번 줌에서 만났다. 이때부터 1달에 에세이 1편, 소설 1편 쓰는 나만의 루틴이 생겼다.

이 모임조차 선생님의 바쁜 일정으로 흐지부지됐고, 결국 남겨진 혜정님과 나는 <글사이>를 만들었다. 그렇게 2022년 12월 <글사이> 1회 모임이 있었다. 1달에 한 번 우리는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그간 올린 2개의 글을 위한 합평의 시간이었지만 근황 토크나 글 관련 고민으로 이야기는 쉽게 곁가지를 쳤다. 식탁 위에 포진한 어색함도 옅어지고 대화 중간 진동하던 눈동자도 편안해진 게 그리 오래지 않았다.

어느덧 3년간 지켜본 혜정님은 성실하다. 한 달에 두 번 있는 마감일을 어긴 적이 없다. 직업이 있는데도 그랬다. 반면 나는 에세이 제출일은 어기지 않지만, 소설은 매번 지각 제출을 한다. 내 마음속의 마지노선이 이미 마감일 기준 2일 후다. 요즘은 최소한 이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고.

그녀는 피드백을 주는 일에도 성실하게 임했다. 매번 출력해 오는 인쇄물엔 적지 않은 메모가 적혀 있는데, 특히 그녀는 비문이나 오·탈자에 대한 지적이 많다. 동시에 ‘갈수록 글이 더 성장한다. 소재가 좋다, 결말이 마음에 든다, 문장이 인상적이다’ 등등. 그녀는 어깨춤이 절로 나는 칭찬을 많이 해주는 다정한 사람이다.

물론 나도 혜정님의 글을 열심히 읽는다. 피드백을 위해선 글을 깊이 읽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나는 3번은 무조건 읽으려 노력하고 읽을 때마다 메모해둔다. 그렇게 꼭꼭 씹어 삼키듯 그녀의 글을 읽는다. 혜정님의 글은 긍정적이고 의지적이며 따뜻한 온기가 가득하다. 읽을수록 단맛이 올라오는 글이다.

서로 공통점이 없는 우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점점 서로 닮아가는 모습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녔다. 한 번은 둘의 에세이 제목이 아주 비슷했는데, 나는 <나의 세상 너머로> 였고, 그녀는 <너의 속도 그대로> 였던가? 그걸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시간이 우리 사이에 있는 줄도 몰랐던 공통점을 찾아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말 혜정님과 인연이 이렇게 이어질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서로의 글에 팬이 되고 최고의 응원자가 되리란 건 더더욱. 도움이 될 것 같은 비난의 피드백을 준비하다가도 내가 받았던 위로와 에너지를 되돌려주는 게 맞다는 걸 떠올린다. 언제든 그녀에게 최고의 글이라고 외쳐줄 수 있는 글친구, 내가 먼저 되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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